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사가 빠르다
우연히 시크릿 가든을 보다가 놀랐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에 놀랐지만 그보다도 맨처음 놀란 것은 그 빠른 대사 였다. 속사포같이 쏘아대는 현빈의 대사들은 베바의 강마에를 떠올리게 했는데 빠른 대사임에도 한 마디 한 마디가 곰씹어 볼만큼 재치가 있었고 그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빠른 속도와 알찬 내용은 극에 집중하게 했다. 놓쳐서는 극의 재미를 즐길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 것 같아서 귀와 눈을 쫑긋 세우게 했다. 내 기억으로 가장 대사가 느렸던 것은 '가을 동화 '같다. 느긋하게 화면의 아름다움과 배우들의 아름다움, 그들의 슬프거나 애닲은 감정선을 그저 감상 하기만 하면 되었다. 시크릿 가든은 감정만이 아니라 머리도 따라 굴려야만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왜? 무엇을? 저 인물들은 저러고 있단 말인가 -
# 꿈과 사랑이 고팠다
순수한 로맨스가 그리웠나보다. 출생의 비밀, 과거의 악연, 복수, 상대의 뒷통수를 치고, 매 회 격한 눈물과 오열, 증오를 질러대는 것. 배우들이 자신의 감정 밑바닥까지 끌어 내는 것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배우가 지치듯 시청자들도 조금은 지쳤었나보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산사 나무 아래서' 를 보았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순수한 감동 에의 회귀라고 해야 할까? 패션이 복고풍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유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아무 이유도 없이 상대에게 빠져들고 그 감정에 어찌 할 바 모르고 당황해하는 이야기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고 그로 인해 주인공들이 자신을 알아가는 이야기들을 그리워하는 것. 이것은 전략과 계책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분홍빛과 초록빛, 꽃과 초록으로 돌아가고픈 복고에의 향수 가 우리들 마음 속에 다들 한 가닥씩 남아 있음을 뜻하기도 하겠다.
# 사람들은 - 설레고 싶었다.
정치 이야기, 첩보물에서도 로맨스는 첨부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메인 테마는 아니었다. 양념으로 들어갈 뿐. 물론 로맨스 물도 사랑 외에 다른 것들이 양념으로 들어가긴 하지만 주요한 점은 사랑이 메인 테마 라는 것이다. 사랑이 생겨나고 진행이 되려면 사람 이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인간을 알아가게 된다. (로맨스의 대상인 연인) 인간을 알아 가게 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가 뒤따른다. 그의, 혹은 그녀의 사회를 바라 보는 관점이 나타날 수도 있고 그의 철학과 정치관이 덧붙여 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인간을 통해 마침내 사랑으로 도달해 가는 중간 단계일 뿐이다.
성스 가 우리를 설레게 했던 이유는 뭘까? 거기 꿈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꿀 힘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던 그들 꿈의 실현, '방구석에 앉아 쉽게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하는 ' 환상 속의 그대 들이 아니었다. 왕과 직접 콘택하여 '그것'에 자신의 힘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두근거림이 있었다. 여자임에도 세상을 깨고 꿈을 이루려하는 그녀가 있었고 그녀의 고난과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알아보고 그녀를 알아가고 사랑에 빠졌던 그가 있었다.
#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판타지에는 순수한 감동이 있다-
추석 특집극으로 MBC 에서 '주부 김광자의 제 3 활동' 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다. 시간이 되면 드라마를 본 소회를 적어 보려 했지만 시간이 되질 않았다 ;;; 그 드라마를 보면서 울다가 웃다가 - 눈물이 맺힌 채로 입은 웃고 있는 희안한 경험을 했었는데 - 그것 역시 내 속에 숨어 있던 순수함을 발견해서가 아니었을까 한다.
