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따라 계속 운이 좋지 않았다.
스팀 다리미에 넣으려고 물을 채워둔 컵을 돌아서며 발로 차 엎질러 버렸다든지 휴대용 물통의 실리콘 바킹을 빼내 씻다가 그만 찢어 먹는다든지 하는.
이거슨 그 말로만 듣던 파울리의 효과..........??
그게 뭔데요? 파울리의 효과라뇨?
호기심많은 작은 놈이 물었다.
그건 말이지... 파울리는 유명한 물리학자인데 말야, 이건 물리법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서 -
# 파울리는 누구?
정식 이름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 (Wolfgang Ernst Pauli)는 1900년 4월 25일 ~ 1958년 12월 15일 살다 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다. 아마 이름은 들어 보았을 수도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사람이니까. 1945년 노벨 물리학상도 받았다. 엄청 유명하다. 상대성 이론의 기초를 마련했고 양자론의 체계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 고 사전에 나온다. 원자 핵분열을 연구해서 핵폭탄을 만들었던 천재, 페르미 박사랑도 친한 사이다.
이 파울리의 업적으로 3 가지가 꼽힌다.
1) 파울리의 원리 : 배타 원리(exclusion principle) 1
2) 파울리의 중성미자; 20 대 초반에 착상했는데 이것이 실험적으로 확인되기까지는 30 년의 세월이 걸렸다.
3) 파울리의 효과 : 매우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상으로서 순수한 실증적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또 아마 장래에도 이해되기는 힘들 것이다.
여기서 일단 알 수 있는 점은 파울리의 '원리' 와 '효과'는 매우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파울리의 효과는 1번의 배타 원리와 대등하게 대접받을 정도로 매우 무게감이 있는 것이었다. 파울리 3대 업적중 하나로 당당히 취급받는다.
파울리의 효과에 대해 설명한다면 -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나 어떤 존재가 주변에 미치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현상을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추상적인 설명으로는 이해가 힘드니 조금 더 사실적인 설명으로 들어가겠다.
힌트 : 저 사진 속 파울리의 모습에서 웬지 엄청난 포쓰가 숨겨져 있을 것 같지 않나? 뭔가 쌩뚱맞고 - 이해하기 힘든 그런 어둠의 포쓰 -
그의 쌩뚱맞고 이해하기 힘든 어둠의 포쓰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먼저 소개하겠다.
파울리가 17세 때 빈에서 아인슈타인의 강의를 들은 뒤 그에게 던졌던 말이 아직도 기록되어 있다.
아인슈타인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덜 멍청한 것 같군요
# 그의 동료들이 증언하는 파울리의 효과
위 사진은 1927년 solvay 물리학회에 모였던 학자들의 스냅 사진이다.
왼쪽 앞 3번째가 퀴리부인이고 중앙에 아인슈타인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다. 슈레딩거 방정식,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실성 이론, 보어의 원자이론, 랭뮈어 방정식, 플랑크 상수, 로렌츠 변환 등등 - 그 많은 위대한 법칙의 주인들이 바로 저기 앉아 있다. 그리고, 배타원리에 빛나는 우리의 파울리도 저기 계시다. 제일 뒷 줄 오른쪽에서 4번째.
이 사진을 찍었던 날 있었던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는 -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아!" 발언이 나왔다.
거기에 보어가 "니가 뭔데 신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반론을 했다고.....
여하튼 저 시대에는 천재들이 와글바글한 때였고 또 그들끼리 친분도 매우 깊었다. 파울리의 효과라는 것도 실은 그의 동료들이 이름붙여준 것이니까.
실험물리학계에서 그는 그의 성과보다는 무시무시한 능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이 능력은 통칭 '파울리 효과'라고 불리며 실험물리학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곤 했다.
실험물리학을 하다 보면 가끔씩 중요한 실험장비가 고장나서 실험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생겼다. 그럴 때는 십중팔구는 바로 이 파울리의 소행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 당시의 중론이었다.
