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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 연예

바운스로 부활한 조용필, 앞서가는 시대감각 뒤에 숨겨진 창조성과 완벽성

조용필.

내 기억의 시작점 -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되던 바로 그 날이던가, 다음 날이었던가.  당시 국민학교를 다니던 내가 스쿨버스 안에서 라디오로 추모방송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간간이 가라 앉은 음성의 남자 아나운서가 멘트를 넣었고 슬픈 음악들이 깔렸다. 그 중 한 곡으로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 가 나왔다.

그 노래는 그 전에도 간간이 라디오를 통해 몇 번 들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 나이의 감수성으로는 받아 들이기 어려운 비장한 노래였다. 그러나, 그 순간은 마치 그 노래를 그 때 처음 듣기라도 하는 듯 가사 한 소절, 목소리 톤의 조그만 변화에도 몰입하듯 들었었다.
 
버스 안은 여늬 때와 다름없이 붐볐지만 기사 아저씨는 조용했고 추모 방송의 우울한 기조는 뭔가 주변 공기를 낯설게 만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 탓에 나도 모르게 주눅 든 듯한 나는 하릴없이 노래에 집중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순신이 '남의 애를 끊나니' 라고 했던 의미를 조용필의 그 노래를 들으면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깊은 저 속에서부터 비통함이 마치 애 ( 창자 ) 를 끊어 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 - . 내 기억이 맞는 것인지 잠깐 기록들을 뒤적여 보았다. " 창 밖의 여자 " 가 발매된 것은 80년 3월로 되어 있고 박정희 저격은 79년 10월 26일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래, 그렇지. 내 기억이 맞는 듯 하다.

성룡과 함께 있던 단발머리 카셋트

그리고, 중학교 입학.

교실 미화 정리를 저녁 늦게까지 하고 그 근처에 집이 있던 친구네 아파트로 갔다.자 형태의 아파트 단지 안에서 햇볕이 들지 않는 방향으로 방이 있던 그 친구의 방은 어둑했다.

이것, 구경시켜 줄까? 내가 모으는 사진들...


책상 서랍을 열어 보여 준 사진들. 취권 영화 속의 재키 찬 이 여러 장이었다. 

 "귀엽지?"  동의를 구하던 친구. 더부룩한 머리에 복코를 가진 재키 찬은 정말 귀엽게 웃고 있었다. 당시는 캡쳐라는 것이 없을 때였고 그 사진들은 극장에서 직접 찍은 것이 분명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헛세 사진들도 대부분 그렇게 극장에서 화르르르 후레쉬 터트려가며 직접 찍은 것들이었고.

그리고, 처음 보는 동양인 가수 사진. " 누구지?" " 응, 일본 가수. 사이조 히데끼 ". 처음 듣는 이름. 잘 생겼었고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비록 정지된 사진 속이긴 했으나 화려한 스테이지 매너를 짐작케 했다. 당시 우리 나라 남자 가수들은 대부분 회사원 양복 스타일에 제한된 액션만을 취할 때였다. 사이조 히데끼는 만화 속에서나 보던 화려한 스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사진 들 옆에는 나즈막한 상자들 속에 카셋트 테잎들이 나란히 모여져 있었다. 뒤적거려보니 대부분 팝송 카셋트들이었다. 그리고, 또 그것의 대부분은 레코드 점에서 편집 녹음된 것들이었고. 그 사이에 가수 사진이 찍힌 정규 카셋트가 하나 있었다. 그것도 한국 가수.

조용필이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라든가 창 밖의 여자 불렀던 바로 그 조용필. 세련된 팝송 카셋트 들 사이에 나란히 놓여져 있는 게 의아했던 나는 물었다.

아저씨 (풍의 나이 든) 노래 아냐?

친구는 그 테잎을 내게 며칠 빌려 주었다. 그 안에 실린 '단발 머리' 를 꼭 들어 보라고 당부했다.


선구자적 천재성이 보였던 '단발머리'

처음 들었던 느낌은 '이상하다". 여태 듣던 노래들과는 다른 느낌.