주부 김광자는 특집극이자 단막극이라서 그랬을까 흔히 보아오던 '한국적 드라마'는 아니었다. 할리우드식, 더 제한시켜서 말한다면 '디즈니 영화'같은 느낌을 받았다. 갈등이 해소되는 방법이라든가 장면의 전환이라든가 이런 데에서 디즈니 식의 판타지 요소가 있어서 그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테마의 포커스가 '인간의 변화 ' 라는 데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에서 클라라가 유약한 자신을 딛고 아름다운 자연과 하이디의 순수한 친절함으로 마침내 걷게 되던 그 장면. 그것은 클라라의 마음이 변화한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물리적 장치이다. 이전까지는 환경에 순응하여 아무런 자기 의지도 없던 클라라가 스스로 무언가를 바꾸어 보겠다고 변화한 것을 뜻한다. 처음 하이디가 아름다운 자연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 나올 때부터, 그리고 부유하기는 하나 아무 생동감없는 환경에서 걷지 못하는 클라라가 대비되어 나올 때부터 우리는 클라이막스 부분에 클라라가 걷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으리라. 비록 그 스토리를 사전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지만, 그 책을, 혹은 드라마를, 만화를, 세번 보고 네번 을 반복해서 보더라도 클라라가 걷게 되는 그 장면에서는 매번 똑같은 강도의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한 인간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 주는 원초적 감동 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것은 '사랑'의 힘이다.
소공자 의 세드릭이 계산적이고 완고한 할아버지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 또한 감동적이다. 세드릭은 그 천성적인 명랑함과 영리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이 스토리에는 - '하이디'에도 아주 약간은 그런 것이 있지만 - 당시 귀족사회에 대한 서민들의 동경 과 그와 관련된 꿈의 세계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이 이야기가 매력적인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 세드릭에게는 , 그리고 하이디에게는, 계급의식같은 건 없고 정직하고 용기있고 활발한 그들에게서 우리 또한 순수한 기쁨을 갖게 되는 때문 일 것이다.
그 외 수많은 디즈니의 드라마들이 그러하다.
'34번가의 기적'은 언제 보아도 감동적이다. 등장인물은 달라도, 스토리는 각각 다 달라도 이것들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사람이 사랑으로 인해 긍정적으로 변화' 한다는 것이다.
곁가지로는 위에 말한 것처럼 상위층에 속한 그들에 대한 동경의 즐거움을 준다는 것. 또한 동경을 느끼는 관객에게 죄책감을 눌러주기라도 하듯, 상류사회의 그것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주인공의 정직함과 긍정성으로 타파하며 보여준다는 것이다. 정직함과 긍정성, 명랑함은 보는 이까지 함께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 이것은 상류사회의 속물성과 싸우는 '전투성'으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으로 흡수시켜 마침내 서서히 '변화' 시킨다는 것까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벗뜨 - 극적인 순간은 있다 . 드라마적인 플롯을 위해 )
결과적으로 관객은 환경에 지배되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피변화자'를 동경하며 그것과 동일시되었다가 주인공으로 인해 변화되어가는 동일화의 과정을 겪으며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동일화 과정이 클수록 감동은 더 완벽하게 구현된다.
주인공 현빈(김주원)이 하지원(길라임)으로 인해 자신의 벽을 깨트리고 서서히 변화되어 가는 과정. 이것은 현빈이 폐소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것으로 상징화되어 진다. 현빈의 세계는 이제 조금씩 깨어질 것이다. 하지원의 자취방 유리문을 두드리려고 망설이다 돌아서는 현빈은 그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발을 디디는 그 첫 단계를 보여준 것일게다.
현빈이 속물적이고 완고함이 강할 수록 깨어지는 카타르시스는 더 커질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건 '사랑의 힘 ' - 누구나 사랑이 시작됨을 예감하고 흔들리는 일은 설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고는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김주원이 - 유전자좋고 집안좋은 여자와 결혼해서 가문을 이어가는 정도로만 결혼의 의미를 두었던 그 -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콘트롤할 수 없는 상황은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사랑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그려지고 있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적 이라는 주제, 이 디즈니적인 주제는 곧 있을 '신체 체인지'를 통해 그 판타지성이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해 내게는 시크릿 가든이 여타 많은 한국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색깔로 다가 오게 된다. 그러나 -
영화 '체인지'처럼 그저 몸이 바뀌어 일어나는 코믹 에피소드가 아니라 그것은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사랑'으로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진정한 '변화'로 가는 중간 단계의 '변화'(체인지)가 될 것이다. 현상만으로 빚어지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그 체인지가 인간사이의 드라마를 풀어나가는 도구로 쓰이고 드라마가 메인이 되는 이런 전개는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고퀄리티의 - 드라마이다.
설레며 , 기대하며 이 드라마의 전개를 지켜 보고 있다.
