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재하가 북한으로 갔다 는 것이다. 여기 다음 12화로 넘어 가기 위한 연결의 의미를 하나 더한다면 북한으로 간 재하가 위험에 처해진다는 것. 12화의 내용이 미리 그려진다. 그것 역시 한 줄로 요약된다. '항아가 그를 구한다' 이다.
아주 단순 선명하다. 그럼에도 그 갈등의 크기가 긴장으로 전해지고 다음 12화가 확실하게 재미있으리라는 예감이 온다. 스토리 진행, 기술껏 밀고 다음 화에 대한 기대감까지 넣다니 - 드라마의 효용성을 끝장나게 잘 뽑고 있다.
만약 재하가 위험에 처해 지리라는 것을 예감케 하는 부분이 길었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내부의 돌아 가는 사정인가보다하고 봤는데-, 항아가 저 상황에서 자신의 사랑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나름 힘들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스토리 진행의 일부인 줄 알고 봤다. 그런데, 그것이 다음 진행을 위한 초석들이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다음 화의 브릿지로 넘어 가 주신다. 이 얼마나 유혹에 강한 더킹 팀이신가 말이다. 정말 쿨하시다.
많은 드라마가 갈등 후에 오는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갈등을 강조한다. 12화의 '여전사 항아' 라는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재하의 위험을 시청자들에게 더 강조해 주고 싶었을 법도 하다.
그렇다면 난 또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은근 짜증이 났겠지. 나란 사람, 그런 류의 스트레스에 살짝 약한 인자를 갖고 있으므로. 견뎌 낼만한 강한 신경끈을 가졌더라면 나의 드라마 리뷰 리스트들도 조금은 더 다양해졌을텐데. 극한으로 악함의 끝을 보여 주는 악역들과 사돈에 팔촌까지 얽힌 인연들, 거기에 출생의 비밀까지 보너스로 다 가진 드라마들말이다.
■ 제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습니다
점을 찍는 의미로 11화를 정리해보자.
재하는 항아의 유산 사실을 알게 된다. 다행히 언론에서 먼저 듣는 게 아니라 항아 아버지로부터 직접 듣는다. 북한은 연일 남한 왕실에 대한 비난 방송을 쏟아 낸다. 대한민국의 반응은? 시민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쪽이다. 북한이 또 거짓말한단다. 김항아 좋게 봤는데 영 아니로구만 - 의 반응도 많다. 김항아의 예전 행실에 대해 의심하기까지 한다. 정치권 역시 이는 북한의 악랄한 선전 책략의 하나라고 한다.
불쌍한 것 -
은규태 비서실장(이순재), 왕실은 이에 대해 노코멘트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하는 이런 규태(이순재) 몰래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방송을 녹화해 둔 뒤 방송 당일날 어머니의 도움으로 규태를 따돌리고 북한으로 향한다. 재하가 떠나는 그 시각 방송은 송출된다. 그 내용은 왕족이 아닌 남자로서 자신의 사랑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책임져야 한다면 폐위당할 각오도 되어 있다고 말한다.
몇 개의 위험한 관문을 통과한 뒤 북한에 들어가게 되는 재하. 항아를 직접 만나게까지 되지만 항아의 상처는 생각보다 꽤 깊다. 쉽게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하지만, 흘리는 눈물은 그녀의 상처가 사랑과 외로움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항아를 만나러 간 것이긴 하지만, 국왕으로서 적국을 방문한 족적은 찍어야 겠기에 재하는 몇 가지 일을 하게 된다. 그 중 하나는 선왕 사건에 대해 북한이 관여되어 있지 않음을 스스로 밝히기를 요구하는 것.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북한 핸드폰이 유일한 증거인데 북한으로서는 아직 그것을 개발할 만한 기술이 없음을 발표하라고 종용한다. 결국 이는 재하의 뜻대로 된다. 북한이 혐의를 벗게 되었음을 항아도 방송을 통해 알게 된다.
또한 북한의 몇몇 시설들을 견학하는 일정들을 소화해 낸다. 이것을 틈타 클럽 M은 재하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북한 간부중에서도 강성 - 리상렬 |
현명호 - 북한 실세 |
난감한 김남일 |
남북 화해 무드의 손길을 내민 남한에 세계의 호의적인 눈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남일(김항아 아버지, 배우 이도경). 정치적인 현명한 대처로서 국왕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간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갈리고 그 중 리상렬은 현명호의 판단에 대해 극렬 비판한다. 이에 김남일은 위험을 직감하고 리상렬을 감시하라고 지시한다.
리재하를 없애 주시오 |
목표는 이재하 맞습니까? |
도청으로 듣고 있던 김남일의 수하 |
남일의 전화 통화를 듣게 된 항아는 재하에게 위험이 다가 오고 있음을 예감하게 된다는 것이 11화의 엔딩이다.
(점이 좀 커졌다. 왕점 되었다. 캡쳐때문이라 변명해본다.;;)
■ 12화의 주요 대사
실전같은 훈련 하나, 안해 보갔습니까?
12화에서 듣게 될 항아(하지원)의 대사이다. 예고 파트에서 들려 줬다. 듣는 순간 가슴 속에서 '띵똥' 소리가 들려 왔다.
?? - !!!
항아가 재하를 구하게 된단 말이지? 게다가 저 안심시키는 듯한 대사는 또 뭐란 말인가? 재하가 놀랄까봐 안심시키는 게 아닌가? 엄마가 아기 다루는 듯 하다. 대사 한 줄에서 벌써 하지원의 포쓰가 전해진다.
