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률 40%를 기록하며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들'의 저자, 정은궐 의 또 다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잘 나가는 드라마가 잘 나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그 많은 이유들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각본입니다. 소설과는 달리 매 회 독립적인 완성도를 보여야 되는 드라마의 각본은 조금 다른 전개를 보여야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경성 스캔들' 의 '진수완' 작가가 썼네요. 어떻게 다르게 각색되었나 궁금해서, 그리고 또 뒷 부분의 스토리가 궁금해서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 사건들의 비순차적 배열 -
소설에서는 드라마의 7회에 나오는 부분이 첫 장면입니다. 바로 왼쪽 사진의 이 장면이죠. 온양행궁을 했던 훤과 운이 사라져 행궁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훤과 월의 만남이 이어집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의 과거사부터 시작하죠. 아역들이 열연을 보여준 부분입니다.
산 속에서 첫 만남을 가진 이후 훤의 이상한 예감, 그리고 괴로워하는 월, 원망하는 듯한 '설'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의문을 제시합니다. 대체 저들은 왜?? 라는 -
그리고 민화공주의 어린 시절 염에 가졌던 연모의 과정들이 모두 이야기가 제법 진행된 후에야 나옵니다.
나는 떼장이가 아니란 말이다~!!! 천자문도 모두 떼었단 말이다~!!!
염과 훤의 이야기를 문 밖에서 엿듣다 이렇게 떼를 쓰던
또한, 연우가 아버지에 의해 사약을 받고 - 실은 산 채로 - 무덤에 묻히게 되는 일도 처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거의 책의 3/5 부분에나 되어야 나오죠. (2권의 1/3) 그 앞에 연우가 성수청 무녀로 들어 오게 되는 연유도 느즈막히 나옵니다.
월이 연우라는 것을 훤이 알게 된 이후에도 어떻게 죽었는지 이유는 아껴둡니다. 훤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독자도 모르도록 책의 거의 말미부분에 숨겨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훤이 연우가 마지막 남긴 편지에 있는 한 구절, ' 곧 아버지가 가져오시는 약을 마시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지도 못할터 - ' 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아버지가 가져온 약을 마시고 죽는다? 병으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훤이 가지는 의문을 독자도 같이 가지게 됩니다.
소설은 한껏 의문을 초반에 독자에 던져 주며 그들의 과거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되며 하나씩 천천히 힌트들을 보여주며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겁니다. 아주 살짝은 미스테리물의 전개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이와 다른 전개를 보이는 것은 몇 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미스테리 추리물의 경우 시청율이 높기가 힘듭니다. 1회, 2회를 보지 않고 3회를 처음 보기 시작한 시청자도 금방 스토리를 따라 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추리물의 경우는 그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첫 회부터 충실히 봐 온 시청자라야 흐트러진 얼개의 조각들을 맞출 수가 있습니다.
영화의 경우라면 복잡한 구성으로 하더라도 상관이 없죠. 한번 보고 이해가 되질 않는다면 두 번 볼 수도 있을테니까요. 다층적인 레이어의 영화는 완성도가 높아지면 그것이 더욱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 지금 퍼뜩 떠오르는 영화는 '인셉션'이네요 ;; -
하지만, 드라마의 경우는 채널을 돌리다가 멈춘 시청자도 금방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되기 때문에 단순한 구조를 가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만약 앞 편에 등장한 이야기들 중 뒷 부분을 해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있었을 경우 뒷 부분에서 회상씬 한 두 컷으로 끼워 넣으면 간단히 해결이 되죠.
게다가 이즈음 불고 있는 '초반, 아역으로 기선잡기' 의 이유도 많을 겁니다.
