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을 하게 되면 공연 하나 정도를 일정에 넣게 된다.
해외 여행을 할 때의 스케쥴이라고 하면 - 유적지를 돌아 다니며 구경한다거나 도시 여행의 경우에는 쇼핑을 하기도 하고 길거리 음식을 탐방하며 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돌아 다니는 일정 사이에 들어 가는 공연 관람의 의미라면 휴식의 시간 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시원하고 편안한 실내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자체가 브레이크 타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내에서 무언가를 보여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공연이니만큼 나 스스로가 돌아 다니며 얻는 문화적 정보들보다 훨씬 농축되고 집약적인 문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겠다.
요컨대 떠 먹여 주는 대로 입만 벌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 이런 문화 공연의 아름다운 미덕이다.
태국 여행을 할 때 흔히 보는 쇼가 트렌스젠더들의 쇼이다. 알카이자쇼, 칼립소쇼, 티파니쇼등 여러 이름들이 붙어 있다. 그것도 신기하고 볼 만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공연을 단 하나만 본다고 할 때는 이 시암 니라밋 쇼가 내 구미에 더 당겼다.
스케일이 엄청나다고 했고 태국이 세계에 내세울만한 높은 수준의 쇼라고 했다. 그리고 태국의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쇼라고 했다. 그러니 결론을 종합해 보면 볼거리가 풍성하고 다 보고 난 뒤 뭔가 남는 것도 풍성하다는 얘기겠다. 게다가 이 쇼는 세계적인 관광 국가인 태국을 대표하는 쇼라고 한다. 관광대국 태국의 선진화된 서비스가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현지에서 티켓을 구매하면 우리 돈으로 5만원 정도를 줘야 하나 이 곳, 한국에서 미리 태초클럽 등을 통해 예매하면 4만원 정도에 살 수 있다. 쇼 전의 뷔페 티켓도 팔고 있었지만, 우린 씨푸드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별미를 먹기로 계획했었기 때문에 뷔페는 패스 -.
쇼는 8시부터 시작이지만 한 시간 이전부터 프리쇼(pre-show)가 있는 데다가 그 안에는 민속촌등 갖가지 볼거리들이 많다고 해서 저녁 6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에 미리 도착을 했다.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 주자 가슴팍에 빨간 꽃을 달아 주었다.
들어 가 보니 관광객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공원에 온 사람들처럼 유유자적하게 쉬고 있었다. 이 옆 입구에서는 코끼리 타기 체험 코너도 있었다.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코끼리 등에 태워 줬다.
민속 의상을 입은 여성들과 같이 사진도 찍었다. 이에 대한 번호표를 주던데 쇼를 다 보고 난 뒤 나와서 그 번호표를 내면 인화된 사진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잘 단장된 연못 뒤로 시암 니라밋 이라는 글자가 빛나고 있다.
10여 분쯤이 지나자 중앙 무대에서 태국 민속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 지기 시작했고 -
태국의 이국적인 음악이 가든을 뒤덮었다.
오전부터 오후 내내 뜨거운 열기 아래 걸어 다녔던 시간들이 아련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다음 일정을 궁리하지 않아도 되고 이동할 방법을 짜고 휴식 할 장소를 둘러 보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제공해 주는 서비스들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길어지고 우리는 그 옆의 민속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짜로 동물들의 뼈인지 뭔지, 사냥의 흔적들인지 -
안에는 여유롭게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길이 소담스럽게 잘 가꿔져 있었다.
야간 모드로 찍었는데 삼각대없이도 그런대로 잘 나왔다. ^ ^;;
오른쪽에 저 분은 여기 민속촌 소속이시다. 민속 악기를 연주하고 계셨다. 그 옆의 외국인 관광객들은 악기 하나씩 들고는 핑거 싱크를 하며 연주하는 척 즐거워했다.
우리나라의 전원 풍경과는 확실히 다른, 태국의 이국적인 향취가 느껴진다.
풀들이 울창해서 그런지 뭔가 밀림같은 느낌도 들고 -;
다시 중앙의 광장으로 나왔다.
시암 니라밋 쇼가 있는 홀의 광장
시암 니라밋 쇼 전에 관객들을 위해 프리 쇼 공연을 하고 있다
다소 정적인 연주 타임이 끝나자 무희들이 아름다운 차림새로 쏟아져 나왔다.
거대한 머리탈을 쓴 '모여라 꿈동산 '스타일의 저 등장 인물들은 본 쇼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했었다.