더 어릴 때 들었던 '사랑과 평화' 의 ' 장미 한 송이' 나 ' 한동안 뜸했었지' 의 느낌과 조금 맞닿아 있긴 했으나 조용필의 맑고 정교한 목소리때문에 더 대중성을 획득했던 듯 하다. 그리고, 가사의 순수한 감성도 좋았고 중간의 멜로디 부분도 유려했고. - 이건 지금 와 생각하니 그랬다는 것. 중학생이 뭘 알았겠나? -

따라 부르기 어려운 노래



당시 가요의 첫째 미덕이라고 하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라는 것. 단발 머리는 따라 부르기 힘든 노래였다.

첫째, '단발머리' 는 일단 노래 소절과 소절 사이에 공백이 너무 많았다. 그 공백을 모두 연주 소리로 채워 넣었다. 그것의 허전함을 신기한 기계음인 '뿅뿅뿅~'으로 달래 주었다.

실제 라이브 연주 때 조용필은 개구진 표정으로 직접 '뿅뿅뿅~' 을 연주해 보여주었다. 노래의 공백에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재미난 표정으로~.

둘째, 멜로디 전개가 빈약하고 단조로웠다. 당시 가요들은 나름의 작법이 있었고 거기에 충실하게 작곡되어진 것들이었다. 약간은 클래식 작곡법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한데 철저히 멜로디 위주의 곡이었다. 그 곡들은 C - A - G - F  등으로 뭔가 감성을 울리는 코드 전개를 바탕으로 멜로디가 펼쳐 졌었다. (말 그대로 "전개" 이다. ) 혹 테마 구절을 반복해서 써 먹는다고 하더라도 각 소절의 마지막 부분은 '변환, '상승' '전개' 의 느낌을 갖게끔 조금은 변주되어졌다. 하지만, 단발머리는?

피아노로 단발 머리의 음들을 쳐 본다면 몇 개의 음들이 무미건조하게 띵똥거리는 반복이 될 것이다. 게다가 각 소절들은 거의 변화없이 기계적으로 '반복' 되고 있다.

미솔솔솔솔솔솔솔 라솔솔솔솔파미레 미도솔 - (공백)
미솔솔솔솔솔솔솔 솔파미레미 -(공백)
미솔솔솔솔솔솔솔 라솔솔솔솔파미레 미도솔 - (공백)
미솔솔솔솔솔솔솔 솔파미레미 -(공백)

- 단발 머리 최초 앞 구절 -



이 곡은 처음부터 전자음들과 전자 기타들에 맞춰 특화되어져 작곡되어진 곡이다.

게다가 끝부분은?

노래의 끝부분은 끝나는 느낌이 나게끔 '마무리'의 C 코드로 끝나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단발머리는?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오호호 ~ - (2절 마지막)

반짝이던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 나네 ( 노래 맨 마지막 )


가요 중 몇 프로는 끝소절이 반복되어지며 페이드 아웃되는 방식을 취한다고 치더라도 '단발 머리'는 노래 멜로디 자체로는 완결의 느낌을 가지지 못한 채 그냥 끝난다. 연주 또한 그렇다. 그저 계속 계속 소절들이 끝없이 반복되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페이드 아웃' 이라는 기술적인 부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멜로디 자체에 의해서 생겨나고 있다.

이래 가지고 어디 노래 한 가락 뽑는 자리에 가서 박수 소리에 맞춰 부르기는 힘들지 않을까? 밴드의 연주와 합쳐져야만 완전하게 완성되는 곡이 바로 '단발머리'이다.

아마도 조용필이 이 노래를 '히트'시킬려는 욕심을 가지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만들어 보고 싶어서 만들어 앨범에 끼워 넣은 곡일 것이다.