# 연우는 기억을 잃지 않았다 -
중요한 것의 하나인데 소설 속 연우는 자신의 과거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거죠. 드라마에서는 눈 앞에 스치는 과거 기억의 플래쉬로 혼란에 빠진 연우의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그리고, 연우가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 가는 부분들이 맨 처음 해결해야 될 플롯입니다. 그게 해결되고 난 뒤에 훤이든 양명군이든 누군가가 월이 연우인 걸 알아채게 될 겁니다. - 어쩌면 동시에 될 수도 , 아니면 역순이거나 - 소설 속에서는 생략되어진 연우 자신의 각성 파트가 하나 더 첨가된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긴장과 카타르시스 과정의 재미를 하나 더 끌어 내 보겠다는 의도일 것이고 연우의 내면에 조금 더 비중을 얹어 보겠다는 것일 겁니다.
소설에서는 비장의 카드로 뒤에 숨겨 놓았었던 '세자빈 시해'의 뒷 이야기들이 드라마에서는 이미 낱낱이 밝혀진 바 그 부족한 긴장을 '월'의 각성으로 일부분 만회해 보려는 의도같기도 하구요.
연우의 남다른 '서체'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훤이 마치 연우의 정체를 알아 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긴장감있게 그려졌죠.
무릎을 쳤습니다. 책 속에서는 이미 끝난 얘기, 아니 처음부터 생겨나지도 않았던 일들인데 '정체를 밝혀가는 step' 신법을 써 먹다니~!!! 이제 또 어떤 신묘한 공력들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 연우와 훤은 서로 만난 적이 없다 -
소설에서는 왼쪽 장면에서야 둘이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정보통이 좋은(!) 연우는 훤의 정체를 알고 과거 정혼자였던 임금이라는 사실도 압니다. 훤은 물론 월의 정체에 대해 모르구요.
드라마에서는 이미 세자비 간택이 끝나고 궁으로 들어가 두 소년 소녀가 알콩달콩 핑크색 잔치를 많이 보여줬었죠.
이런 부분때문에 고작 몇 년이 지났다고 서로 얼굴도 못 알아 보는가? 라는 의문을 생겨나게 만들었습니다. ^ ^;
하지만, 훤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주인공에게 매료될 수 있는 베이스를 만들기 위해서도 이 과거의 알콩달콩씬이 필요했을 겁니다. -매력적인 주인공의 파워는 꼭 필요한 겁니다 ^ ^ - 현재의 샤프한 임금 훤이 실은 이렇게 순정스러운 면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보고 우리는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달달하고 맛난 사탕을 뭉탱이로 입에 물려준 덕택에 초반 기선제압이 있었을 겁니다. 또한, 그렇게나 좋았던 그들이 떨어져 불행한 운명을 맞는 데 대해 다같이 공감, 아파할 수 있었구요.
점 하나 찍었다고 못 알아보던 '아내의 유혹'도 있는 마당에 못 알아 볼 수도 있는 만큼의 세월이죠. 죽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머리로 이해하려 합니다.
소설 속에서 두 소년, 소녀가 편지로만 사랑을 쌓아 가는 것은 옛날 '펜팔친구' 시절의 복고풍 낭만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살짝은 맥빠진 부분을 소설에서는 미스테리 구조로 만회를 했고 드라마는 최대한 심플, 달달, 화끈하게 당의정을 싼 것일 겁니다.
# 아직은! 약한 4각 구도
4각 구도 이 부분은 각 캐릭터의 설명들이 아직 덜 이뤄졌다는 말과도 연결이 될텐데요 -
소설 속에서는 세 남자가 모두 연우를 좋아하는 걸로 나오죠. 임금 훤, 무사 운, 그리고 양명. 굳이 하나 더 얹는다면 오라버니인 염 도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역시나 여주가 꽃미남들에 둘러 싸인 점은 - ^----^)
아직 무사 운에 대한 설명이 미흡합니다. 연우를 흠모하는 그의 마음도 별달리 비중있게 나오지도 않았구요. 양명에 관해서만 나오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은 출연한 배우의 인지도에 의해 전개 순서와 비중이 결정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운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꽤 매력있게 전개되고 있거든요. 월이 무녀라면 서자인 운으로서 맞상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나 세자빈이었던 연우라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겠죠. 월이 연우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으며 절망해가는 남자, 운 - 갈등 요소로서 꽤나 매력적이잖아요. 그리고, 눈 앞에서 훤과 월의 애틋함을 지켜 보아야 하는 호위 무사라는 컷도 애간장 녹이는 부분일 거구요. 운의 눈부신 무술 실력이 소설에서만큼이나 잘 표현되어진다면 운의 캐릭터는 시각적으로 이 드라마에서 많은 것을 채워 줄 수도 있을 겁니다. 아직 인증되어지지 않은 배우라 좀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배우라면 분명 욕심나는 캐릭터일 것입니다. 열심히 해 주길 -
드라마 홈페이지에 가 보면 운의 어머니와 외숙부에 관한 가계도가 있는 걸로 봐서 조금 더 전개될 것 같습니다. 이것을 얼마만큼 비중있게 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은 배우의 역량에 달렸을 겁니다. 혹은 드라마 연장 여부에도 관계가 있을 것이구요.