뒤에 물고기 꼬리같은 게 달린 이 아가씨는 인어 공주이다. 지상의 총각과 연애에 빠져~~ ㅎ 스토리가 이어진다.
이 부분은 동영상으로 찍어 왔는데 뒷 부분에 대나무 막대 춤도 추고 관객들을 중앙으로 끌어 들여 함께 즐기는 타임도 있다. 우리나라 마당극 스타일이었다.
시작되고 난 뒤 오른쪽 아래의 톱니바퀴를 클릭하면 고화질로 변경할 수도 있다.
공연은 정확하게 8시에 시작이 되었다. 카메라는 모두 입구에 카메라 보관소에 맡겨졌다. 예전 락 페스티벌에서 카메라를 맡긴 적이 있는데 그런 경험이 전무했던 공연 주최측은 나중에 이 카메라를 돌려 주는 데 2시간 이상이 넘게 걸렸다. 다들 버스 끊기고 밤 늦은 시각까지 카메라를 되돌려 받지 못해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랜 시간의 경험때문인지 너무나도 능숙하게 카메라 보관을 해 주었다. 보관소는 대여섯군데였는데 카운터의 윗 쪽에 특정 색깔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빨강, 노랑, 주황, 초록 등등의 색깔. 그 보관소의 색깔과 동일한 마크가 달린 번호표를 주었다. 공연이 끝난 뒤 자신의 번호표 색깔과 같은 카운터로 가면 맡겨 놓았던 카메라를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여러 군데로 분산이 되어져서 그런지 기다리는 시간없이 곧바로 카메라를 되돌려 받아 나올 수 있었다.
이 공연은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지는 않다. 태국의 역사와 문화 등을 보여 주는 쇼이다. 북부, 남부 등 여러 곳의 농경 문화들과 갖가지 역사적 사실들이 화려한 무대와 의상으로 재연되어진다.
중국의 북경, 상해등의 대규모 공연을 보면 기술적 화려함과 스케일로 사람을 압도하는데 이 시암 니라밋쇼도 기술적인 부분에선 뒤지지 않는다. 내가 느끼기엔 여기의 쇼가 조금 더 섬세하지 않나 싶다. 중국 쪽은 뭔가 시각적인 부분에서 오버하며 뻥튀기한 듯한 느낌이 ;;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 열심히 설명을 해 보자면 -
중국 쪽의 공연 기술이나 스케일들은 '대륙의 스케일로 너희 관객들을 기절 초풍하게 만들어 주겠어' 라는 무대 연출자의 의도가 확 느껴진다. 전체 공연 내용과 잘 어우러져 들어간 기술 효과들이 아니고 약간 유리되어져 있다. 조명들의 색깔도 중국 특유의 오버스런 색깔이다. 파란 유리 조각에 비춰진 듯한 푸른 색 조명에 꽃분홍색 조명들이 함께 배치되기도 하고 - 일단 보기에 눈에 확 들어 오는 원색스러움이 인상적이긴 한데 뒤에 남는 여운이 고급스럽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내 기준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중국 쪽 공연을 괜히 봤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대륙의 스케일이 느껴졌고 그들의 호방스런 기질이 전해져서 흥미로왔다.;;
시암 니라밋 쇼 홈페이지 - (http://www.siamniramit.com/)
사진 속의 배는 중국에서 온 배이다. 무역을 위해 중국 쪽에서 저렇게 물건들을 싣고는 태국에 한달 가까이 정박을 하고 있다가 또 이 곳에서의 여러 물건들을 싣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 간다.
