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방송되었던 7화와 8화는 슬픔의 최상급이었다.
장장 두 시간을 걸쳐 시청하는 내내 마음이 아파 울컥거렸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한계선을 넘은 것이 분명한 그들의 비극. 거의 가족 해체의 수준까지 가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소리내어 대성통곡하고 실신할만큼 눈물을 쏟아 내어도 부족한 그 지경에서 그들은 자신보다 다른 가족의 상처를 더 걱정해서 마음껏 울지도 못했다. 스스로 서 있기조차 힘든 그 상황에서 서로를 떠받쳐 주려 노력하는 그들이었다. 사랑과 책임감으로 어금니 깨물고 표정과 몸가짐을 바로 잡는 그들에게서 나는 비극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 재하의 이야기 - 눈물을 흘릴 시간은 내게 없어
응석부리며 한없이 매달릴 수 있었던 형이었다. 재하가 그렇게 제멋대로일 수 있었던 것은 형이라는 빽이 있어서였다. 그 형이 잠깐 사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여동생은 하반신 불수란다. 아직 깨어나지 못해 자신의 상황을 모르고 있지만 정신이 들고 나면 그 아이의 슬픔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한다. 어머니는? 왕인 형을 믿고 살아 오신 어머니께 이제 자신은 하나 남은 아들이 되었다. 그럼 재하 자신은? 아직 항아와의 엉클어진 실타래도 해결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 커다란 일들 앞에 자신의 일은 잠깐 놓아버려야 할 부분이다. 마음을 추스릴 시간도 없다.
사망 소식을 들은 뒤 차를 타고 이동하던 시간, 재하는 잠깐 다리 위에서 차를 세워 달라고 한다. 그리고 차 밖으로 내려 난간 위에 손을 얹어 놓은 재하. 그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두 눈이 붉어지는가 했는데 한순간이었다. 심호흡을 하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돌아서며 말한다.
일단 수상 만나고 현충원부터 갈 거에요. 미국 대통령보단 그 쪽이 먼저예요.
형의 빈 자리를 내가 메꾸어야 해. 재하는 슬퍼할 틈이 없다. 자신의 슬픔 따위는 돌아 볼 시간도 없다.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아직 형이 죽은 지 만 하루가 안 지났다. 그러나, 형이 죽었건 말건 왕실의 시계는 지금도 똑딱똑딱 돌아 가고 있다. 거기에 재하 자신의 슬픔 따위가 끼어 들 시간은 없는 것이다.
참아도 눈물이 나 - 재하
잠깐동안이지만 옷을 갈아 입을 때도 한숨이 나고 눈물이 난다. 형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그러나, 집무실로 나가며 짧은 순간의 눈물도 지워 버리고는 비서실장에게 묻는다.
- 자,, 뭐부터 하면 되죠?
왕의 일기인 일성록. 시작과 끝을 알리는 키워드를 입력하란다. 선왕인 형의 초상화를 보면서 말하라고 했다. 재하가 시작과 종료 키워드로 선택한 것은 -좋냐와 뭘봐 -
좋냐 에는 나한테 왕이라는 짐을 밀어 놓고 편하게 저 세상 가니 좋냐의 의미가 담겨진 게 아닐까? 뭘봐 는 슬픔을 참아 내려 노력하는 내 꼴을 형이 보는 것, 싫어. 형의 빈 자리를 어떻게 메꾸어 가나 계속 저 세상에서 지켜 볼 형에게 원망의 의미로 한 얘기라고 생각된다.
책임과 의무를 놓아 버린 잠깐동안의 개인 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자신의 상황이 어떻게 이전과 달라졌는지 돌아 보고 있는 재하이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형이라는 존재에 대해 실감하고 있다. 다만 슬픔보다 왕실의 책임이 그에게는 우선이다.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려 힘준 두 눈이 붉어지고 마침내 한 방울 눈물이 또르르 흐르지만 누가 볼세라 급히 소매 끝으로 훔친다.
■ 엄마는 이 나라의 왕대비란다
우리가 다 해 내야 합니다
들어서는 재하에게 언성부터 높였다. 아무리 바빠도 제대로 국상의 옷을 차려 입지 못하고 왔다며 꾸짖었다.
- 이젠 대군께서 국왕 전하십니다.
문이 닫히고 궁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무너지듯 둘째 재하의 가슴에 안겨 우는 연약한 어머니이다.
- 우리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집니다.
우리가 다 해 내야 합니다.
이제 아무도 없다. 왕실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재하, 너와 이 엄마 밖에는 없다. 우리 불쌍한 막내 딸은 ?-
어머니의 작은 어깨 위에 얹혀진 책임들이다.
