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을 먹었던 한식당의 마당에 핀 꽃들을 찍은 것이다.
처음 보는 종류라 신기해서 한 컷 찍어 보았다.
마당에 있던 또 다른 것. 무언가 열매같은데 - 이름은 알 수가 없고 일단 또 한 컷 -
알 수 없을 땐 기록을 - 그리고 나중에 자료를 찾아 보면 된다 - 고 굳게 믿는다 . ^ ^
기록도 없으면 없었던 일이 되지만 기록을 해 두면 알게 될 수도 있는 , '모르는 것'이 되니까 - 사진이라는 게 없었더라면 옛날 여행가들처럼 일일이 데생등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았을까?
이건 그 식당 마당에 있던 것이다. 한식당이고 주인이 한국인인데도 이런 걸 설치해 놨더라.
그리고, 드디어 작은 킬링필드라고 불리는 '왓트마이'에 도착했다.
사실 이 안에 별로 볼 게 많지는 않다. 저렇게 유골들을 모셔 놓은 곳이 하나 보이고 -
오히려 길 건너 편에 있는 어떤 건물이 더 그럴 듯하게 규모가 큰 듯 하다.
저 버스가 우리가 타고 온 버스다.
현지 가이드 최부장님이 첫 날 버스를 타더니 " 어이, 이 버스 별로네 - 내일 제일 큰 걸로 바꿔와요 - 라고 누군가에게 지시를 한 뒤 바뀐 버스다.
참고로 우리 팀은 14명의 소규모였다.
뒤에 보이는 저 신발의 주인공이 이 고양이들의 주인인지 그냥 길고냥이들인지 알 수 없다.
귀여워서 다들 쳐다보다가 지나갔다. 생김새도 흔히 보던 종류가 아닌 듯 하다.
여기 참..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료들을 보고 설명을 들으면 평화로운 건 지금이고 옛날의 절규가 이 속에 담겨 있구나 싶다.
옛날도 아니다. 불과 30여년전 얘기다.
이 잔혹함을 이끌었던 폴 포트가 죽은 것이 1998년이니 오래 전의 얘기가 아니다.
왼쪽 위의 사진을 보면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일부에서는 저 사진을 두고 여인의 뒷 목에 드릴로 구멍을 내며 죽이는 것이라 하기도 했는데 최부장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했다. 앉은 키를 재는 장면이라고. ㅡ.ㅡ;;
물론 잔인하게 고문을 하기는 했지만 저 사진은 정확히 드릴로 고문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고문하는 사진들 중에 보면 남자가 누워 있고 병사들이 뻰치로 젖꼭지를 뜯어 내는 것도 있다.
여기서의 고문은 앞서 보았던 앙코르 와트 부조 속에 '지옥'을 묘사한 것에서 따 왔다고 한다.
특별히 고문을 통해서 받아 내야 할 정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입을 열라. 빨리 불라구 -" 이러면서 고문을 했던 게 아니다.
그냥 - 죽을 때까지 고문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그 고문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도 없었다.
그저 고문당하다가 죽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진 속의 건물은 죽임을 당했던 이들을 위해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곳 -
이 킬링필드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려면 '킬링 필드'로 찾으면 안된다.
거의 여행 후기들과 영화 정보만 나오니까.
'크메르 루즈(Khmer Rouge) '로 찾아야 관련 정보가 나온다.
크메르는 이 캄보디아 인들의 민족이름이고 루즈는 Rouge 로서 프랑스어 "붉은' (red) 의 뜻이다. 공산주의를 뜻하는 색깔 이름이다.
세계 역사상 존재했던 공산당 중에서 가장 잔혹했던 정권으로 기록된다.
어쩌면 그들은 드라큐라 백작처럼 그들 정권의 잔인함을 세상에 널리 알려 그들에게 심리적으로 굴복하기를 바랬던 것일 수도 있다.
67년 창당되었던 크메르 루즈는 75년부터 79년까지 캄보디아를 통치하게 된다.
그리고 그 4년이라는 기간동안 150만명을 죽인다. 캄보디아 인구의 1/3을 없앤 것이다.
농업국가로 만들어 완전하게 생산과 재산분배를 국가가 관리하는, 공산주의 교과서에 있는 대로 통치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글쓰는 지식인들과 기술자들이 없애야 할 적이었다.
통치를 시작한 폴 포트는 해외에 나가 있는 유학생들과 지식인들에게 모두 편지를 띄운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속히 귀국해 달라.
어느 누가 귀국하지 않겠나? 그들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에 나와 있던 군인들이 버스에 싣고는 고문실로 데리고 갔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의 손바닥을 검사해서 굳은 살이 없는 이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모두 끌고 갔다.
연필이 닿는 세 째 손가락에 굳은살이 있는 이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끌고 갔다.
고등학교를 개조해서 쓰던 한 고문실에는 몇 십만명이 끌려 갔었는데 79년 베트남 침공으로 크메르 루즈가 제거되던 그 당시, 오로지 4명(?) 인가만이 살아 남아 있었고 모두 고문으로 죽었다고 한다.
남아 있던 일부 유골들을 모아 놓은 상자이다.
가만히 보면 갈색이 있고 하얀 백골도 있다.
왜 다른 걸까?
흰색은 남자의 유골이고 갈색은 출산을 한 번 이상 한 여자의 유골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여자의 뼈에는 아주 자잘한 구멍들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저 유골들은 캄보디아의 붉은 황토 속에 묻혀 있으면서 그 구멍들 속으로 황토 색이 물들어서 저렇게 갈색이 되었다고 -
세상의 엄마들은 다 위대하다 -
칼슘 약들도 다 잘 챙겨 드시길 -
최부장님 말씀 - 오늘은 그 여자애가 안 나왔네.. 원달러하던 그 애 - 안 주면 끝까지 따라와서 마침내 소리를 친다고 -
큰 소리로, 한국어로 -
- 배고파-!!!
주변 풍경이다. 우린 킬링필드 영화에 관한 얘기를 조금 더 듣다가 그 옆의 '박쥐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름드리 나무들 - 수종의 이름도 모르겠다. 성인 6명 정도가 팔을 둘러야 밑둥을 이을 수 있을 정도다.
이곳에는 수천마리의 박쥐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밤에만 생활하는 게 박쥐인데 이곳에선 그렇지도 않다고. 낮에도 매달려 있는 박쥐들이 있다고 하는데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땅 위에 새까만 박쥐 똥들이 가득 떨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될 뿐이었다.
나무의 크기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고 우리 둘째가 살신성인으로 보여주신다 -
오른쪽 앞에 보이는 아이는 우리 팀원 중의 한 명. 저 시선이 머무는 높은 곳에 나무 꼭대기가 있을 수도 - 아니면 박쥐들이 보였을 수도 -
멀리 보이는 화려한 건물 하나 - 산만한 나는 보라고 펼쳐 둔 데 말고 항상 그 건너 편의 다른 곳에 눈길이 간다. 그러나 말거나 - 시간은 흘러 -
울창하다 - 평화롭다 - 하지만, 이 곳엔 관광객들 밖에 없다. 캄보디아인들은?
킬링 필드와 박쥐 공원을 떠난다 . 그리고 향한 곳은 바라이 인공 호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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