짧은 기간이나마 중국 배의 선원들은 이 곳 태국 마을에서 생활하고 때론 마을 처녀와 연애에 빠지기도 한다. 다시 배가 떠나는 날 이 곳 사람들은 아쉬워하고 중국 선원들도 떨어 지지 않는 발길을 떼고. 사랑에 빠졌던 처녀는 한참동안이나 바닷가에서 서서 배를 쳐다 본다. 석양이 지고 마침내 해가 지고 그 처녀의 모습이 아련하게 밤그림자로 비칠 때까지 -
아마도 이런 것들은 태국의 문화에 중국 쪽 문화가 섞여 들어 온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고사원들의 외벽에 알록달록 붙여진 사기 조각들은 이렇게 중국의 선원들이 놔 두고 간 도자기의 파편들로 꾸며진 것이라고 하니 도자기 문화도 중국 쪽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북쪽의 농경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그 쪽 농가들을 보여주는 무대도 있었다. 실제로 양들이 우리 안에 있었고 계절이 바뀌는 신호가 주어지자 무대 위에 삽시간에 노란 꽃이 피었다. 무대 전체가 갑자기 마법에 걸린 듯이 꽃밭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둥 번개가 치더니 실제로 무대 위에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뒤에 보이는 저 노란색꽃이 일시에 피어나는 것은 장관이었다
조명이 켜지기 전 어렴풋한 그림자로 무대 위에 어떤 이의 물그림자가 비치는 것이 보였다. 조명이 켜지고 그 사람이 앞 쪽으로 돌을 던지자 무대 위에 동심원이 그려졌다. 무대 절반 앞 쪽이 모두 물이었던 것이다. 이어 그 등장 인물은 그 물로 세수를 했다. 약간의 물이 있나 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대 오른쪽 편에서 나룻배들이 동동 떠서 나오는 게 아닌가? 무대 위에 배가 떠다니는 것이었다.
앞쪽에 반사되어진 그림자들은 물에 비춰 진 것이다
무대 위에서 실제로 물 위에 떠다니는 걸로 보이는 배들
모두 3 막으로 이루어진 이 공연에서 1막은 태국의 왕조의 역사, 2막은 태국인이 믿는 관념의 세계인 천당과 지옥을 보여주고, 3막은 태국의 축제들을 보여 준다.
위 사진 속에 지옥의 풍경이다. 끓는 물에 튀겨지고 사지가 잘리는 등 지옥의 모습이 리얼하게 재연되었다. 이걸 연기하는 배우들은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지옥 풍경에 익숙치 않은 서양인들에게는 약간 충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
이것이 태국인들이 생각하는 천국의 모습이다.
갖가지 상상의 동물들이 나오고, 요정같은 것도 나온다. 왼쪽 하늘 위로 줄줄이 늘어져 내려 온 것이 요정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 나오는 선녀들이다. 선녀들이 저렇게 계속 하늘을 날아 다닌다. 선녀들의 옷차림새도 태국스럽고 모든 요정들이 태국스럽다. 프랑스 설화나 민담들을 봐도 요정들이 나오고 우리나라 설화들을 살펴 보면 숲에 사는 것은 선녀나 산신령들이다. 심술궂은 것은 도깨비이고.
태국민들의 상상 속에서 숲에는 저런 정령들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산봉우리의 형태, 정령들의 의상, 몸짓들이 모두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한복, 한옥, 완만한 산모양이 모두 통일 된 문화적 향취를 가지고 있듯이.
엔딩 파트이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아까 프리 쇼에서 보았던 모여라 꿈동산 대두들도 나와 있다.
공연은 마쳐 지고 맡겨 두었던 카메라를 잘 받아 든 뒤 광장으로 나갔더니 셔틀 봉고들이 보였다. 가까운 지상철 역으로 데려다 주는 버스였다. 타고 있었더니 설문지 종이를 볼펜과 함께 돌렸다. 마음에 들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쇼였는지 묻는 설문지였다. 판타스틱했다고 적어 줬다. 설문지 회수가 끝나자 봉고는 출발.
남편은 이 시암 니라밋 쇼에 만족을 했을까? 남자들끼리 왔다면 어쩌면 나나 플라자에서 봉쇼를 보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
호텔로 돌아 가니 밤이 저물었다. 남편은 잠들기가 아쉬워 어디 나가 술이라도 한 잔 할까 했지만 내 발바닥을 보여 주니 입을 다물어 버렸다. 푹신한 락포트 샌들을 신었음에도 맨발바닥과 신발바닥의 마찰로 인해 발가락 아래마다 물집이 가득 했던 것이다. 그러게 호텔로 돌아 올 무렵 즈음에는 발을 떼기가 무서울 정도로 발바닥이 아팠었다. 내일은... 내일은... 누가 뭐래도 그냥 운동화... 양말에 운동화... 내가 미쳤지. 하루 종일 강행군을 하는 오늘같은 스케쥴에 샌들로 멋을 낼 생각을 하다니...ㅜㅠ
사람은 합리적이어야 손 발이 덜 고생한다는 진리를 되새기며 - 다음 날의 스케쥴은 쇼핑과 맛집 탐방이다.
* 검색하다보니 시암 니라밋 쇼의 주요 부분들을 보여 주며 소개하는 영상이 있더군요. 흥미있으신 분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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