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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타자기와 비틀즈


코로나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매우 많다. 

  1. 태양의 코로나: 태양 대기의 바깥층을 구성하는 부분을 코로나라고 한다.
  2. 코로나 화관: 로마시대에 승리한 사람에게 씌워주던 나뭇가지 화관
  3. 섬모관 : 윤형동물(輪形動物, Rotifera)의 몸 위쪽에 섬모들이 환상으로 나 있는 구조
  4. 물리 : 코로나 방전
  5. 방사관 : 포유류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층
  6. 기타(guitar) 브랜드 :  일렉, 포크 등의 기타를 만들어 내는 브랜드
  7. 타자기 브랜드 : 오래된 빈티지 타자기의 브랜드
  8. 맥주 브랜드 : 멕시코 산 맥주의 한 브랜드


브랜드의 이름으로 코로나가 많이 쓰인 이유는 첫번째와 두번째의 의미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한다. 태양과 연관된 의미와 승리의 화관이라는 의미는 상품 브랜드로 꽤 탐나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코로나에 이런 많은 의미가 있는 줄을 이번에 블로그 이름을 지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맥주 브랜드와 타자기 이름으로 밖에는 몰랐으니까 -

20년 전 쯤에 PC 통신의 한 소설 동호회에서 릴레이 소설 게임을 한 적이 있다. 제목 하나를 정해 두고 여러 명이 각각 자기 스타일로 소설을 적는 것이다. 때로는 앞 사람이 적은 스토리의 뒷 부분을 이어가며 적기도 했다. 그 때 과제로 내어진 제목이 바로 '코로나 타자기와 비틀즈' 였다.

첫 대문을 연 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그와 비슷한 이름을 신춘 문예 데뷔한 여류 소설가의 명단에서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

일본 소설같은 스케치 필법으로 적어 내려 갔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특히 인기있었던 때다. 지금 보면 약간은 옛날 글이구나 하는 느낌. 약간은 치기어리고 잔뜩 멋을 부린 스타일이 그 때의 유행이 어땠는가 떠올리게 한다. - 당시 마음에 드는 글은 도트 프린터기로 뽑은 뒤 묶음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책장에 두툼하게 꽂혀 있다. -

그 내용 안에서 알게 된 것은 코로나 타자기의 자판에서 T 자가 다른 글자들보다 약간 위로 삐쳐 올라간 채 찍힌다는 사실 -

한 영화에서 타이핑한 종이 조각을 힌트로 범인을 밝혀내는 여자 탐정이 나온단다. 튀어 나온 T 자를 보고서 코로나 타자기를 갖고 있는 주변 인물들을 탐색해서 범인을 잡아 낸다.

이어서 다음 소설을 적어 낸 사람은 남성이었는데 코로나 타자기를 애인에 비유를 했다. 

탁탁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글자들을 찍어내는 코로나 타자기는 내 손가락을 타고 내 몸에 딱 맞아 들어 온다. 내 몸에 맞게 반응하는 그녀처럼 -

여자 주인공은 떠오르는 할 얘기가 있을 때마다 코로나 타자기 앞으로 달려가 신나게 두드려 댄다. 탁탁탁탁~~~~

이야기는 액자구조로서 이러한 혼자만의 습관을 어느 bar 에서 남자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남자와의 사이에는 신선한 거품이 가득 찬 맥주가 있고 여자의 요청으로 바에는 비틀즈의 노래가 흐른다. 흥이 난 여자는 맥주잔을 들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얘기를 계속하는데,

난 나의 코로나 타자기가 정말 좋아, 비틀즈 만큼이나 -

20년 정도 전의 이야기인데 그 때는 코로나가 가끔 사용되기도 하는 물건이었던 것 같다. 급변하는 현대 기기들은 20년만에 어떤 물건을 앤틱 장식품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타이프 라이터의 이미지는 문자의 이미지이고 인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저 광고 모델들도 맥주나, 하물며 콜라 광고의 아가씨들보다는 옷을 더 겹쳐 입지 않았나? 타자기 앞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서 기대하는 이미지라는 것은 핀업걸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타자기를 선물받고 싶어하는 어린이들이라니 - 이 얼마나 바람직한가~!!! 아이들에게 권할 수도 있는 교육적인 선물이다. 공부하라고 사 줬다가 게임만 하는 폐해가 생길 수도 있는 컴퓨터 선물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몇 주 전 문득 코로나 타자기가 떠올라 검색란에 적어 넣어 보았다.

나오기는 많이 나왔다.

앤틱 장식품, 코로나 타자기 팝니다. 작동도 됩니다.

작동"" 된다는 것은 이 물건의 본래 목적인 '장식'에서 덤으로 하나 더 얹혀 진 실용성이라는 의미일게다.

코로나도 빈티지가 되었고  비틀즈도 올드팝을 건너 클라식이 되어 버린 지금이다. 코로나의 지적인 이미지가  팝적으로 변하고 락밴드 비틀즈가 고고하게 되어 버린 시간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걸까? 코로나가 실용성을 떠나 상징성과 장식성을 가지고 비틀즈 역시 열광의 락밴드가 아니라 푸근함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코로나 옆에  맥주 한 잔이 어울리는 것처럼 비틀즈 역시도-
 
둘의 교집합은 맥주가 아닐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이제 코로나는 쓸모없는 구닥다리 장식품일 뿐이다. 하지만, 그 희소성으로 인해 더 독특하게 빛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래본다.

가볍게 - 즐거운 마음으로 - 팝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었던 내가 고른 것이 '코로나'이다. 긴 글은 다들 제끼는 요즈음 구닥다리긴 하지만 옛 것에 대한 향수처럼 다시 지난한 글쓰기가 하고 싶어서 이 곳을 열었다. 

다들 작은 눈인사라도 건네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