대중 가수는 상업성을 전제로 하는 예술가이다. 상업성에 치우쳐진 가수도 있고 예술성에 치우쳐져  대중과 멀리 있는 가수도 있다. '아티스트' 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가수라면 때로 저런 '실험 정신' 이 엿보일 때일 것이다. 그리고, 돈을 좇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열정이 전해 질 때이다.

'단발 머리'듣고 나서 이 가수가 '비범한 가수' 라는 느낌이 어린 마음에도 왔었다.

이 노래, 너무 좋제?

그리고 다음 해에 여학생들의 두발 자율화가 실시되었다. 귀 밑 1 센티 단발에 질렸던 여학생들은 대부분 컷트를 짧게 쳤다. 1년이 넘도록 단발머리를 고수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조용필 오빠의 '단발머리' 소녀가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필이 새 앨범을 냈다.

동생이 호들갑스럽게 내게 뛰어 와 말했다.

언니야, 언니야!!! 조용필 새 노래 나온 거 들어 봤나? 완전 좋다. 진짜 너~무 좋다. 계속 귀에서 노래가 뱅글뱅글 돈다. 꼭 무슨 팝송같더라. 우리 나라 노래 안 같더라.  엄마야~! 나는 왜!~! ♪♬ 자꾸만 ~!! 울고 싶지~!!! 그라고 - 중간 부분에 뭐가 삭~ 바뀌는데 들으면 기분이 막 이상해진다. 꿈꾸는 것 같이 막 이상해지는 것 있제? 언니, 꼭 그 노래 들어 봐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끼다.


아버지가 사다 주신 소니 더블 스피커 라디오는 당시 우리 자매들의 가장 큰 보물. 항상 공테이프를 넣어 두고는 좋아하는 가수 노래가 나오면 잽싸게 녹음 버튼을 눌렀던 그 카셋트 라디오. 언제 그 노래가 나올지 몰라 가요 프로를 늘상 틀어 놓고는 기다렸었다.

다음 곡은 조용필의 고추 잠자리 -


DJ 멘트가 시작되자 큰 소리로 동생을 부르고.

야~! 고추 잠자리, 나온다 - 빨리 온나 -


언니야, 빨리 녹음 버튼, 녹음 버튼~!!!! 눌리라~!


아... 기억이 새록새록. 갑자기 눈물 나려 한다.

그나저나, 첫 귀에 척 듣고도 '너무 좋은' 노래라고 누구나 다 인정하는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 '젊음의 행진' 에서 최초 공개되었던 이용의 '잊혀진 계절'도 그랬었는데... 1절 마치고 간주 들어 가는 부분에서부터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으니까. 와... 너무 좋다... 완전 팝송같네... 노래 듣자 마자, 끝나자 마자 또 듣고 싶어지네...

신기한 건 '바운스' 와 '헬로 '를 듣고서 나오는 젊은 대중들의 반응이 30 년 전의 그것과 너무 비슷하다는 거다.



가수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잘 알고 있던 그

고추 잠자리를 들고 나오면서 조용필은 의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무대에서의 액션도 조금 달라졌다.

컬러풀한 점퍼를 입고 나오는가 하면 꽃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나오기도 했고 반짝이 징이 박힌 화려한 셔츠를 입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남자 가수로서 파격적인 의상들이었다.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TV 출연을 자주 하지 않은 편이었는데 어쩌다 나올 때면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남자 가수의 의상, 그 틀을 넘어 서는 옷차림을 선보였었다. 한번은 핀컬 펌을 하고 나오기도 했다. 처음 퍼머하고 방송한 날은 자리를 잡질 못해서인지 살짝 아줌마 퍼머의 느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필은 점점 세련미를 갖추어 갔다.

그리고, 고추 잠자리못찾겠다 꾀꼬리 를 부를 때면 무대에서 폴짝 폴짝 뛰기도 하고 뱅글 뱅글 원을 그리며 뛰어 다니기도 했다.

의상과 무대 액션에 관해 인터뷰했던 기사를 당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조용필 曰, 가수는 보여 주는 직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보는 즐거움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춤을 못 추니 빙글 빙글 뛰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밴드들과 미리 약속을 하고 그리했다라고 했다.

