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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나들이

[베/캄 여행기27] 그 자체가 예술이었던 호치민 박물관

아딸라의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기 27

하노이 관광 3코스 - 호치민 박물관

 

Hochimihn Museum from Atala-Cho on Vimeo.

 


입장을 시작한다 -




호치민 박물관 내부 사진 한 장을 먼저 시작으로 -
 
색깔과 재질, 도형등의 다양함이 이 공간을  다채롭게 채워 놓고 있었다.
 
함께 들어 가 보자.


하노이 주석궁 안에 있던 호치민 생가에서 박물관 쪽으로 이동하는 중 -
 
여대생 가족 일행이 앞 쪽에 보인다. 참 행복해 보이던 가족 -
고등학교 음악교사인 아버지와 같은 음악인이던 엄마, 그리고 카이스트 수석입학생이던
착하고 예쁜 딸, 완벽한 구성 - ㅎㅎ  무슨 얘기를 저렇게 재미나게 나누고 있었을까나..?



가던 길에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본 풍경.
 
이 나무는 경주 보문 호텔 내려가는 쪽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아서 한 컷 찍어 보았다.



호치민 박물관 입구의 모습이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하얀 색의 높고 웅장한 건물이 인상적이다.


입구에 서 있던 호치민의 흉상


인민들 앞에서 강연 중인 호치민의 모습이다.
 
모든 설명은 영어와 베트남어로 적혀 있었다. 내가 슥~ 읽어도 바로 모국어처럼 영어를 이해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서 띄엄띄엄 눈에 띄는 대로 골라가며 읽었었는데 -

우리 둘째가 저 사진이 참 재미있다고 가리킨다.

"뭐가 재밌어??"

 

위엣 사진은 여자 청중들을 모아놓고 하는 거고 아래는 남자들한테 하는 거잖아요.
근데 얼굴 표정이 너무 달라요. 역시 호치민도 남자는 남자였던가봐요..ㅋ"

 
 그렇군....;;;  그런 망발을 한국어로 했으니 망정이지 누가 듣기라도 했으면 불경죄로 혼날 지도 모르겠다... 고 하면서도 속으로 크게 웃었다. 조인성의 팬싸인회 풍경 사진도 문득 생각나고 말이다.. ㅎ 여자 팬에게만 풍선같은 함박 웃음을 던져 주고 남자팬에게는 뚱했던 그 사진. 어쩌다 보니 그런 순간이 잡혔겠지. 위의 호치민 사진처럼.

 


 
1층 은 이처럼 약간은 소박한 기념관의 스타일이다. 
 
생전에 호치민이 남겼던 편지글들과 홍보 책자에 있던 사진들등이 유리 액자에 끼워져서
전시되고 있었다.  호치민의 많은 사진들 중에 보면 다양한 생산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한 단체 사진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공장 근로자들과 함께 한 사진들, 바닷가에서 어부들과 함께 그물을 던지는 사진도 있었고
농부들과 함께 밭에서 일하는 사진도 있었다. 소여물을 함께 주며 환하게 웃는 모습도 있었다.
여성들과 함께 한 사진도, - 호치민은 여성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듯 했다.-
어린이들과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도 있었고,  환자들과 함께 한 사진도 있었다. 
 
이것이 1950년대의 사진들인 걸 생각해보면 이후 많은 정치인들이 호치민의 모습들 중 많은 부분을 홍보
 방법으로 차용해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TV나 신문 등에서 너무나 흔하게 보아 왔던 그런 사진이다. 
 
호치민이  어떠한 정치적 목적으로 그런 사진을 찍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원조니까 -
'정신'이 먼저 있고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 중의 하나로 드러난 거겠지. 다만 이후의 정치인들은
그 결과물들만 먼저 대중의 눈에 보여주려 하는 거라서 알맹이없는 껍데기가 되어 버린 게 문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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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서 보았듯 화려한 대리석 계단을 올라 가면 러시아 건축가가 디자인 했다는 박물관 내부가 나타난다.


갖가지 재료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조형물들로 공간을 채워 놓았다.
 
