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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나들이

추석 날의 양산 통도사 풍경 -


올해 추석도 차례는 제가 사는 이 곳 울산에서 치뤄졌습니다.

서울 사는 큰 형님댁 가족들이 모두 다 내려왔습니다. 미국 유학 가 있는 큰 조카만 빼고 세 식구가 다 내려왔죠.

작년 추석 때 형님이 한번도 구경못했다던 양산 통도사를 보러 나섰는데 차가 너무 막혀 돌아와야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음먹었는데 올해는 한번 가 봐야 되지 않겠냐며 차례지내는 시각부터 앞으로 당겼습니다. 설겆이도 서둘러 끝내고 나니 오전 10시.
시댁이 울산인데 통도사 구경을 평생 한번도 못 해 봤다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며 아주버님이 형님께 말한 탓도 있겠죠. 형님은 통도사의 명성이 어디서 나온 건지 기대가 큰 듯 해 보였습니다. 큰 조카있는 시애틀에서 한달간 머무르다가 추석 전날 한국으로 돌아오신 형님께 저는 기대해도 좋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시애틀보다 조금 더 좋을 수도 있다고  -  제 말이 거짓말이었나 한번 보시고 여러분들이 판단해 주세요.





주차장에서 내려 통도사 입구에 다다르기 전까지의 풍경입니다.

차량 주차비에 두당 입장료까지 합해서 저희 4인 가족이 통도사를 들어가려면 2만원 이상이 듭니다. 하지만, 이 날은 추석 명절이라 무료 통과였습니다.
2만원을 아낀 기쁨에 저희들은 행복했습니다.  -  ^ ^



맨 위에 보이던 사진의 다리 위에서 양쪽을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물이 맑았습니다.

세로로 찍으니 물길의 길이가 강조되고 -


 

가로로 찍으니 시야가 시원하게 넓어 보인다는 건 저 혼자만의 느낌인가요? ^ ^;;



저기 정문 - 이라고 해야 되는지 - 이 보입니다.
앞에 보이는 저 셋은 모두 같은 대학 동문들입니다. ㅋ




영취총림 -

이 산의 이름이 영취산이고 총림이라는 것은 많은 수행승들이 한 곳에 머무는 것을 나무가 우거져 숲을 이룬 것에 비유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선승(禪僧)이 좌선을 수행하는 도장을 일컫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총림이 5군데 있는데,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수덕사, 백양사를 5대 총림 이라고 하네요.


위 사진에 보이던 빨간 점퍼 아주머니께서 계속 제 앞으로 가고 계시는군요 - ^ ^

통도사는 삼국유사 등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국내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인 통도사는 불법을 통달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 절이 유명한 이유 중에는 이 곳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로부터 모셔온 부처님의 전골진신사리와 치아사리와 부처님께서 친착하셨던 가사와 창건주이신 자장율사의 가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아, 삼보사찰이 뭐냐구요?

세 가지 보물 사찰들 중 하나라는 거죠.

법보 (法寶) 사찰인 해인사, 승보(僧寶) 송광사, 그리고 바로 이 통도사는 불보(佛寶) 사찰로서 이 세 개를 일컬어 삼보사찰(三寶寺刹) 이라고 합니다.




 


저런 아치형 다리가 곳곳에 보입니다. 사진상 보이지는 않지만 다리와 다리 사이의 물 속에는 분수를 쏘아 올리는 장치들이 박혀 있더군요.
바위와 나무들에는 세월이 켜켜 쌓인 듯 초록 이끼가 소복하게 덮여져 있었습니다.





영취산 통도사라고 크게 적힌 현판 아래 좌우 기둥에 세로로 적혀져 있는 글은 - 불보종찰, 국보대찰  입니다. 
국보급 큰 절이라는 의미 -

웅장하죠? 사실 통도사를 불국사나 이런 저런 다른 절들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나게 규모가 크다... 라는 생각은 아주 옛날부터 해 왔었습니다.
삼보사찰 중의 하나라는 설명을 듣고 나면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리고 주변 경관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웅장하고 수려한 아름다움입니다.



위의 현판이 달린 문을 지나기 전 왼쪽 편으로 보이는 풍경입니다. 가로로 흐르는 내와 정 대각선으로 흐르는 세로의 내입니다.



위의 세로 내와 교차되는 가로 내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입니다.

좌우 어디를 살펴봐도 수려한 경관들입니다.



양산 통도사 동종입니다.
조선 중기에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자주 볼 때마다 그냥 스쳐가듯 지나갔었는데 그 날은 웬일인지 이 동종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구석구석 꼼꼼히들 살펴보고 있었고 저기 설명문도 열심히 읽는 분위기. 덕분에 저도 사람들틈에 섞여 처음 보는 것인 마냥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보았습니다.




바로 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보이는 첫 풍경 -

왼쪽편 나즈막한 담벼락을 따라 살짝 오르막길을 올라간 뒤 마당에 올라서면 이제야 '통도사에 다다랐다' 라는 실감이 듭니다.