그리고, 발랄한 음악에 맞춰 의상도 발랄하게 입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남자 의상들이 색상이나 디자인이 다양하지가 않다고. 그래서 마침 사이즈도 맞고 해서 여성옷을 코디가 구해 와서 입고 있다고 했다.

동생은 분홍색 스웨터에 핑클 퍼머를 한 채 무대 위를 뱅글뱅글, 폴짝폴짝 뛰어 다니는 조용필을 보며 '귀엽다'를 연발했다.

폴짝 춤은 이후 '꼬깔*' 광고에서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나올 때마다 뭔가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 주니 그가 방송 출연하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당시 신문에는 방송 프로그램 안내표가  한 페이지 차지하고 있었다. 가요 프로그램에는 그 날의 출연자 이름도 괄호 안에 들어 있기도 했다. 매일 매일 신문의 방송란을 체크해 가며 조용필을 기다렸다. 그러나 방송에 자주 출연하지 않았던 조용필. 어떨 때는 한 달이 넘도록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조용필 오빠야 보고 싶다며 눈물이 글썽했던 동생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

의상이나 무대 매너에서도 보이듯 그는 항상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오롯이 그의 음악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의 욕심대로만 가는 음악이 아니라 대중들의 손을 잡고 함께 뛰어 가는 음악이다.

장인의 얼굴을 가지게 된 조용필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된다라고 했던가?

무언가 한 가지를 깊이 파고 들어 자신만의 세상을 갖게 된 이는 얼굴에서 특유의 빛이 나게 된다. 산 속에 박혀 몇 십년 도자기만 빚던 노인의 얼굴에는 학자와는 다른 특유의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조용필의 얼굴에는 부와 명예만을 좇으며 살아 온 사람들에게 보이는 경망함이 없다.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도 적용해 잣대짓고 판단하는 거만함도 보이지 않는다. 상대의 이익이 나에게 혹 손해를 입힐까 계산하고 머리굴리는 약삭빠름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에게 항상 엄격하게 살아 온 사람들만이 가지는 반듯함이 있다. 옆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을 올곧게 걸어 온 사람만이 가지는 표정이다.

그리고, 재작년 전국 투어 때 보았던 조용필의 공연.

여전했다. 젊은 가수들의 콘서트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화려한 오프닝 영상쇼부터 카리스마 넘쳤다. 그리고, 그의 젊은 때를 떠오르게 하는 무대 의상들도. 쁘띠 스카프를 목 옆에서 매듭짓고 카키색의 세미 캐쥬얼 의상을 입기도 했는데 젊은 감각이면서도 나이의 품위를 잃지 않는 멋스러운 의상이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음향들과 조명들.

그에게는 그만의 확실한 목표 지점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 바운스와 헬로 -

그의 음악적 감각은 여전하다.

트렌디함을 잃지 않는 것은 대중에게 손내미는 그의 친밀함이다. 하지만, 따라 가지 않고 반 발짝 앞서 있다. 그만의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노련함 속의 신선함은 그가 여태까지 늘 가져 온 절묘한 미덕들이다.

그의 균형감 잃지 않는 줄타기는 보컬에서도 엿보인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만의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다. 듣는 이가 나머지 그림을 자신만의 감정으로 덧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준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여러 번 반복해 들어도 마음을 지치게 하지 않고 늘 새롭다.

- 아무리 슬픈 노래를 부르더라도 그의 목소리는 징징거리며 짜지 않는다. 청승맞지 않다. -

추구하는 음악 속에 성향과 취향이 드러난다.  내가 그에게서 받는 느낌들, 즉 거만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지만 또한 자신의 것을 잃지 않는 굳건한 성정을 전달받은 것은 아마도 이런 음악들을 통해서일 것이다.