이건 호치민 생가의 모형이다. 둘레에 연못과 연꽃들을 표현한 설치물들을 보라.


 
뭔가 현대적인 느낌이 들면서 - 매우 아름답다. 
 
현대적이긴 현대적인데 무언가... 복고풍의 현대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
저기 그려진 인물화들이 옛 사람이라서 그런걸까? 묘한 분위기이다.


 이 곳은 옛 세관 건물로 쓰이던 1863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호치민은 21살 당시 반 바(Van Ba)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단다. 그가 조국의 미래를 위해
프랑스로 떠나던 배를 탔던 냐룡(Nha Rong) 항구의 이름을 따서 이곳은 지금도 냐롱(용의 집) 이라고
불리고 있단다. 베트남이 통일 된 이후 1979년  호치민의 활동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호치민 박물관으로 사옹되게 된다.
 
현재의 이 박물관은 1990년 5월 19일 호치민 탄생 100년이 되는 날에 개관했다. 외관은 위의 정문을 찍은 사진에도 나와
있듯 하얀 색의 웅장한 느낌이고, 내부는 지금 사진들 속에서 보다시피 매우 참신하고 예술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호치민이 생전에 쓰던 애용품들도 전시 되어 있다. 모형이지 않을까? 유리 상자로 덮힌 것은 실품일 듯 -



이 안에는 영어, 불어, 러시아 어 가이드가 있어서 부탁하면 설명도 해 준다고 한다.


대나무 꽂아 놓은 것들도 예술이다.
 
나란히 꽂아 놓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통일성도 있고 약간의 운동성도 보이고 -
 
중간의 팻말을 보니 - 맨 위는 베트남어이고 그 다음은 불어, 그 다음은 영어, 맨 아래는 중국어 -
우리나라 말도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 ㅎ


그의 옷과 신발들.
 
단순하게 걸어 놓고 놓아 두면 될 건데 이렇게 아름다운 원형 안, 좌우 대칭을 맞춘 중앙에 옷이 걸려 있고
멋진 조명들이 각 칸으로 나뉜 공간 안에서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다.



호치민 박물관 내 모습


하얀 도화지를 앞에 두고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듯 - 이 넓은 공간을 두고 궁리를 했겠지. 
 
천정부터 바닥까지 구석구석 3차원으로 채워 나갔다. 직선 구성, 곡선의 요소, 차갑거나 무른 재질, 단단하거나 매끈하거나 -
갖가지 표현의 재료들을 가지고 이렇게 창의적으로 채워 나간 건축 설계자에게 경의를 표했다.


영구히 보존되도록 문서들은 이렇게 단단하고 가벼운 파일 안에 끼워져 있었다.


한 코너를 장식하고 있던 눈꽃같은 형상의 정체가 궁금해서 찍어 보았다.


작은 소품들까지 각 코너 공간의 느낌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신경 쓴 티가 역력했다.


아름답게 늘어지는 빨간 색 패브릭이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각 공간 마다 개성이 가득하다. 경계선없이도 공간들은 구분되고 있었고 또 함께 어우러지는 통일성도 있었다. 


미리 설명 들은 바에 의하면 혁명의 과정들도 전시된 것 중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닌가 했다. 각종 무기들이 눈에 띄인다.


반사되는 차가운 느낌의 스틸들로 꾸며진 공간.
 
뾰족한 기둥들이 중심을 향해 모아지고 있다. 날카로움과 차가움이 묘한 아름다움을 준다.
천장의 자잘한 조명들까지 어우러져 더욱 환상적이다.


 
지도가 걸려 있고 창틀임을 암시하는 장식물도 앞에 있다.
그리고 의자들 - 아마도 아까 보았던 호치민 집무실 풍경을 재현한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원래 이 박물관 내에서는 후레쉬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다행히 들고 있던 카메라가
야경 촬영에 강한 것이라서 똑딱이임에도 나름 흔들리지 않게 빠른 속도로 찍고 나올 수 있었던 듯 싶다. 
 