# 파울리의 효과 정의와 사례 정리 -
- 멀쩡하던 실험이, 파울리만 나타나면 이상한 결과가 나오거나, 심지어 실험 도구가 깨지곤 했다.
- 함부르크 대학의 유명한 실험물리학자 오토 스턴의 예: 파울리와 할 말이 있으면 실험실 문을 닫고 파울리를 바깥에 세워놓은 채 이야기를 하기까지 했다.
- 가모브의 역설 : 이것을 실험에 서툰 이론물리학자의 성향 때문이라고 하면서, 실험실에 들어서기만 해도 반드시 무언가가 깨졌던 파울리야말로 대단히 훌륭한 이론물리학자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루돌프 파이얼스 ( 파울리의 조수)의 증언 : 그 분이 실험실 안에 나타나면 자주 기계가 고장나거나, 진공 펌프가 새거나, 유리 실험도구가 산산조각나곤 했죠.
- 오토 슈테른 ( 파울리의 친구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독일 물리학자) 의 절규 : 그를 막아! 실험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 파울리의 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예 -
괴팅겐 대학의 제임스 프랑크 교수(또는 오토 슈테른 교수라고도 한다)는 어느 날 실험 도중 장치가 망가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원인을 찾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원인은 밝혀지지 않는다. 그 장소에는 파울리가 없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교수는 파울리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 그러자 파울리는 대답했다. 그 사고가 일어나던 시각, 파울리가 탄 열차가 괴팅겐 역으로 들어섰다고....
그에게 있었던 흑마법의 힘을 증명하던 한 예 -
몇몇 물리학자들은 파울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장난을 꾸몄다. 행사 때 파울리가 환영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도르래를 포함한 정교한 장치를 이용해 샹들리에를 떨어뜨리려는 계획이었다. 마침내 행사 당일, 파울리가 들어서자 물리학자들은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러나 그 순간 도르래는 엉켜버렸고, 샹들리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쯤 되면 '머피의 법칙'따위는 파울리 효과에 비해 잽도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듯 .
# 정리
조심을 했는데도 이유없이 컵이 깨진다든지, 정교함을 요하는 어떤 작업에서 실패를 했다든지 하면 파울리의 효과를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좌측에 보이는 파울리의 마력의 눈빛을 조심하자 -
가 오늘의 결론이 되면 너무 허무하겠다. ㅎ ^ ^
난 그것보다도 당시 천재가 외롭지 않게끔 군단을 이루었던 그 시대의 쨍하는 풍요로움이 부러울 뿐이다. 서로 토론하고 반박하고 다툴만한 비슷한 성향의 지적인 집단이 존재했었다는 것.
한 둘만 있었더라면 외로울 수도 있었을텐데 천재들이 떼거지로 있었다. 게다가 서로 다들 친했다.
파울리가 천재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성으로서 친근감있게 농담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의 동료들과 그들과의 관계가 부러운 것이다.
저 일화 속의 파울리는 노벨 물리학상에 빛나는 근엄한 학자가 아니다. 실험실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동료들과 웃고 있는, 엉뚱하고 개성있는 한 남자일 뿐이다.
천재들이 서로 일상을 공유하며 부딪치고 협력하며 인류의 역사를 한 발 앞으로 디디게 했던 시간들. 그들이 모여서 웃고 농담하는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눈부시게 빛나던 시대였다.
지금 양날의 검이 되고 있는 원자핵분열이 발견된 때이기도 하지만 -
* 더보기 안에 위 단체 사진의 조금 더 선명한 사진과 1933년 모임의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 '2개 이상의 전자가 같은 양자상태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의 양자궤도에는 상태가 다른 2개의 전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리로 인해 우리는 원자의 구조를 더욱 확실하게 규명할 수 있으며, 왜 전자들이 양성자 근처에 조밀하게 모여 있지 않은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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