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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아와 금보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세월만큼이나 -


TV에 광고가 나온다. 신민아다. 정말 예쁘다.

언제부터 저렇게 예뻤었지? 프로필을 찾아 검색해 보니 만 27세란다. 그럼 그렇지. 여자로서, 여배우로서 가장 화려하게 만개하는 나이구나.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소녀시절은 저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정통 미녀파 여배우같지는 않은, 개성파 소녀배우에 더 가까왔었다. 물론 그 때도 늘씬한 몸매에서 오는 느낌은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이 있긴 했다. 하지만,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자.  꾸밀만큼 꾸며서 더 이상 여기서  한 오라기도 더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여배우의 아우라가 얹혀질 수 없으리만치 완벽하게 성장한 모습이 딱 제 것인 듯 잘 맞아 들어 간다. 




18세 때의 그녀에게는 이런 느낌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모습은 하얀 날개를 우아하게 펼치며 물 위에서 유유자적 헤엄치는 한 마리 백조같다. 그렇다고 예전이 미운 오리 새끼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백조인 현재와 비견하자면 오리라고 해도 아주 틀린 것 같지도 않다. 그만큼 세월을 품고 오면서 많은 격차가 생겼다.

그런데 광고를 가만 보자니 예전 기억 중에 하나가 오버랩된다. 환하게 얼굴에 집중 조명이 들어간 화면, 흔히 보기 힘든 클로즈업 샷. 언젠가부터 tv 드라마라든가 광고에서 저렇게 화면 가득 얼굴만 가득 차는 근접샷이 가끔씩 잡힌다. 예전엔 그런 거 없었다. 클로즈업 해 봐야 바스트 샷 정도였다. 내가 처음 초근접 촬영샷을 본 것은 한 일본 CF 에서였다.
 



# 당시 신선했던 일본 광고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부산의 우리 집에서는 NHKAFKN이 잡혔었다. 어떻게 전파가 잡힌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이랑 가까와서 잡힌 건지 따로 송신소가 있었던 건지. 미군부대에서 AFKN을 송출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어쨌든 잡혔고 난 가끔씩 그걸 봤었다.

AFKN 에서  SOLID GOLD 라는 팝 음악프로를 즐겨 봤었다. 거기서 폴 앵카도 직접 봤고 컬쳐 클럽의 보이 조지가 노래 부르는 걸  보기도 했다. 프린스의 현란한 춤사위와 압도당할만한 카리스마 무대도  봤다.  그리고, 덱시즈 미드 나잇 러너즈 (Dexy's Midnight runners) 라는 시골 촌뜨기 의상을 입은 밴드가 노래 부르는 것도  봤다. 당시 그 밴드는 Come on Eileen 이라는 곡으로 초히트 중이었는데 라디오를 통해 노래만 듣던 그 밴드를 직접 보게 되어 흥분했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컬쳐 클럽 과 덱시즈 미드 나잇 러너즈

좌측부터 컬처 클럽, 우측은 덱시즈 미드 나잇 러너즈. 사진 정보에 의하면 82년도 것이다. 아, 옛날이여 -


82년도에 당신은 어디에서 무얼 하셨는지? 풍운의 꿈을 안고 밴드를 했었던 저 팀도 저 노래 한 곡 이후로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바가 없다. 어디선가 아직도 음반 관련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자그마한 공연장이 딸린 레스토랑을 하고 있을 수도, 혹은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을 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혹 그 노래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더보기 안에 컴 온 에일린을 숨겨 두었다.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빛바랜 흑백 영상이다...


 


AFKN 얘기는 접고 NHK 로 넘어가 보자. 일본어를 알아 듣진 못했기에 당시 난 일본 방송을 보면서도 영상만 볼 뿐이었다. 일본의 집안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길거리 풍경은 어떤지, 학생들의 차림새는 우리와 어떻게 유행이 다른지 등등. 그리고 여배우들의 미모 감상도 큰 부분이었다. 화장술이 다른 건지 원래가 이국의 여인들이라 그런 건지 우리 나라 여배우들과는 미묘한 어떤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가 CF 였다.
 
기억나는 CF 의 하나가 컵라면 광고였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아직 컵라면이라는 것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있었는데 내가 안 사 먹으니 몰랐을 수도 ;; 컵라면이라는 것도 생소할 때인데 내가 본 일본 광고 속 컵라면은 한 발 앞서 - 모밀 국수 컵라면이었다. 컵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가 따라 내고는 첨부된 모밀 국수 엑기스를 부어 넣고 맛나게 얌냠냠 후르르 쩝쩝 먹었다. 광고 주연은 중년의 남자 배우였고 촬영 장소는 숲 속의 계곡. 남자 배우가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유유자적 컵에 담긴 모밀 국수를 먹었다. 햇볕에 비춰 반쯤 투명하게 된 초록색의 이파리들이 그 배우의 머리 위로 한들한들 움직이며 청명하게 빛났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도드라지며 그 시원함을  배가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화면이 점점 멀어지면서 남자 배우는 그림 속의 타자인 듯 흐려지고 일본말로 상품명인 듯한 무슨 말을 모시라 모시라 떠들며 엔딩.

