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앙코르톰이라고 설명을 듣고는 들어갔는데 그 안의 안내판에는 바이욘사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지금 앙코르톰을 보러 왔나, 아님 바이욘 사원을 보러온 건가? 난 헷갈렸지만 여러분은 헷갈릴 필요가 없다. 앙코르 톰은 성곽도시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 도시 안에 바이욘 사원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가 앙코르 톰의 남문이다. 그 위용과 아름다움이 놀랍다. 이 곳은 앙코르 왓에서 1.7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린 앙코르 왓을 본 뒤 은컵이 있는 쌈밥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 앞에서 각자 툭툭이를 배정받은 뒤 그것를 타고 이 곳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이 앙코르톰 성곽도시 인근의 인구는 당시 약 100만명 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이다. 최 대 규 모~!!!!
승려, 관료, 군인들등 그들의 신분대로 따로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 1000년전 -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모퉁이마다 넘쳐나던 캄보디아 왕국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대체 여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문명인이었을까? 야만인들이었을까? 신과 통하는 그들의 위대한 왕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을까?
누군가 분명히 이 곳을 최초 방문한 이방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무엇을 보았을까? 이곳을 보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 사진도 없던 그 시절에 그는 뭐라고 캄보디아 왕국을 설명했을까?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거대한 건축물들과 왕에 관한 이야기, 수많은 보석들과 은세공품들로 인해 이곳을 신비한 곳으로 상상했을 것이다.
좌측에는 착한 신(선신)들의 석상이 있고, 우측에는 악신들의 석상이 줄 서 있다.
말을 듣고 보면 조금 선해 보이는 듯 하고 -
조금 험상궂게도 보인다. 그러나 말거나 아이는 악신의 등을 만져 보고 있다. 금새 돌아서서 버럭~!! 할 수도 있는데 - ^_________ ^
앙코르 톰 남문 주변의 풍경이다. 저 호수는 성벽을 따라 둘러진 해자(인공호수)이다. 옛날엔 악어가 살았다고 한다.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 톰의 문을 지나가며 찍은 컷이다. 성벽은 높이 약 8m 이고, 성벽의 길이는 약 12 Km 이며 그 바깥 쪽으로 폭 100m 의 해자가 둘려져 있다.
이것이 내가 말한 안내판이다. of 가 두 개가 있다. 앙코르 톰 의, 바이욘 사원 의 , 보호관리 - 바이욘 사원이 앙코르 톰 안에 속해있다는 뜻이겠지. 일본 정부팀이 이 쪽의 보존과 보수를 맡고 있다고 되어 있다.
세월이 덕지 덕지 묻은 - 이상한 돌들의 세상으로 들어왔다.
부서진 부분들에 대해 보수하는 작업을 일본 쪽이 맡아서 하고 있는데 문화유적지의 보수는 꽤 섬세한 일이라서 아주 더디게 -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앙코르는 1992년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정부간 회의가 1993년 도쿄에서 열리면서 I.C.C.(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가 결성되었다.
프랑스와 일본의 캄보디아 대사가 공동의장으로 선출되고 유네스코에서 사무국을 맡게 되었다. 그들은 팀을 편성하여 복원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독일 | 앙코르 왓의 압사라 복원 |
미국(World Monuments Fund) | 쁘레아 칸 |
중국 | 차우 세이 떼보다 |
프랑스(EFEO와 공동) | 문둥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바푸온 |
인도네시아 | 앙코르 톰 왕궁의 고푸라 |
이탈리아 | 쁘레 룹 |
일본 | 바이욘, 슈어 쁘랏 타워스[댄서의 탑] |
인도 | 따 프롬 |
소피아 대학 | 반띠아이 끄데이 |
* 각 나라가 복원을 맡은 부분 - 앙코르 왓, 신들의 도시 (앙코르출판사) 참고
1000년 전 만들어진 이국의 도시에서 현시간 한국의 아이가 놀고 있다.
오른쪽 벽면의 부조는 이 바이욘 사원 내부에서 약 1,200m 에 이른다. 앙코르 왓 부조와 달리 이 곳 외부 복도 벽면에는 크메르 인들의 일상생활과 전쟁에 대해서 주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안쪽 본체의 벽에는 신화적 장면들이 부조되어 있다.
