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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영화

주원이는 정말 못말리는 이기주의자일까? 시크릿 가든


주원이는 정말로 자기 감정만 생각하는 유아적 사고의 인물일까?  

감정을 받아들이는 라임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문제만 해결해달라고 보채는 이해못할 남자일까?  

사람들이 주원 역의 현빈에게 열광하는 건 단지 극중 주원이 판타지적인 재벌 2세이기 때문일까? 싸가지 없음에도 단지 그가 백화점 명품을 거리낌없이 그녀에게 선물할 수도 있는 왕자님이기 때문에? 혹은 주원 역을 맡은 현빈이 잘 생기고 연기를 잘하고 눈빛 연기가 일품이기 때문일까??

시크릿 가든 - 지독한 리얼리즘 

  

드라마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갖추게 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특수성은 드라마적인 극적 재미를 위해 있는 것이다.  보편성은 시청자들이 보다 쉽게 극 속의 상황에 빠져 들게 만들어준다.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을 들여다 보는 재미를 주고, 그리고 언젠가 나한테 일어났던,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이 더 몰입하게 만들어준다고 썼었다. ("개취 이민호의 표정연기 - 못해서와 안해서의 차이는" 중 # 2 , 드라마는 환상과 현실의 접점이다.) 


재벌 2세 김주원은 극적 상황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또한 흔한 신데렐라 로맨스물의 보편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완벽하게 판타지이다. 또한 남녀 주인공의 신체 체인지라는 스토리는 뒷통수를 치는 판타지의 정수이다. 

그러나,  주원이 라임에 빠져드는 과정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흔한 신데렐라 로맨스 - 거짓말처럼 여주인공에게 반하고 여주인공의 모든 것을 바꾸어준다. 부모의 반대나 연적들이  난관으로 등장하지만
'진실된 사랑 '의 힘으로 이 모든 것들을 용감하게 무찌른 남자 주인공은 힘들었던 지난 날에 대한 보상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주인공에게 해피엔딩을 선물한다.  

완벽하게 정석을 따르는 판타지이다.

 

# 우리의 주원은 어떠한가? 

현실은 - 사랑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더군다나 살아온 환경과 신념이 다른 이들끼리 사랑이라는 레이다로 교신하게 되었을 때는 더한 일이다.




주원이가 라임과 연결되기까지 이토록 많은 시간의 강을 건너 오게 된 데에는 주변의 몰이해 때문이 아니다. 자신 속의 벽을 깨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라임의 환영을 보고 혼잣말로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대책없이 빠져드는 주원의 심리는 그래서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사랑이 어디 쉬운가? 세상 많은 문제들 중 각자에게 가장 크고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 다. 세상의 반이 기아로 굶어 가고 있고 미사일이 날라다니고 치킨값이 비싸다고 해도 당장 내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나 자신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 그것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될 문제다. 여태까지 믿어왔던 내 생각이 흔들린다는 것은 내가 흔들리는 것이다.  

'사랑' 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나 자신을 얼마간 포기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내 안의 영역에 누군가를 들여놓는다는 건 그저 한 자리를 비워준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내가 믿어오고 지켜왔던 가치의 자리에 대치 되는 부분이 생긴다. 이것은 그것만큼 자신의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각각에게 우주의 의미를 가지며  또한........ 아픈 것이다.

주원이 라임과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은 자신이 여태 믿고 매달려 왔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한다. 백화점 경영권으로 대표되는 '재산상의 손실'은 상징적 의미일 뿐이다.

 

자신의 모든 존재를 걸고 사랑한다는 것은 -

 

그것은 외로운 일이다. 그리고 아픈 일이다. 그로서는 세상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일이다. 자신이 깨어질 것임을 예감하면서 시작하는. 

주원을 가련하게 여기면서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누구나 백화점 사장이지는 않고  저토록 싸가지 없는 정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주원의 감정 경로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나 역시 결론이 나지 않는 사랑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 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주원科의 사람이다. 안 될 싹은 트기 전에 잘라버리는 것이 나아 - 라고 생각했다. 로미오가 쥴리엣을 보고 눈이 또잉~! @@ 한 뒤 캐플릿가의 딸인 것을 알고 중얼거렸던 혼잣말 -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지만, 어찌하리, 이미 내 마음 속에는 사랑의 싹이 터 버린 것을 -"이라고 할 때, 바보같은 로미오 . 고작 1시간도 안된 감정이 싹이 자라 줄기가 되었다고? 아직 어려서 그랬나보다 - 라고 이해못했던 1인이다. 어떻게 자기 감정을 자기가 콘트롤을 못한담? 이라고 냉소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주원의 감정 표현이 지지부진하며 진도를 빼지 못할 때에도 이해가 갔고 마침내 자신이 인어공주가 될 지라도 '대놓고 매달리게 된' 그 결정이 더 실감나게 와 닿았다. 