 




낮고 소담스런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여인네들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다정하면서도 기품있는 여인네들 -




윗 사진들의 건물들 단청을 스크롤을 올려서 한번 확인해 보세요. 초록색의 알록달록한 색깔입니다. 그것은 후대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고 이 흙빛의 단청 건물은 아주 오래전의 원래 건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흙바람을 맞아 곱던 색깔들이 자연스레 덮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연못은 구룡연못입니다. 너댓평의 아주 작은 크기, 타원형의 이 연못은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자장스님이 이 통도사를 짓게 된 계기가 이 연못과 연관되어져 전해오고 있습니다.

구룡이라는 말이 아홉마리의 용이라는 뜻이죠. 이 연못은 통도사를 짓기 이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합니다. - 이 작은 연못에 살다니 크기가 작았던 모양? -  이 곳을 만든 자장스님이 절을 지을테니 용들에게 모두 다 떠나라고 명령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고 스님은 법력으로 모두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 중 눈이 먼 용 한마리가 있었는데 그 용은 불쌍히 여겨 이 연못에 살도록 해 주었다고 하네요. 용의 신통력때문인지 아무리 가물어도 이 연못에는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연못의 또 다른 이름은 구룡신지 (九龍神池 ) 라고.




이 문 안에는 사리탑이 모셔져 있다고.



이리저리 겹쳐진 건물들이 암만 봐도 참 묘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저 담벼락 너머의 사람들은 지금 탑돌이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통도사 내부 풍경 중.




가다가 열린 문 틈으로 열심히 참배하는 모습이 보여서 한 컷. 지금 사진 속에 보이는 소녀는 이 사진을 찍기 전까지 정말로, 아주 정말로 열심히 절을 드리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사진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린 소녀였어요. 같이 있던 형님은 저렇게 어린 소녀가 저토록이나 열심히 절을 하다니 - 라고 감탄을 하셨습니다. ㅎ




이건 저 위에 보이는 대문 사진을 지나면 나오는 풍경입니다.




대법당인 모양입니다.

마이크 시설도 있고 내부는 무지막지 넓었습니다. 압도될 정도로 -

천정의 화려함에 눈길이 가죠?



앞에는 큰 상이 하나 차려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차례를 지낸건지?




몇 년전 저도 여기 사람들 틈에 끼여서 수십번 절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고모님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같이 - ^ ^
마치고 절밥도 한 그릇 얻어 먹었었습니다.


 


수험생 부모들의 100일 기도가 진행중이라던데 위에 보이는 저 이름표들은 그 분들의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흰색 이름표에는 소원성취라고 적혀져 있구요, 노란색에는 어떤 이름들이 각각 적혀져 있었습니다.



절 음식을 위한 장독대들입니다. 통도사 장독대들이죠.



약숫물도 한 그릇씩 퍼다 마시고 -


아래 더보기 안에는 명부전에 대한 설명 팻말이 들어 있습니다. 클릭하면 원사이즈대로 확대되니 궁금하신 분은 열어보세요.






나오는 길에 보이던 큰 나무와 그 옆의 바위.




이 나무입니다.




그냥 돌아가기 섭섭해서 가는 길에 울주군 대암댐 옆에 있는 롯데 회장 신격호의 별장 앞을 들렀습니다.


정확한 주소는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입니다.
제 기억에는 제가 유치원 다닐 때 소풍을 이 안으로 간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다들 그럴 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아주 예전에는 이 곳을 일반인에게 열어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옛날 다니던 유치원을 찾아가 기록을 찾아봐야 확인할 수 있을까요? ^ ^;;




위의 별장집과 마주보고 있는 길 건너편의 집입니다.
여기가 원래 신격호 회장이 나고 자란 생가이구요, 이 건너편에다가 큰 별장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이곳 나름대로 손질을 하며 보살피고 있는 거구요.






살지 않는 집이지만, 그래도 말끔하게 정돈되어져 있었습니다.



저 초가지붕들은요, 실제로는 볏짚이 아니고 볏짚처럼 가공된 비닐들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대한 거미...ㅜㅠ 제가 아라크노포비아가 아닌 것에 감사를 드리지만, 그래도 조금은 징그러울 정도로 큰 거미 -
분명히 손질이 되어 있는 집인데 저 거미줄을 못 봐서 못 치운걸까요, 아님 의도하여 그냥 둔 것일까요?

이 또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오래간만의 바깥 나들이였습니다.

여기 코로나 블로그에 올리기 전에 이 사진들을 몇 장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여러 외국인들이 팔로우를 해 오셨습니다. 예전에도 한옥으로 된 레스토랑을 찍어 마이스페이스에 올렸는데 외국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더군요. 하긴, 우리 눈에도 아름답죠. 그들 눈엔 신기함까지 얹혀졌으니 더 눈이 동그래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 사진상으로나마 보신 소감은요? 익숙한 풍경이지만 낯설게 보니 또 다르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