*아래 사진들은 클릭하면 커지도록 셋팅되어 있음.
전쟁에 나가는 모습이다. 조각들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이 아니라 맨 아래 1단은 근경 , 위쪽의 그림은 원경을 표시하고 있다.
(우측)중국인 용병들의 모습이다. 이들의 표정을 보면 다들 여유롭게 웃고 있다. 이들은 이미 이 전쟁이 승리할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공짜로 얻는 것과 다름없는 돈과 약탈할 물건들 뿐이다.
(좌측)조금은 우울한 표정인 크메르 병사들의 모습. (우측) 전쟁터로 가는 가족의 모습이다
(좌측) 궁전 안의 모습을 묘사한 부조이다 (우측) 빨대를 이용해서 술을 마시는 모습 - 크메르인들은 빨대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좌측) 닭싸움하는 중국인과 크메르인의 모습 (우측)통돼지 바베큐인 듯 요리를 하는 모습. 오른쪽에는 꼬치 요리중인 것으로 보인다.
특공대의 공격 위쪽 사람들은 원경의 사람들. 물고기 그림으로 수종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특징이 그려졌다.
이외에 닭싸움 뿐 아니라 돼지싸움을 시키는 모습도 있고 병원에서 아기를 낳는 산모와 산파의 모습도 있다. 가족끼리 머리에 이를 잡아 주는 모습도 묘사되어 있고 시장에서 물건파는 여인과 흥정중인 중국상인의 모습도. 시장에서 우산의 가격을 물어보는 여인의 모습도 있고 춤추는 중국인의 모습도, 치료하는 여인의 모습도 -
제 자리를 잃고 쌓여진 돌들 - 복원팀들이 짝을 맞춰 가는 중.
앙코르 왕국을 탐험한 최초의 발견자는?
한번도 캄보디아를 방문한 적 없는 이가 1585년에 책을 냈다. 그 안에서 " 캄보디아 왕이 코끼리를 타고 폐허같은 사원들이 즐비한 밀림 속에서 사냥을 했다."라고 기록을 했다.
안 가 본 그가 어떻게 이런 묘사를 했을까? 수도사였던 이가 캄보디아를 방문한 뒤 주변에 얘기한 것을 듣고는 재조명해서 책으로 썼던 것이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 앙코르 왓은 그것을 만든 왕들의 무덤인 듯 하다.'고 언급했다. 또, ' 성벽에는 산스크리트어 비문이 있는데 20명에 달하는 왕의 명령에 따라 완공까지 700년이 걸렸다, 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라고 말했다.
이후 몇 명이 더 캄보디아를 방문했으나 비문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여러 추측을 남겼다. 중국계 유태인이나 로마인이 남겨 놓은 건 아닐까 추측을 한 것까지는 이해를 하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남겨 놓은것이라고도 추측을 ;;;
- 한 선교사는 1601년 발간한 책에서 '캄보디아에는 파괴된 고대 도시가 있는데 이는 아마 알렉산더 대왕이나 로마에 의해 건설된 것 같다.'라고 했다.
또 다른 한 스페인 선교사는 1601년 발간한 책에서 '1570년, 밀림에서 예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도시를 볼 수 있었다.'라고 했다.
일반 대중들은 낯설고 장엄한 유적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인도의 사원이나, 피라미드, 중국의 절따위를 상상하면서 그것이랑 비슷한 어떤 거겠지... 라고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앙리무어라는 탐험가가 드디어 캄보디아에 대해 서방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글도 잘 적었지만 박물학자라서 박식했고 데생과 수채화에 능했던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앙코르 왓의 유적들을 그림으로 그려 유럽에 공개했던 것이다.
1863년 그는 탐험 기행서를 발간한다. '참, 캄보디아, 라오스 왕국및 인도차이나 중아부 기행' 이라는 이름의 책이다.