# 사랑의 기술이 필요한 초보자, 주원 - 

주원이, 어머니의 앞에서는 '오래 가지 않을 사랑인데 그것도 못 기다리나요?' 라고 말한 뒤 라임에게는

'내가 그 순간 그렇게밖에 더 말할 수 있었겠냐'라고 말을 했다, 결말이 어떻게 날 지는 알아도 일단은 자기 감정에 빠져 보겠다고 말하던 그 다음 진도. 라임이 초반에 '그건 그 쪽 감정이고 난 사랑하지 않고 나랑은 상관없다'라고 단 한 마디면 끝날 것을 미적적한 말로 살짝 뒷걸음질만 치던 다음 진도. 마침내 사랑 안해 줘도 좋으니 나 혼자 사랑하다 사라지더라도 대놓고 매달리겠다며  완전히 자기를 내려놓던 - 그로서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은 중대결정 - 마지막 진도까지 -  

지나치게 솔직한 건가 싶을 정도다.  

혼자 , 마지막 결론을 '거품'으로 품고 라임을 입에 발린 말로 현혹할 수도 있었을 거다. 거품이 되어 달라고 말하거나 자신이 거품이 되겠다고 말한 것은 비겁한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로서는 최소한의 양심을 지킨 일이기도 했다는 것.  

사랑이라는 것에 마음이 흔들려 본 적이 없던, 이성적이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었던 주원이였다. 그가  이 새로운 상황 앞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워하는지 - 그의 서투름이 보인다.

 

그 감정을 이끌어내 준 라임에게 최선을 다해 거짓없이 정직하려 노력하는 그가 보인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날 좀 바라봐줘 - 라고 애원하는 그에게서 절박함과 안스러움이 느껴진다. 사업적으로는 두뇌가 빠른 그가 이런 식의 딜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을 다 까발겨 부끄러움을 딛고  보여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남자 얘기를 자기 앞에서 말하지 말라며 질투를 그대로 보였던 주원이의 모습도 사랑에는 초보자인 그의 모습이었다. 

이런 주원이가 서툴러서 싫다고? 제 멋대로라서 싫다고 ? 

자전거 타기가 서투른, 기능상의 서투름뿐만이 아니라  감정의 교류가 서투른, '사랑의 기술'을 아직 습득 못한 사람들도 있다. 서툴렀던 과거,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이전의 자신을 파괴하는 아픔을 딛고 용기있게 발을 내딛는 사람들 - 거기에는 감동이 있는 것이다. (이전 시크릿가든 리뷰 참고 : 시크릿 가든, 우린 로맨스가 그리웠나보다)  클라라가 못 걷는 상황에 짜증을 낼 필요도, 세드릭  할아버지의 완고함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 <- 주원이같은 매력없는 남자가 뭐가 좋냐고, 드라마에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 말에는 흠 - 팔짱을 끼고 난감한 표정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

다만, 자신을 다 건 이 사랑의 결론에 불행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것 같아서 이 아름다움이 처연할 뿐이다.

 

이기적 사랑의 보편성 - 

외롭게 사랑을 시작해 봤던 이들, 혹은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걸어 보았던 이들, 혹은 사랑이라면 저런 것이 아닐까 하고 다가올 사랑을 예감하고 있는 이들은 주원을 결코 드라마 속 허구 인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 

주원이 드디어 자기 자신의 벽을 깨고 나가는 과정이 아프도록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 앞에서 자는 라임을 작정한 듯 즐기듯이 행복하게 보는 주원의 눈빛이 슬프게 설레이는 것이다. 그 시선이 주원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고서 나온 결과임을 주원 자신도 감지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아니까.

 

 

잠에서 깬 라임,  주원의 시선을 맞받아 보내던 눈에 고인 눈물. 그건 끝을 예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발을 내디디고 있는 아픔이었다.  

매일 밤 와 줘요. 내 꿈 속으로, 내일도 모레도 - 

이성으로는 납득할 수 없지만 저항할 수 없이 빠져드는 사랑 - 

가장 개인적이면서 가장 큰 문제인 사랑을 그리던 로맨스물은 많았지만 이토록 깊은 심층으로 파고들던 묘사가 있었던가 싶다. 시크릿 가든은 그 핵으로 다가가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