■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고통일까? 재신 -
엄마가 힘든 것 알아요 -
- 지금 대왕대비마마가 얼마나 힘드신지 아십니까? 휘청휘청 쓰러지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딸인 공주마마가 이 무슨 패악입니까?
어머니가 힘들단다. 우리 가족이 흔들리는 것은 우리 나라 왕실이 흔들리는 거야. 나라도 짐을 덜어 드려야...
이 밝은 미소가 진짜가 아님을 우리는 안다. 날개잃은 나비의 슬픔을 우리가 어떻게 속속들이 다 알랴. 진짜가 아님을 알기에 저 웃음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 난 아직 이방인이지만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 남한, 싫습네다. 당장 돌아가는 차를 보내주시라요.
없는 전화번호로 걸어 하소연한다는 얘기는 뭘 말하는가?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말할 수도 없고 이 괴로움은 항아 혼자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일들이다.
대왕대비를 알아 가는 과정도 힘들고 궁정 예절을 익히는 것도 힘들고 남한의 갖가지를 익히는 것은 더 어렵다. 그리고, 이 가족의 비극을 지켜 보는 것은 더 힘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요?
재하왕자에게는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 챈 항아. 지혜롭고 강단있는 그녀. 그녀는 자신의 사랑과 지혜를 나눠 주고 있지만 그녀 자신은 모른다. 아직까지 그녀가 완전하게 이 안의 구성원으로 받아 들여지지 못했음을.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 두 배의 상처로 되돌아 올 수도 있음을.
■ 당신을 위해 웃겠어요. 사랑하니까 - 식탁씬은 명장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식탁의 대화를 이어가던 그들. 꼬막장이 짜지? 잘 만들었나요? 고기없나?
형의 얘기가 나오자 다시 잠깐 상황을 상기하는 그들. 당황해하는 자신에게 오히려 당황해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 일 아닌 듯 서둘러 일상의 대화로 수습하고 웃으며 식사 시간을 마친다. 자신의 아픔이 다른 가족의 아픔에 얹혀질까 애써 자신들은 아프지 않은 척 한다. 왕대비가 다음 행사 참석을 위해 차를 타고 가고 재신 공주와 왕대비는 웃으며 창가와 차 안에서 서로 손인사를 나눈다. 그들의 웃음은 딱 거기까지 -
오빠... |
슬픔을 들키면 안돼 |
형의 마지막 전화를 끊었었어 |
차가 출발하고 재신의 눈에서 자신이 멀어지고 있을 때야 꺽꺽 차오르는 울음을 토해 놓는 왕대비이다. 재신은 오빠의 사진을 부여 안고 그제서야 운다.
그들의 눈물을 누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 아닌 다른 가족의 아픔이 자신의 것보다 더 크다고 믿는 때문이다. 이것은 바꿔 생각하면 각자의 아픔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아픔이 이만큼 큰데 당신의 아픔은 나의 것보다 더 크겠죠? 나의 슬픔 따위를 더 얹어 당신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라는 뜻이다. 그래서, 식탁에서 그들이 애써 웃을 때 그들 사랑과 슬픔의 크기가 느껴져 더 슬펐다.
평안한 척 하나 평안할 수 없는 그들의 현실이 대비되어지고 웃는 얼굴 너머 슬픔이 교차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 책임등이 모두 오버랩되어진 장면이었다.
■ 시청자로서 더 슬펐던 이유는 - 죽은 선왕, 이재강의 가족들이 슬퍼하는 것으로도 슬픔이 전이되어 같이 슬펐지만 왕의 죽음 자체가 주는 슬픔도 컸다.
1화에서 교실 린치를 당하던 재강형이 기억나시는지? '세금만 받아 먹는 왕족인 주제에'라는 말에 금새 표정에 주눅들은 게 드러났다. 그는 다부지게 되받아 칠 수 있는 소년은 아니었다. 순했고, 완력보다는 감성의 부분이 컸던 사람이었다. 국민의 세금을 받는 만큼 무언가 되돌려 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었던 재강형이다. 남과 북의 화합이라는, 자신의 이상을 그려 둔 뒤 그것에 한발씩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외롭게 홀로 왕궁에 들어 온 항아를 보듬어 주었던 시아주버님이다. 힘들었던 항아가 재강의 전화를 받고는 금새 울먹한 표정이 되었었다. 그리고 물었다. 언제 오십네까? 단 한 명, 따뜻한 말을 건네주던 자기 편이었기 때문에.
아내와의 짧은 여가 시간에도 감사해 했고 태어날 2세를 상상하며 행복해 했다. 참으로 다정다감한 남편이요, 형이요, 시아주버니요, 아들이었던 이재강.
