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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임재범과 김연우의 노래를 한 컷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거친 음색으로 포효하듯 노래하는 임재범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이것 -~!






조선의 명필인 '창암 이삼만' 선생의 글씨이다.
붓끝을 얌전히 모두어 시작과 끝마무리를 단정히 한 글씨가 아니다. 굵직하니 큰 붓을 그대로 들어 광야를 휘달리듯 밀어붙이다가 혹은 물이 흐르듯 굽이쳐 흐르다가 때로는 그대로 뭉개어 찍어 누른 듯한 바위같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위 글씨같은 경우엔 네모난 틀 안에 잘 맞추어 들어간 글씨이지만 다른 작품들을 보면 또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건 글자를 빙자한 그림이다.
모두 같은 '창암 이삼만' 선생의 글씨이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있지만 묘하게 파격과 조화로움, 두 가지를 다 갖고 있다.
군데 군데 획이 갈라져 있지만 너무나 유려한 다른 부분들에 어우러져서 그것이 일부러 계산되어진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규칙이 있음을 '인지' 하지는 못해도 '느낄 ' 수는 있다.




이것은 한없는 자유와 틀, 둘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하며 만들어 낸 그만의 세상이다.
글자 크기가 일정하지도 않다. 크고 굵은 글자들 사이에 작고 약한 글자들이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다. 사려깊게 나아 갈 길을 보고 뻗은 듯 멈칫거린 티가 나는 획들과 호방하게 뻗은 획들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삼만의 글씨를 모사하는 것은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다. 아주 힘들게 노력하면 그가 이미 한번 쓴 글자들에 한해 비슷하게 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한번도 쓰지 못한 글자의 조합들로 들어가면 - 모사가 매우 어려워지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그의 글씨들이 어떤 룰이라는 걸로 정리되어지는 단계 이상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의 직관과 심미안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는 영역의 것이다.

임재범의 노래가 '평가 불능'의 경지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한석봉의 일화던가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은데 글씨를 평가받는 자리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한석봉에게 글씨를 써 보라며 하얀 종이를 내어주었는데 그 위에 붓에 먹을 묻혀 흩뿌렸다고 한다. 여러 개의 먹물 점들이 종이 위에 튀었고 - 과제는 그 점들을 교묘하게 가리며 글자를 적어 보라는 것. 물론 멋지게 완수해내었다. 그 일화를 들으면서 떠올린 건 그 글씨는 네모 안에 단정하게 채워진 글자들은 아니었겠다 하는 것이었다.

임재범 자신의 직관과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심미안에 의해 노래는 불리워진다. 즉흥적인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 치밀하게 계산되어져서 부르는 것인지 듣는 청중들은 알 수 없다. 때로는 마디의 시작과 끝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아도, 노래 구절이 끝나는 부분, 툭 던지듯이 마무리를 짓더라도 거슬리지가 않는다. 또한, 끝이 갈라진 채 힘으로 뻗어내리는 획처럼 거친 그의 목소리가 온 힘을 다하여 뻗는 소리를 듣자면 살짝 음이탈이 있더라도 크게 거슬리지가 않게 된다. 그건 그의 노래가 가창 교본에 있는  방식으로 불리워지는 '단정한'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빈잔'을 부를 때 군데 군데 포효하듯 질러대는 목소리는 분명 '락'에 기반을 둔 가창법이었다. 그러나 '여러분'에서 초반 도입 부분, 극도로 절제하듯 뱉어내는 그의  감수성을 보라. 많은 락 보컬리스트들이 가지지 못한 섬세함이다. 그리고 고조 부분 터지는 감정의 폭발이란 - 강과 약, 터지는 것과 안으로 머금고 들어가는 표현, 내밀 수 있는 많은 카드들을 적재 적소에 꽂아 넣고 또 각각마다 수없이 많은 변주들을 능수능란하게 써 먹을 줄 아는 그는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절세 가왕(歌王)이다.




대조적인 것으로서 위의 글은 조선 왕실에서 가장 글씨를 잘 썼다고 하는 '안평대군'의 작품이다. 컴퓨터 자판으로 두드린 듯이 정확한 획의 길이와 각도가 인상적이다. 안평대군의 글씨의 우아함은 멀리 다른 나라들에까지 알려졌단다. 다른 나라 사신들이 우리나라에 들렀을 때 비단등을 바치면서 교환받고  싶어했던 것이 바로 이 안평대군의 글씨였다고 한다.




김연우의 노래를 들으면서 떠올렸던 것이 안평대군의 글씨이다.
발성법과 가창법에 있어서 김연우는 정도(正道)에 가깝게 부르고 있다. 정도에 가깝다는 것은 틀리게 부르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고 클래식 성악의 가창법에서 파퓰러 가수로서만큼만  변형되어진 부분이 있다는 얘기이다. 고음을 내지를 때 호흡이 안정감있게 아래로 깔리면서 탕 두드려 주듯 소리를 낸다든지 노래의 도입 부분 읊조릴 때에도 한 음 한 음 명징하게 짚어주며 부른다든지, 김연우 가창법의 섬세함과 정확함은 흠잡을 데 없을 정도이다.

다만, 김연우의 노래처럼 단정한 창법의 경우는 오랜 세월 그 가창법에 대한 방법상 이론이 쌓여져 왔다. 비록 듣는 이가 그대로 따라 부를 수는 없을 지라도, 또 김연우만큼 부를 수 있는 이가 한강물에 개미 한 마리만큼의 비율로 드문 희소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들어 온 풍월에 따라 이 부분이 어떠하고 저기는 저렇게 불러서 잘 부르는 것이다 - 라고 '평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안평대군 글씨를 컴퓨터 서체로 도량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그것이다. 한 끝 삐끗한 글자 획을 우리는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파격의 글씨와 노래는 마음을 격정으로 뛰놀게 하고 단정하고 서정적인 글씨와 노래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파격을 좋아하는지 편안함을 좋아하는 지는 결국 취향의 문제겠다. 

각각 다른 이유로 내가 애정하던 두 가수가 '나는 가수다'에서 떠난다.  세상에 자신을 알리나 했는데 호사다마라고 잠시 행보를 쉬게 된 임재범을 보면 안타깝다. 김연우 역시 탈락이라는 자체에 무게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아름다운 목소리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게 해 준 이번 기회에 감사하고 싶다... 는 건 그냥 내 마음이다.; 다른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그를 보고 싶다는 내 욕심으로 그에게 보내는 격려라고나 할까.? 임재범은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돌아왔으면 바라고 김연우는 앨범과 다른 무대에서 계속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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