그는 이 책으로 많은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설화를 설명한 것뿐만 아니라, 왕국민들의 국민성에 대한 감성적 표현들을 포함, 그림의 재능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전에 대리석이라고 했던 것을 정확하게 어떤 종류의 돌이었는지 기술했고 사암과 홍토라고까지 밝혔던 정확성 때문이었다.
섬세한 표현들로 된 그의 칭찬들 중 하나를 보면 -
" 하늘의 청색, 정글의 초록색, 건축물의 장엄하면서도 우아한 곡선이 너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구조물 곳곳에 있었을 모든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장인 정신은 동양의 미켈란젤로다운 것이다."라고 칭찬했다.
그는 사재를 털어 여러 번 탐사 여행을 떠났는데 3년간의 길고도 험한 여정으로 이 36살의 젊은 탐험가는 라오스 어딘가에서 과로로 사망하고 만다. 서방에서 이 곳 캄보디아까지는 당시 교통상황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와야 할 만큼 먼 곳이었다.
1861년 그가 작고한 이후에도 그의 책은 런던, 파리등에서 출판되어 서양은 놀랄만큼 앙코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 생전 앙코르를 보기를 원했다.
이후 사진기가 생기고 앙코르를 사진에 담는 이가 나왔다. 그러나 이 곳은 매우 험한 곳이라서 몇 푼의 돈 때문에 산적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고 앙코르는 그들이 접근하기에 결코 만만한 곳은 아니었던 것이다.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이것은 메루산을 상징한다. 또한 이 바이욘 사원의 중앙에는 54개의 탑이 있고 그 탑의 4 면에는 각각 거대한 얼굴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것은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신의 얼굴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만든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 얼굴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입술 양쪽 끝이 살짝 올라가면서 짓는 미소는 신비롭고 새벽에 동이 틀 때 시시각각 그 햇살의 방향에 따라 이 미소의 느낌이 달라지는데 그걸 찍으려고 포토그래퍼들이 새벽부터 죽치고 앉아 있기도 한다고.
그 미소의 종류가 200가지라고 한다. 그걸 어떻게 헤아렸;;; 뭐 그 정도로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원나라 황제의 사신이었던 주달관 은 1296년 4월부터 14개월간 앙코르 톰에 머물면서 당시의 왕인 '수리인드라바르만'을 알현하였다.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 여행기 '진랍풍토기'를 쓰게 된다.
거기에 앙코르 톰과 인근지역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 그는 앙코르 톰의 다섯 출입구에 대해 깊이 감명받았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사원의 복잡한 구조나 도금, 금속장식으로 단장된 상층부 황금 조상등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외국 상인들이 캄보디아가 부귀한 나라라고 보는 이유는 아마 이 사원일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의 왕은 백성을 보호하는 마법을 하늘로 부여받은 유일한 존재라고 되어 있다. 왕은 왕국의 평화를 위해 미녀로 변신한 머리가 아홉개인 뱀과 매일 밤 잠자리를 같이 해야 했다고 한다.
- 신화의 미스테리함이 그들 현실과 접점이 이루어지는 희안한 사실이다. 왕이 수많은 궁녀들과 잠자리를 하면서 이에 대해 백성들에게 설명할 방법으로 모두 다 뱀이 변신한 모습이라고, 왕국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보다 왕실의 다산을 위해 왕을 설득하려고 만든 장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매일밤이라니, 매일밤이라니.. 왕이 너무 불쌍;;;
- 왕이 가끔 왕궁 밖을 행차할 때면 황금칼을 차고 코끼리를 탔으며 많은 수행원이 뒤따르는 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시가 행진을 벌였다. 주달관은 그들이 비록 야만인이지만 왕은 무엇인가 아는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그의 묘사에서 왕의 행렬에 관해 매우 상세하게 알 수 있는데 -
그들은 강력했고 신과 연결되어 있었던 신비로운 왕국의 백성들이었지만 또한 미개함도 있었다. 이것이 내가 과거의 캄보디아 앙코르 왕국을 떠올릴 때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같다. 강력하지만 이성으로 통제되어지지 않는 그 힘이 위험스런 느낌과 함께 앙코르 왕국을 더 신비롭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듯 하다.