호치민 박물관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작은 사원같은 것이 눈에 띄였다.


 한기둥 사원이다.
 
이름이 한기둥인 것은 저 사원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한 개 이기 때문이다.
기둥 한 개에 저 사원 건물 전체가 받쳐져 있다. 위에 얹혀진 사원의 모양이 연꽃모양이라고도 한다.
(난 잘 모르겠더라... ;;;)
 
여기 사원에서 기원을 드리면 자식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 기원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049년 리따이또 왕이 결혼을 못하고 왕비도 없고 따라서 자손도 없었다 한다.
리따이또 왕이 관음보살상이 애기를 않고 있는 꿈을 꾼후 한 소수민족 여인을 만나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후 리따이또왕이 고맙다는의미에서 연못에 기둥하나로
 사원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베트남 엄마들은 아들을 낳게해달고 여기와서 빈다고 한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기둥이 시멘트로 되어있는데 일본이 패망하면서 당시 벽돌로 되어있는
기둥을 무너뜨리고 갔다고 한다. 다시 복원하면서 시멘트 기둥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참... 우리나라에서도 그랬지만 여러 나라 돌면서 비슷한 일을 많이 하고 다닌 모양이다..;
가면 곱게 갈 것이지.. 도망가는 길에 그걸 부셔놓고 가다니, 정말 얌통머리 없는 짓도 부지런해야 하는 것같다.
베트남인들은 침략전쟁의 주역인 중국과 일본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이 한기둥 사원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상징적인 유적물 중의 하나이다. 거의 천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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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앞에서 우리는 가이드가 사 주는 수박 한 조각씩을 먹었다. 한기둥 사원 앞 매점에서 파는 수박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했다. 아마 평생 먹어 본 중에 가장 당도가 높은 수박일거라면서 권해 주는데 - 맛있긴 맛있었다.
 
하지만, 그 수박 한 조각의 가격이 베트남 시중 가격의 3~4배라는 사실. 그 매점 주인은 거기서 조각 수박을
몇 년 팔다가 떼돈을 벌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단다. 그리고는 ----  수박값을 조금 더 올렸다~ 으하하핫~~
 
단체 관광 중에 따로 나가 수박을 사 먹기도 힘들고 해서 아마 어떤 가이드 한 분이 기념삼아
한번 사 준 모양인데 이후 그 수박이 맛있다는 소문이 관광객들사이에서 퍼졌다고.
다른 가이드는 사 주는데 안 사 줄 수도 없고 해서 가이드 말로는 어쩔 수 없이 - 그렇게
이 한기둥 사원 앞에서의 조각 수박 시식 코스가 생겨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내 돈 주고 사 먹는 것도 아니니 상관할바 없나?  아마도 이 수박 값도 관광비에 들어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웬쥐~~ 그 가게 주인이 얄밉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 ^ ^;; 베트남 수박이 다 맛있는데 왜 저 가게 주인만
떼돈을 번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건 사회주의 개념인가 하는 생각이 또 든다. 가게 자리를
잘 잡은 행운 덕에 부자가 된 것이겠지. 누군가 다른 이가 저 자리를 빼앗기 위해 물밑 로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도- 
 
자본주의의 혜택은 결국 운좋은(?) 몇몇에게만 돌아가는 걸까? 독점의 우위를 차지한 수박가게 주인은 가격을
자기 원하는 대로 올리고 이건 소비자들의 선택의 권리를 빼앗아간 결과를 낳았고 - 이건 부당하다. 저 가게는 경쟁체제로
 들어가서 몇 년에 한번 제시한 가격등의 운영조건을 내건 예비 입점주들 중에서 추첨을 통해 선정해야 되지 않나 - 하는 - ㅎㅎㅎ
이건 뭐 전혀 쓰잘데기 없는  상상의 나래를 - 내가 알 바 아니다. 난 그저 수박 한 조각 먹고 돌아갈 관광객일 뿐 - 
 
발길을 돌려 다음 코스로 향한다.  씨클로를 타고 하노이 시내를 한 바퀴 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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