대중들이 그의 음악에서 매력을 느끼고 이것이 확장되어 조용필이라는 가수에 대해 매력과 존경을 느끼게 되는 것은 저런 이유에서이다. 음악 속에서 그의 성정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사의 순수함과 서정성은 또 어떤가? 그의 가사들에는 소년의 순수함이 있다. 나이 들어서도 순수함을 한 올이라도 간직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여전히 매력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그의 노래 가사들에는 아련함, 간절함, 그리움등이 항상 절실하게 들어 있었다. 진실된 마음만을 노래했었다.

혹 어떤 이는 이번 노래들이 그가 직접 작곡한 곡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음악관이 나타난 건 아니지 않나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가사들도 대부분 다른 이의 것을 쓰지 않았나고 할 수도 있다.

긴 시간동안 그가 수집한 많은 노래들 중에서 선택한 곡들이다. 주는 대로 받아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이미 그 자신도 작곡 능력이 있으면서 외부에 작곡 의뢰를 하고 그 곡들 가운데에서 고르고 고른 곡들이다. 500 여 곡 중에서 10 곡을 골랐다고 한다. 그의 취향과 음악관이 투영되지 않은 곡들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가사 또한 그가 직접 고른 것들이다. 여러 개의 것들 중에 그가 '마음에 들어' 고른 것들인데 그의 색깔이 묻어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까?

가사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올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순애보'라는 단어가 이즈음 가요들에서 쓰인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듣는 순간 단번에 세련됨을 느끼게 하는 바운스와 대비되는 이런 올드함이 오히려 신선하다. 조용필이기에 '그대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노랫말이 새삼스레 더 순애보적으로 (!)  들리는 게 아닐까? 이런 내 마음을 들킬까봐 겁나 라는 가사를 성시경이 아닌 조용필이 불러도 어울린다는 게 멋진 거다. 통기타나 피아노 반주의 언플러그드로 불러도 어울릴 만한 소박한 가사에 보컬 스타일 또한 담백하게 불러 가며 마음의 긴장을 풀게 한 도입 부분. 마침내 장대하게 펼쳐지는 연주들이 또 반전이다.  락(ROCK) 의 필이 가득하게 반짝이는 화려한 기타 소리, 영롱한 느낌을 받았다. 미리 소개받은 대로 '청명한 사운드'이다. 아, 그렇다. 조용필의 뿌리가 락이었다는 사실을 잠깐 잊었던 거다. 

아직까지 티저만이 공개된 헬로 (Hello)의 뮤비 또한 그를 보여 주는 하나의 바로미터다.

대중 가수로서 들려 주는 것만큼이나 보여 주는 포장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그. 골방에 틀어 박혀 자신만의 세상을 사는 도인이 아니라 그는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가수다. 그는 절대 '근엄한 척' 폼만 잡는 어르신이 아니다.

또한, 그만큼이나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면 무언가 자신만의 아집이 있을 만도 한데 그는 주변의 제안들 중에서 가장 적합하다 싶은 것을 넓게 수용한다. 그가 이전에 한번도 해 본 적 없었을 이번 앨범의 프로모션 방법들과 뮤비 스타일, 그는 최선이다 생각되는 것은 받아 들인다. 그의 감성이 젊은 사람들과 다름없이 여전히 신선한 것은 이런 열린 사고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음악과 그 주변의 것들을 모두 통합해서 아우르는 그의 균형 감각과 음악관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꽉 맞물려져 있다. 저 모든 것들이 어떻게 가능할까 신기할 정도이다. 그의 안에서 이런 것들이 수십년을 걸쳐 쌓여져 왔으니 분명 그는 이런 데에 대해 그만의 철학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처럼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음악을 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들으며 즐거워 할 수 있는 놀잇감을 세상에 던져 주는 고마운 뮤지션이다. 세상에 주는 선물이다. 새 앨범을 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한 가지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이가 저렇게 아름답게 완성되어져 가는 모습은 이 시대의 감동적인 본보기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그런 사람이 액자 속에 갇혀 있지 않고 함께 호흡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벅찬 일이다.

새 앨범도 감동이고 조용필이라는 사람, 또한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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