무엇이 우리를 기대하게 하는 걸까? 하지원의 포쓰를 볼 수 있어서? 액션이 나올 것 같아서?
■ 왕자를 구하는 여주인공 - 신데렐라의 역전
짜릿함의 원인이 그건 아닌 것 같다.
이건 상황의 역전인 것이다. 멋진 왕자님에게 인생을 구원당해야 함이 마땅한 여주가 반대로 그 왕자를 구원한다. 대부분의 경우 여주가 왕자를 구원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힘이 아니라 인덕과 인내심으로 그리했었다.
오빠들을 사람으로 환생시키기 위해 온갖 핍박과 고통을 이겨내고 피맺힌 손으로 가시옷을 지어야 했던 백조왕자들의 누이. 그것이 여주인공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었다. 물론 우리의 항아도 그랬다. 한없이 넓은 마음과 지혜로움으로 재하 왕자의 옆자리를 지키려 노력했었다. 그것은 여성성에 의한 구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옷의 상처를 입게 되었었던 항아가 이번에 더욱 극적으로 재하를 구해내게 되나보다. 내적인 여성성이 아니라 남성을 넘어선 외적 힘으로서.
현대물에서 이런 식으로 고전 뒤틀기가 가끔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여성성과 완벽하게 결합된 예는 그리 쉽게 찾아 내기 힘들다. 모성을 바탕으로 했던 터미네이터의 여전사, 린다 해밀턴도 아련함은 없었다. 더킹의 경우, 하지원이라는 배우의 색깔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고전 동화에서 이렇게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여자가 있었던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내 데이터에는 없다. 쥐어 짜서 생각 난 게 '인어공주'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구해 낸 거의 유일한 여주인공이다. 물에 빠진 왕자를 구해 낸게 그들의 첫 인연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왕자에 의해 선택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왕자를 선택했다. 첫 눈에 뿅한 건 왕자가 아니라 인어공주가 먼저였다. 그 사랑의 선택을 지켜 내기 위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저당잡히기까지 하며 왕자를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지켜 내는 자주적 여성이다. 자유로운 물 속 세상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방인의 세계로 스스로 걸어 들어 온 여성이다. 사랑때문에 -. 이는 동화 사상 보기 드물게 용기를 가진 여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인간과 인어라는 '종'의 장벽까지도 뛰어 넘었던 여성이다. 마지막 거품으로 사라지는 희생도 희생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왕자를 지켜내기 위한 자신의 선택이었으니까. 끝까지 자주적인 여주인공이었다.
가만 생각하니 하지원은 시크릿 가든 에서도 인어공주와 인연이 있었다. 거기서는 인어 공주의 마지막 비극에 초점을 두었었다. 인어공주는 왕실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약혼녀인 이웃나라 공주에게서조차도 귀여움을 받았다. (세컨드로서의 삶을 비유하는 걸게다.) 그리고 주원의 입장에서 볼 때 - 왕자의 사랑에 방해가 된다 싶어질 때 스스로 거품이 되어 사라져 줄 인어공주.
주원이 몰랐던 것 같은데 인어공주는 기실 아주 자주적인 여성이다. 거품이 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공기의 요정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새 삶을 시작한 거다.
거기서도 지금 여기 더킹에서도- 하지원은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주적 여성으로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항아의 사랑도 재하가 먼저 '찍어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 먼저 스스로 시작한 사랑이었다. 국적을 넘어서 자신을 버리고, 재하의 사랑을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자기가 좋아서 시작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왕자님이 나오는 드라마임에도 항아의 사랑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인어공주같다.
■ 이 반전이 상큼하게 잘 어울리는 두 배우
왕자님을 구하는 여전사 - 이 상황을 떠올리다 보니 눈 앞에 그려지는 한 그림이 있다. 민소매 셔츠를 입고 한 손엔 총을 들고 타잔식 로프에 매달려 있는 하지원. 그 등에 매달려 있는 이승기.
실제 그런 장면이 나올리야 없지만, 이 그림은 꽤나 그럴 듯하게 느껴진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걸어 가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하지원은 바위같은 믿음을 준다. 아직까지도 유효한 닉네임인 국민남동생, 이승기. 두 배우의 이미지만 놓고 봐도 왕자님과 그를 구하는 여전사라는 그림은 잘 어울려 들어간다. 게다가 더킹 투하츠의 배역을 놓고 봐도 환상의 그림이다. 깐족거리기만 하다가 항아를 데리러 간다고 나름 용기를 내어 적국에 들어 간 재하. 달래고 얼르어 데리고 오려 한 것인데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된 건 재하이고 슥슥~얍얍~ 능수능란하게 재하를 구해 내는 건 항아이다. 신데렐라의 역전 뿐만 아니라 이 상황의 역전까지도 아주 아이러니며 재미있다.
구하면서 항아의 마음도 극적으로 풀리게 될 것 같고 그런 항아의 마음을 재하도 전달받게 될 것 같다. 그나저나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이 판타지 드라마, 더킹 투하츠는 결말이 어떤 식으로 나게 될까? 항아와 재하가 맺어지는 게 더킹 투하츠다울까,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게 더킹 다울까?
그 궁금함이 오늘 밤에 풀리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하지만 그래도 한 발씩 그 끝으로 다가서려면 오늘 화도 차곡 쟁여 넣어야겠다.
모든 사진은 인용을 위해 쓰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국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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