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잡아 끈 1화였습니다. 갖가지 화려한 카메라 테크닉과 스토리를 풀어가는 세련된 솜씨, 색깔이 각각 분명한 캐릭터들이 1화에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모든 드라마가 1화에서는 이야기를 펼쳐나가기 위해 전반적인 배경들을 설명하게 됩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죠. 이것을 덜기 위해 드라마마다 나름의 장치들을 집어 넣게 마련입니다. 나쁜 남자에서는 세련된 영상과 빠른 속도감으로 이것을 덜어 버리려 한 듯 했습니다. 이것이 다소간 지나쳐 불안함을 주기도 했습니다만, 이어진 2화에서 이것이 단지 1화이기 때문임을 증명하며 본 궤도에 안정적으로 올랐습니다.
# 세련된 영상, 속도감 있는 진행 -
거의 모든 화면이 1초이상 같은 앵글로 찍히지 않았습니다. 속도감을 강조하는 장면,- 액션씬, 모네의 요트 위로 글라이딩해서 내려오던 씬등 많은 장면에서는 거의 0.2초 단위로 각각 각도를 달리해 촬영되어졌습니다.
하다 못해 '아저씨, 천사예요?' 라며 따라 가던 꼬마 아가씨와 건욱의 빠른 걸음을 찍는 씬에서조차 - 멀리서 걸어오는 것을 정지된 상태로 찍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대상들을 따라 카메라가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긴박하게 전화걸며 쫓아가는 홍태라(오연수), 앞장서 걷는 건욱(김남길), 뒤쫓는 모네(정소민)들을 카메라는 쉴 새없이 샷을 바꿔가며 잡고 있습니다.
첫 장면 - 옥상 위의 한 여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던 장면에서도 빠른 속도감으로 여인의 얼굴을 줌해서 들어갑니다. 뒤이어 계단을 올라가는 건욱의 발만을 보여주고... 원경과 클로즈업을 숨가쁘게 바꿔가며 교환하고 다양한 각도로 잡히던 장면들의 전환은 마치 CF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속도감 있었습니다.
친절히 캐릭터를 설명하는 촌스러움 대신에 처음의 사건이 심건욱으로 인해 일어났음을 암시하며 건욱의 캐릭터가 나쁜 남자임을 보여줍니다.
밝고 어두운 화면의 대비, 지상과 공중의 시각적 대비, 원경과 근경의 대비, 실내와 실외를 오가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영상의 스타일리쉬함에 압도당하며 끌려 들 듯 보다가 걱정되기 시작한 부분은 이어진 장면입니다.
어둠의 장면으로 시작해 다음 장면은 사건 현장을 찾은 수사진들. 초입 부분의 어둡고 강렬함과 대비되어 밝은 화면으로 시작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이 장면에서도 계속 핸디캠을 쓰는 듯 흔들리더군요. 과도한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는데 미술관에서 문재인(한가인)이 직원에게 홍태성에 관해 이야기를 듣는 장면 - 문재인의 사고와 감정을 따라 잡기 힘들만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테이킹은 살짝 깊은 우려를 가져왔습니다.
2/3 지점, 옥상 위에서 따라온 꼬마에게 눈을 쳐다보며 얘기하던 건욱의 씬에서도 마찬가지 - 말갛게 뚫고 들어 올 듯한 건욱(김남길)의 시선을 쳐다보기엔 카메라가 너무 흔들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것이 1화이기 때문에?? 불안해서 2화를 놓치기에는 1화의 스토리가 매력적이었죠.
이 정도의 세련됨을 지향하는 드라마라면 배우들이 출연하고 싶어할 만한 작품입니다. 통속드라마도 아니고 가족드라마도 아니고 막장드라마도 아닙니다. 스타일리쉬한 드라마의 이미지는 그대로 배우의 이미지로도 이어지니까요.
단, 스타일리쉬함이 영상미 자체로만 이어져 배우의 캐릭터를 잡기에 부족하다면 그건 또 문제겠죠. 우려를 딛고 멋진 2화를 열게 됩니다.