한번도 못 먹어 본 것이라 저런 야외에서 저런 걸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라며 호기심으로 봤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광고는 화장품 광고였다. 

너무너무 예쁜 여배우가 하나 나왔다.  여자 배우의 얼굴이 내가 이전에 감히 보지 못했던 만큼의 초초초 근접샷되었다. 화면 안에 그 여배우의 얼굴로 꽉 찼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여배우가 무지 엄청 예뻤다는 거다. 화면 앞으로 얼굴을 들이 밀던 그 여배우는 화면 앞에 놓여진 테이블 위로 양손을 올리더니 거기 한 쪽 뺨을 대며 엎드려 기대었다. 화면을 보던 나도 같이 따라 얼굴이 옆으로 뉘여졌다. 자세히 얼굴을 보고 싶은 무의식의 욕망으로.

그 여배우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얼굴만 들이 밀더니 옆으로 쇅~ 하니 얼굴을 돌리고 성우가 멘트 넣고 그러고는 광고가 끝났다. 엄청난 임팩이었다. 인간 세상의 여자같지 않게 느껴졌던 그 여배우. 광고에 예쁜 여배우만 있으면 그냥 광고가 끝나는구나 싶었다. 다른 기교고 뭐고 컨셉이고 뭐고 촬영장 셋트 장식이고 뭐고 기발한 아이디어고 뭐고 다 필요없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광고 스타일이라서 한참 동안 그 광고가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한 두달쯤 지났을까? 우리나라 광고에서 비슷한 걸 보게 되었다.
 



금보라 화장품 광고



금보라의 화장품 광고였다. 당시 우리나라 광고에서 보기 드문 초근접 샷에다가 얼굴을 모로 돌리는 것까지 모두 그 일본 화장품 광고와 같았다. 약간 달랐던 건, 그 일본 광고보다는 조금 더 뽀샤시가 강하게 들어 갔었다. 블루문 특급의 그 여주인공만 잡히면 화면이 실크스크린으로 변하던 그 효과와 같은 것이었다. 그 광고 자료를  첨부해 보려고 만 하루 이상을 검색하고 돌아 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에 당시로선 허리가 보이는 파격 노출 의상의 위 사진을 가지고 와 봤다.


당시 광고라고 한다면 다 이 정도이다.

 


 


저 정도는 상반신이 나오게 찍었다. 방금 미장원에서 한껏 치장한 듯, 한 올 흐트러짐도 없는 헤어스타일도 당시의 특징이다. 한 화면 안에서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빼곡히 다 채워 놓았다. 


그 초근접 뽀샤시 광고가 나간 이후로 금보라의 줏가는 폭발적으로 올라 갔다. 방송 프로그램에 금보라 관련 멘트가 나올 때마다 놀라운 미모에 관한 얘기는 빠지질 않았다.  그 광고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시의 광고 스타일과도 달라서 우선 눈에 띄었고 광고 하나를 그렇게 '얼굴' 하나로 이끌고 나갈만한 파워가 그녀에게서 발견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비록 그 비슷한 광고를 미리 본 내겐 참신성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광고를 소화해 낼만한 페이스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이었다.

금보라는 당시 여기 저기 잡지 화보로도 많이 나왔었다. 내가 샀던 '여학생'이라는 잡지 속에 있던 그녀의 한 컷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밝은 야외에서 하얀 솜사탕을 들고 활짝 웃는 컷이다. 방금 가게에서 사 온 새 옷인 듯 다리미 지나간 날선 자국이 그녀가 입은 점퍼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 지금으로선 어색한 코디이지만 점퍼 아래 -  힐을 신고 있었다. 깨끗한 피부, 청결한 치아, 머리에서 발끝까지 잘 닦아 문지른 듯 광채가 났다.  내겐 너무 먼 '아가씨'였다. 단발머리 꼬맹이였던 내겐 선녀같이 보였었다. 나는 크면 이런 아가씨가 될 수 있을까? 나중에 빼딱구두 신고 예쁜 옷 입으면 저 언니같이 될 수 있을까......???



금보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81년도 작품인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의 모습. 63년생이니 저 때 만 18세 때다. 소녀시대보다 어리다.



곱고 여리여리하게 보이던 금보라도 이젠 방송 나와서 출산 무용담을 거리낌없이 풀어 놓는 나이가 되었다. 저런 아가씨가 될 수 있을까 하던 나도 그 곱던 아가씨 시절 다 보내고 예전 앨범을 보며 추억에 잠기는 나이가 되었다. 오렌지 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교정의 벚꽃 나무 아래 찍었던 그 사진. 찍어 주던 남자 후배가 건네 주던 그 말, '선배가 벚꽃보다 더 화사해요' 그 말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훈장처럼 그 사진에 꽂혀 있다.

그리고, TV 안에선 신민아가 27살의 화려함으로 살아 있다.

tv 를 보는 어느 소녀는 지금도 '저 언니처럼 나도 예뻐질까?' 를 중얼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신민아여, 아니 아름다운 시간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여,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고 했다.
누가?  - 어느 시인이.
전한 이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  사는  '오, 마이 캡틴' 이다 -  


詩 - 시간을 버는 소녀에게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시간은 흘러
오늘 핀 꽃은
내일이면 질 것이니



다들 카르페 디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