월의 시종인 '설'의 이야기도 아직까지 전개되지 않은 부분입니다. 뒤에 가서 크게 써 먹게 될 카드이니만큼 설명이 있어야겠지요. 염의 집 안을 몰래 들여다 보다가 운에 의해 도망가게 되는 씬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아직은 초반이라 주인공 남녀에 집중되는 이야기였지만 곧 운과 설의 부분까지 확장, 심화되어 질 것으로 믿습니다.
# 강화되거나 변질된 캐릭터들
보통의 사극에서 여인들이 나온다면 궁중 암투가 주제가 되는 일이 많았죠.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경우는 순정스런 사랑이 축이 되고 있습니다. 세자와 세자빈, 그 어린 소년,소녀의 애정행각을 보자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러나, 극은 극이니 악역을 맡을 사람이 필요할 겁니다. 소설 속에서 막연한 악의 축이라면 '운명'이라고 봐야 할 지;; 민화공주도 제대로 된 악역은 아니었기 때문에요. 여기서는 대왕대비 (김영애)와 투기하는 외로운 중전 (김민서)가 그 역을 맡았군요. 소설 속에서는 그리 비중이 크지 않으나 김영애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악역의 무게감을 극에 얹어 주고 있습니다. 중전 또한 드라마에서는 연적으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도무녀 장씨(전미선)은 소설 속에서는 입이 걸하고 약간은 주접스런 이미지이나 극에서는 절도와 기품을 가진 여인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훤의 어머니인 대비윤씨(김선경)은 소설 속에서는 털푼이 민화공주의 어머니답게 신중하지 못하고 조금은 가벼운 캐릭터입니다. 아직까지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몇 번의 실수를 반복하며 시어머니 대왕대비에게 책망받는 장면이 자주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상선내관(정은표)은 소설 속에서는 무난한 캐릭터이나 드라마에서는 전체 분위기상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 내고 있군요. 약간은 코믹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캐릭터로서 임금 훤의 개구장이같으며 인간적인 부분을 강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상선내관이 옆에 있을 때면 훤도 임금 아닌 남자, 혹은 소년같은 느낌이 짙어지지 않습니까?
여인네들의 궁중암투가 가득했던 사극에 권태를 느꼈던 사람이라면 아주 상큼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코흘리개 시절에 어머니, 아버지가 즐겨 보시던 '임금님의 첫사랑'이라는 사극이 문득 떠오르네요. 임금님이 사랑을 하면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나 봐요. 현대판 스토리로도 끊임없이 프레지던트 로맨스 류의 영화가 계속되는 걸 보면요.
원작 소설을 읽은 소감은 - 소설이라는 장르와 드라마라는 장르의 특성 안에서 각자의 필력을 휘두르고 있는 두 작가 모두에게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같은 뿌리이나 조금은 다른 전개를 보이고 있는 드라마, 그렇기에 앞으로의 전개 방식이 더 흥미로와집니다.
* 본 포스팅은 2010년 개정판으로 발간 된 책을 토대로 수정되어졌습니다.
혹 웹상에 떠도는 텍스트 본을 보신 분들은 - 발간된 책이 조금 더 완성도가 높으니 책으로 다시 읽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연우 쪽의 심리묘사가 조금 더 강화되어 있습니다. 표현도 더 매끄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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