# 불친절하면서 친절한 스토리 텔링 -
사람들은 그다지 인내심이 크지 않습니다. 구구절절 설명이 길어지다보면 이내 집중도가 떨어져 버립니다. 1화에서 건욱(김남길)이 입양(?) 되었다가 쫓겨 나온 과거사에 관해 플래쉬처럼 짧은 영상으로 스쳐 지나갑니다. 건욱이 여배우를 구하고 배 위에서 실신해있을 때 약간 더 설명이 부가되어 그 장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라고 관람자의 호기심이 커져 인내를 준비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세한 상황들이 펼쳐집니다.
옥상에서 떨어진 여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 누구? 라는 호기심을 갖게 하고는 띄엄띄엄 천천히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보여집니다. 세련되게도 이 여인은 홍태성(김재욱)의 가정사와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적절하게 얽혀집니다. 또한 이것은 건욱을 설명하는 장치가 됩니다.
건욱이 계획적으로 모네쪽에 접근했으리라는 것은 자신을 쫓아오는 소녀를 기다리는 듯 모퉁이에 숨어있을 때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확실해지는 것은 2화에서 건욱의 집 벽면을 가득 채운 모네쪽 가계도의 그림에 의해서입니다. 대사가 아닌 영상 몇 컷으로 -
건욱이 생각하는 복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여배우의 코디가 패러글라이딩끈을 끊어버렸을 때 그의 대사로 설명됩니다.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온 최초의 표출이었습니다만, 이 역시 직접적이지 않았습니다.
일견 불친절한 스토리 서술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계속 봐야만 전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드라마의 영상 자체가 집중할 수 있게 하고 뷰어의 집중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친절하고도 세련된 연출방법이라고 느껴집니다.
# 적절한 캐스팅, 선명한 캐릭터 -
김남길(심건욱) - 유리알같은 배우. 남자배우들 중 국내외를 통틀어 표정에서 심리가 이토록 맑게 내비치는 배우는 잘 없는 듯 합니다. 이런 느낌의 연기를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선하고 해맑고 정직한 느낌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김남길은 명징하게 느껴지는 표정연기 가운데에서도 남성미, 힘이 느껴지며 간간이 퇴폐미까지 엿보이며 섹시함도 가진 드문 배우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김남길의 매력과 연기에 많은 부분을 걸고 가는 드라마입니다. 누구나가 매혹될만한 치명적 매력을 납득시킬 수 있는 장치는 많겠지만 아무래도 그 배우 자신이 설명해야 되는 부분이 크겠죠.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나쁜 남자 전체를 끌고 가는 모습이 매력있었습니다.
81년생인 김남길 - 아래 위로 열 살 연하와 연상의 여배우들을 상대역으로 맡을 수 있음에 이 나이는 남자 배우로서 참으로 고마운 나이입니다. 나이로서도 나쁜 남자의 심건욱 역에는 적역입니다.
한국 드라마에 콧수염을 처음부터 달고 나온 남자 주연이 있었던가 해서 그것도 신선했었습니다. 나쁜 남자를 설명하기 위해 담배가 가장 효과적인 소품이었겠으나 입에만 물고 있었던 것도 인상적. 처음 드라마의 캐릭터 전개를 보면서 웬지 김남길이 챙달린 육각모자같은 걸 쓰고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로 쓰고 나오더군요. 기무라 타쿠야의 하늘에서 내리는...에서 치명적 매력을 가진 나쁜 남자의 상징은 제 머리 속에 그 빵모자였거든요. 순수한 부잣집 여자가 그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몸에 흉터가 있고 , 그 남자의 아픈 가족사, 어린 시절 -까지도 비슷한 설정입니다만, 나름의 스타일과 색깔로 풀어나가고 있으니 전혀 다른 별개의 얘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재욱(홍태성) 보통 나쁜 남자의 라이벌은 정의롭고 착한 남자임에 비해 이 남자는 다릅니다. 삐뚤어지고 세상에 반항적인 나쁜 남자죠. 차근차근 자신을 갈고 닦고 복수를 계획해 온 건욱에 비해 아무런 준비없이 그저 삐뚤어지게 세상을 살아온 태성이 어쩌면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의외로 자기 역할을 잘 해 내어 놀라웠습니다. 추락사한 아파트 아래에서 오열하던 씬은 호연이었습니다.