이재강역의 배우 이성민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참 느낌이 좋았다.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고뇌하는 유약한 지식인의 이미지를 제대로 풍겼는데 마치 실제로 대한민국 현대에 왕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저런 이미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인 부분이 있었다. 지나치게 미남이지 않은 점도 작용한 듯 싶다. 다정하나 강단있는 왕, 이재강. 웃을 때 어딘가 슬퍼 보이는 부분이 겹쳐지는 것으로 1화 때부터 이재강의 뒷 스토리가 밝지 않으리라는 것이 예감되긴 했었다.
슬펐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이재강을 이제 더 이상 이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잘 들어 맞는 맞춤옷같은 이 배역의 이 배우를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에. 동생 재하와 치거니 받거니 다정스레 농담을 주고 받는 즐거운 장면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신 공주
돌이켜 생각하면 더 슬픈 장면 |
아름다운 이 장면은 건강한 그녀에의 마지막 추억? |
재신공주가 하반신 불수가 되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배우 이윤지를 앞으로 남은 드라마 회동안 내내 휠체어에 앉은 모습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나의 마음에 너의 맘을 들여 놓은 순간부터 -
설레던 내 마음을 운명이 될 거라고 믿었던 철없던 처음 사랑.
숨만 쉬어도 행복했었어
햇살같은 사랑이었어
영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추억 속에 남았어.
이제 아픈 맘 슬픈 눈물 내 뺨에 기대어도 괜찮아
기억 속 상처 온 몸 가득 남겨져도 괜찮아
마음이 먼저 선택한 너
처음 사랑으로 충분해
영원히 지킬께 내 처음 사랑. (재신 공주가 별똥별을 보며 은시경에게 불러 주었던 노래)
아름답고 자유롭던 한 소녀가 왕족의 자존심으로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 내린 뒤 하반신 불수가 된다. 그리고, 이어 지는 절망과 고통의 시간들. 이 한 챕터만 떼고 봐도 비극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 안에서 이것은 작은 부분이 될 것이다. 대체 앞으로 이어지는 비극은 얼마나 더 크길래?
■ 은규태(이순재)는 악역이 되려나?
자신의 과오를 숨기는 비서실장
은규태가 자신의 정보누설로 선왕이 서거했음을 숨긴다. 또한 김봉구의 실제 정체에 대해서도 재하에게 정확히 알려 주지 않는다. 선왕 재강은 이미 김봉구에 대해 알고 입국을 막는 등 그에게 적대적으로 대해 왔는데도 재하에게 이를 숨긴 것은 은규태가 이전과는 다른 노선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김봉구는 은규태가 뇌물을 받은 뒤 선왕의 휴가지를 누설했음을 알고 있다. 은규태가 이를 스스로 밝혔으면 몰라도 숨겼던 이상 그 사실은 은규태의 약점이다. 김봉구의 정체를 재하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는 것은 재하의 이익과 반하는 행동이고 이것은 은규태가 자신의 약점이 약점이라고 자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2화에서 은규태는 아들인 은시경에게 '왕실의 호위대장같이 왕실 뒤치닥거리를 하기에 너는 좀 아깝다 '는 식으로 얘기한 적이 있다. 왕실에 대한 그의 인식이 어떠한 지 엿볼 수 있다. 그도 충성이 모토인 왕궁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지는 은시경과 재신공주의 러브스토리를 예상해 보자. 은규태의 노선은 반대급부로서 힘을 얹어 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왕실에 대해 살짝 유보적인 입장인 은규태는 하반신 불수인 재신 공주와 아들의 사랑을 못마땅해할 것이다. 게다가 재신 공주로서는 은시경의 아버지가 바로 오빠를 죽게 하고 자신을 불구로 만든 은규태인 셈. 고난이 세어질수록 사랑의 결집력도 강해지는 법이다.
또한 은규태의 변신이 단순했던 봉구 축에 힘을 실어 주며 재신 공주 쪽도 강화시켜 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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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8화는 이재하(이승기)의 주변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그려 내었다. 재하는 이전 화에서 보여주었던 철없는 면을 벗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슬픔과 그것을 이겨 내려는 의지, 책임감등으로 캐릭터가 더욱 깊어지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능동적이고 자주적이며 따뜻한 모성애와 강단있는 카리스마 등 여주인공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완벽한 미덕들을 갖춘 김항아. 이재하가 어려움을 겪은 7화,8화에서 그 장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제 9화는 항아의 시련편이 기다리고 있나보다. 예고를 보아하니 선왕의 암살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으로 증거물이 조작된 듯 하다. 그 중심 인물로 항아가 지목되고 있고.
다음 화도 기대해본다.
* 일요일 아침에 더킹 투하츠 리뷰 하나가 더 예약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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