# 현빈과 하지원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이 파트는 조금 사족일 수도 있겠으나 다시 시크릿 가든의 리뷰를 쓸 기회가 올 지 확신할 수 없어 이 글의 말미에 구겨 넣는다.
현빈은 '매우 진지한' 배우이다. 아주 코믹한 상황을 연기하는 순간에도 그에게는 한 줄기 '진지함' 이 늘 배여 있다. 또박또박 누르듯 말하는 그의 대사치기 방법 때문인 듯도 하다. 대사를 유난히 또박또박 말하는 배우는 또 있다. 배종옥. 물론 실제 생활에서도 이들은 이렇게 발음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이렇게 대사 전달하듯이 말하는 이가 그리 흔하지는 않다.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성우와 같은 완벽 발성을 보이는 한석규도 이 점에서는 비슷하다. 극이 시작되고 5분여 정도는 '이것이 극화된 상황', '가상 현실'이고 그들은 지금 '연기하는 중'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전개되고 그들이 캐릭터에 몰입되어갈수록 관객도 같이 몰입한다. - 이와 반대 스타일로는 양동근. 각자 장단점이 있으므로 호불호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리라 생각한다.
현빈이 연기활동을 한 지 오래 되었고 이제는 관객들도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 진 듯 하다. 혹은 현빈이 코믹을 섞을 수 있는, 표현의 폭이 더 커지고 능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의 연기의 '진정성' 이 더 짙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순발력이 좋아졌기 때문일 수도 - 웬지 정답은 이 모든 것이 합해졌기 때문인 듯 싶다.
기초에 충실한 그의 연기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석대로 탄탄히 다져진 것으로 보인다. 기본이 잘 되어진 그의 연기는 몇 개의 것이 더 얹혀지고 바리에이션이 이루어지면서 뭔가 단단한 땅에 뿌리내려진 나무처럼 든든한 느낌을 준다. 감정의 폭이 크고 카리스마가 있는 로코물의 남주인공 . 이것은 그리 쉬운 역할은 아니다. 말랑말랑한 감성이 느껴지는 배우라야 한다. 그의 타고난 진지함이 로코물의 남주인공에게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또한 바른 발성법과 대사법은 데뷔초 시작은 비록 어색해보였을 지 몰라도 그에게는 정통 배우로서의 신뢰감을 갖게 한 것이다. 빠른 대사, 괴팍함이 느껴지는 강한 성격, 한순간에 사랑에 흔들릴 수 있는 감성, 이것을 카리스마있게 표현할 수 있는 건 그가 기본부터 충실히 다져오고 커리어를 쌓아 온 배우여서 가능했을 것이다.
오스카의 양말을 벗기는 주원 - 앙다문 입술 족구중인 주원은 현재 불만이 뭔가 많은 듯 -
하지원.
다모로 주목받았을 때부터 사실 난 그녀에게 약간의 의심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웬만한 탑급의 여배우라면 다들 저 정도로 소화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 이후 몇 번의 어이없는 영화 선택으로 '캐릭터빨'이라는 생각을 굳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발리를 보면서도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생각이 극적으로 바뀐 건 시사회 때의 기사 이후 드라마를 직접 보고 난 대비이다. 미스코리아 출신 김사랑 옆에서 굴욕이니 뭐니 하면서 기사사진이 뜬 적이 있다. 완벽 비율로는 김사랑보다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여배우는 드라마 안에서야 비로소 그 진가가 보여진다는 것을 시크릿 가든을 보면서 다시금 확인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드라마가 있다. 현빈이 그러하듯. 숨겨진 사연이 느껴진다. 강함과 연약함이 동시에 있다. 강한 척 할 때도 흔들리는 여성성이 느껴진다. 강력한 캐릭터의 존재감은 '역시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를 느끼게 한다. 타고난 자질과 재능에 오랜 경력으로 다져진 때문일 것이다.
저 역할을 다른 배우가 했더라면 어땠을까 잠깐 생각해본다. 저 색깔은 안 나왔을 거라 생각된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역할 이라는 건 그녀만이 가진 가치 를 말함에 다름 아니리라.
설레고 - 노련하고 - 화려하면서도 새롭고 - 그러면서도 중심에 회귀하는 드라마이다. 이 모든 형용사는 드라마 자체와 작가, 감독, 배우들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여기 덧붙여 감동도 더해 주리라 믿는다.
* 모든 사진 자료들은 SBS 시크릿 가든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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