정소민(홍모네) - 순수한 부잣집 아가씨의 정형성을 갖고 있는 캐릭터. 쉽게 사람을 믿고 속아 넘어갑니다. 자신이 순수한만큼 상대도 모두 정직하리라고 믿고 있는 아가씨. 이 배우가 이 드라마로 얼굴을 알리게 된다면 이건 이 배우의 행운이라고 밖에 말 못하겠죠. 이 역에 딱 적임입니다. 다른 역할의 다른 드라마였다면 이런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을 듯. 이 드라마 속에서 가장 '뻔한'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상상 가능한 감정과 대사를 보여주리라고 생각되는. 빤한 캐릭터와 빤한 대사들이 딱 그녀의 것인 듯 부합되는 것이 이 배우의 매력입니다.
한가인( 문재인) - 딱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나이와 유부녀라는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 세상에 닳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순진하게 세상을 믿지도 않는 그런 현실적인 캐릭터입니다. 재벌가 자제인 홍태성을 한번 잡아볼까 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얼핏 속물적으로도 보이지만, 이전 엑스프렌드에게 당했던 수모를 생각해 보면 그녀가 이렇게 된 것도 충분히 납득되게 설명되어졌습니다. 그 남자의 웨딩 촬영 현장에 가서 속에 있는 얘기 다 던져버린 그녀를 떠올리면 그녀가 할 말 못하고 끙끙 앓는 통속 멜로의 뻔한 여주인공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토리의 얼개이면서 위의 홍모네와는 차별화되는 그녀의 캐릭터입니다.
오연수 ( 홍태라 ) - 이 역시 적역의 배역입니다. 이제 중년으로 접어 들었지만 여전히 여성적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조금은 차가와 보이는 이미지밑으로 흔들리는 감성을 표현할 줄 아는 오연수는 홍태라 역에 적임입니다.
전국환(홍회장) - 틀에 박힌 재벌가 회장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캐릭터. 호방함과 인간적인 캐릭터 표현으로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힘을 쥐고 있습니다.
김혜옥(신여사) - 확실한 자기 색깔로 캐릭터에 힘을 싣는 배우죠. 1화에서 미술관 직원에게 히스테릭한 성질을 부리는 장면은 약간 어긋나지 않았난 싶었습니다만, 이후 홍태성의 애인과 동석한 식사자리에서의 신여사는 - 재벌가 마나님의 시니컬함과 함께 꽤 나름 품위를 지켜가며 빈정거리는 모습이 적절했습니다.
나쁜 남자의 복수극 - 게다가 그 남자의 최대 무기는 치명적인 본인의 매력이라니 -
배우 개인의 매력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평면적 구성과 평범한 화면이라면 참 밍숭맹숭 설득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배우와 캐릭터의 매력을 극적으로 화면에 투사해주는 것은 영상과 스토리니까요.
통속극으로 빠질 위험을 초반 시작을 미스테리극처럼 시작한 것도 긴박감을 더해 주는 데 적절했다고 보여집니다.
스토리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OST 역시 연출자와 음악감독의 세련된 감각을 뽐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캐스팅에서부터 연출, 대본, 촬영, 음악까지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최상의 궁합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극 초반, 준비해두었던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에 완성도가 높아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이 정도의 퀄리티를 지속시킨다는 것이 보장된다면 나쁜 남자는 수작으로 남으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대중들의 눈높이와 취향이 이것에 잘 부합할 것인가이겠죠. 시청률도 높아진다고 한다면 상업적 성공을 인정받는 것임과 동시에 대중의 눈높이가 전반적으로 올라가게 된 것에 대한 공증을 받는 일로 여겨집니다. 나쁜 남자, 앞으로도 멋지게 펼쳐나가길 바라고 - 또 멋진 드라마가 많은 호응을 받아서 이후에도 퀄리티 높은 드라마를 많이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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