저번 8 편([베/캄 여행기8] 손오공은 앙코르에서 나온 이야기?- )에서 '라마야나'이야기를 들려드린 적이 있다.
거기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었던 시타의 이야기 - 이것이 신화 속의 이야기뿐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은 그런 식으로 결백을 증명하기를 요구받았다는 사실이 무섭지 않은가? 혐의가 유력한 용의자는 끓는 기름에 손을 넣게 했다. 죄가 없는 자의 손은 아무런 상처가 나지 않는다고 믿었단다. 분쟁이 일어나면 왕은 당사자들에게 무희의 탑으로 가도록 명령했다. 거기서 몇일동안 앉아 있게 하는데 각각 상대의 가족들이 감시를 한다. 죄가 없으면 건강하고 종기나 감기, 고열등이 나타나면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믿었다. 보통 때에도 몸이 아프면 잘못한 게 있어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도시에서 시체가 발견되어도 조사하지 않았고 주달관은 이를 보고 놀랐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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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앙코르 톰 안의 사원들의 신비로운 돌 건축물과 석상들을 보면서 문득 아주 어릴 때 봤었던 '타잔' 드라마가 떠올랐다.
밀림 속 '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넝쿨을 타고 나무 위를 이동하는 타잔. 그는 문명과 미개를 연결하는 중간인이다. 그리고 꼭 등장하는 문명인들. 그들은 동그랗고 딱딱하게 생긴 모자를 쓰고 사파리 스타일의 탐험가 의상을 입고 있다. (부츠도 신고 있지). 그들은 밀림 속에 들어 와서 신비한 마을? 혹은 도시? 를 발견한다. 잉카 제국의 흔적인지 마야 제국의 흔적인지 - 그들의 세상과는 다른 세계에 빠진 것을 스스로 느낀다. 토끼를 쫓다가 동굴 속으로 빠진 앨리스같은 이상한 나라의 그들 - 홀린 듯이 구경하던 그들은 마침내 거기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진 것을 알고는 훔쳐내려다 (꼭~!) 들킨다. 원주민들이 무지하다고 믿고는 감언이설로 속아 넘기려 하지만 마침내 그들의 왕에 의해 야만적인 법의 집행을 받게 된다. 그들의 말도 안되는 욕심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므로 타잔도 그것을 내버려 둔다. 물론 그 중 자신의 뜻이 아니었던 착하고 예쁜 백인 여성이 있으면 그녀만 구해주고 - 이야기가 옆으로 빠진 것일 수도 있는데 - 이 앙코르 제국의 흔적을 보고 있으면 그 타잔 드라마 속에서 백인들이 발견한 그 왕국이 어떤 느낌이었을 지 짐작이 간다는 거다. 문명도 미개도 아닌 - 공포스러우면서도 강력하고 신비로운 거대한 무언가 - 인간 이상의 초자연적 힘을 느끼게 하면서 나 하나의 존재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없어져 버릴 것만 같은 무력감과 공포감, 그런 거 -
저 높은 곳까지 어떻게 돌덩어리들을 쌓았는지도 미스테리 중의 하나라고 한다. 건설방법에 대한 추정의견을 다음 동영상 속에서 최부장님이 말씀해주신다 -
다음 회에선 따 프롬으로 가 본다. 따 프롬은 '선조 브라만' 이라는 뜻으로 바이욘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에게 봉헌하기 위해 지은 불교사원이다. 그 사원벽에 새겨진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해 보면 이 안에는 2700 명의 스님들이 거주하였고, 약 3000 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재산도 엄청나서 금 500 Kg, 35개의 다이아몬드, 4000 개의 진주 - 추모행사 때는 166,000 개의 촛불 이 쓰이고 약 8만명의 노역자가 종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의 설명을 들어도 음?? 하고 뭔가 감이 안 잡힐 것이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 가 '툼 레이더' 를 촬영했던 바로 그곳 - 이라고 하면 아항~!! 이라고 할 것이다.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사람 키의 몇 배만큼 더 길게 나와서 엉켜 있던 기괴한 풍경의 바로 그곳 - 이라고 하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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