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에서 강한 섬광을 남기며 머릿 속에 콕 박혔던 씬이 있다. 나정의 엄마가 병원에 있던 나정에게 전화를 했던 장면이다.

- 아이고오, 칠봉이 없었으면 우짤뻔했노? 참 고맙대이. 밥이라도 좀 사 주라.

그러고는 나정은 전화를 끊고 칠봉이 쪽을 향해 따뜻한 눈웃음을 건넨다. 따뜻한 밥 대신 건넨 따뜻한 감사의 눈인사이리라.



나정이 호주에 취업해서 갔던 건 어떤 의미일까?

이 드라마는 약간의 코믹성을 깔고 있다. 아주 심각한 상황일지라도 긴장하지 않고 시청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이 응사의 여러 미덕들 중 하나다.

나정의 아버지 성동일이 씨티폰 주식이 폭삭 망했을 때 보여 주었던 실성한 듯했던 씬도 가볍게 희화화되어 나오고 있었다. 울고 짜고 하지 않아 웃으며 시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 그게 어찌 간단한 일이겠나?

나정이 이 경우에 쓰레기의 제안대로 '내가 벌께'라는 쓰레기를 받아 들이며 그냥 취집을 하게 되었더라면? 나정으로서는 받아 들이기 힘든 일이었을거다.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그대로 문제 현장에서 혼자 몸을 빼는 일로 스스로 느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나정은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가족의 어려움을 모른 체 하고 혼자만 도망가는 비겁한 일이라고.

집은 빚더미고 아빠는 실직했다. 갓난쟁이 동생이 있었다. 이 집엔 남자라고는 없다. 책임감을 느낄 만도 하다. '소녀 가장' 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했던 말의 의미는 무겁다.  엄마가 하숙집을 하고 있긴 해도 현재로선 제대로 된 안정적 수입원이라고 돈벌어 올 사람이 자기 밖에 없는데 자기가 홀랑 시집을 가 버린다면? 취직을 해서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친정집에 경제적으로 지속적인 지원을 하기가 애매한 상황인데 백수 상태로 레지던트 남편을 바라보고 결혼을 해 버린다면?

나정은 받아 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없는 돈에 결혼식을 치뤄 놓고는 남편없는 빈 집에 앉아 계속 이력서를 이리 저리 넣어 보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결혼을 포기한 건 누구의 희생일까?

혹자는 이 결혼 취소에 있어서 쓰레기만이 희생을 한 거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쓰레기, 그 힘든 레지 과정을 혼자 견디며 나정의 소원을 들어 주고 호주로 보내 줬는데 나정은 혼자만 희희낙낙, 배신을 때렸다 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나정 역시 희생을 한 거다. 나정이 자아 실현을 위해 취직을 하려 했던 건 아니다. 일하는 워킹 우먼이 꿈이라서 취직하려고 애를 쓴 것도 아니다. 주변 친구들은 취직했는데 혼자만 뒤떨어지는 게 싫어서 호주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나정에게 취업은 매우 절실한 문제였다. 나정이 취업을 접는다는 것은 나정 집안 전체의 맥을 끊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었다. 쓰레기가 그걸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욕심을 접은 것이다.

우리 집 빚이 한달에 이자만 25만원이란다. 힘들게 공부시켜 줬는데 얼른 취직해서 은행 이자 돈이라도 내가 벌어야제 

이 씬을 말할 때 티비에서 칠봉이 관련 뉴스가 나왔다. 몸값이 연봉 8천만 달러? 정확한 숫자가 생각이 안 난다. ;;; 티비 앞에서 돈계산인지 뭔지를 하던 나정이 그 뉴스를 보며 고개를 드는 씬이 연달아 나왔다.

나정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사람은 칠봉?

아.. 뭐 나정이가 남편감의 스펙으로 돈만 보는 된장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정의 외로움을 덜어 줄 수 있는 남자에 대한 것이다. 나정의 삶의 무게를 실제적으로 나누려는 마음과 형편이 되는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들이 헤어지는 구체적인 이유는 뭘까?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의 심층적인 의미는 뭘까? 그 말의 다른 의미는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힘들 때 옆에 앉아 손을 잡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한국에 남아 있더라도 나정과 쓰레기는 분명 얕은 의미로라도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레지던트의 많은 케이스가 이 시기에 여자친구들과 결별하게 된다는 것의 뜻이 그런 데 있을 것이다.

우리의 순정녀 나정이 그럴 리가 없다고? 그들은 특별하다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 시간이 지나고 자리가 안정되면 쓰레기도 나정에게 마음을 보여 줄 수 있는 시간이 도래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많이 풍족해 질 수 있다. 똑똑한 쓰레기 오빠는 분명히 크게 한 자리 할 것이다. 

하지만, 나정이 힘든 건 지금 이 시간일 뿐. 목마른 그 시간에 물이 공급되어야 한다. 10년 뒤에 잔치상 벌인다고 10년을 내리 굶을 수는 없는 일이다.

 

힘들 때 옆에 있어 주는 사람


드라마 상 나레이션 등으로 심리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병원에 있던 그 시간, 나정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칠봉이었다. '참 고맙제. 밥이라도 한 끼 사 주라"는 말은 나정의 상황을 설명한 나레이션과 다름없다.

아버지가 위기에 처해 있고 엄마는 먼 곳에 있어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 실제적 가장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될 사람은 오직 나정이 뿐. 이 상황 자체가 포괄적 의미로 나정의 전체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정이 느끼는 삶의 무게. 혼자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찬 책임감. 

능숙하게 칠봉이 차를 운전해 나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병실 밖을 같이 지켜 주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좋아해 왔노라고 - 손을 떨며 - 고백을 해 왔다. 

참 고맙제. 칠봉이 없었으면 우짤뻔 했노. 따신 밥이라도 한 끼 사 줘라.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쓰레기 오빠에게 올인했던 나정. 그 때의 나정이 핑크빛 소녀시절이었다면 지금의 나정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집안이 힘들어 스스로 가장의 책임감을 느끼는 나정. 그리고 사랑을 포기하고 먼 이국땅에 돈 벌러 가야겠다고 결심하는 나정은 이제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이다.  

자신의 감정에만 올인하기에는 챙겨야 할 주변이 많아졌다. 주변까지 돌아 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 슬프게도 대학 신입생때의 그 스무 살 소녀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세월이 그 소녀에게 혹독함을 뿌려 대었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바쁜 쓰레기 오빠의 일정에 맞추어 만나고 또 부산까지 가서 자신의 생일상을 스스로 차리기도 하고 엉망이 된 오빠의 방을 치우곤 했던 그 모든 일들. 이제 나정은 스스로도 기대서 쉴 수 있는 안식처가 그리웠던 건 아닐까? 힘든 이 시간, 바로 그걸 해 줄 수 있는 '고마운 사람'이 옆에 있는 칠봉이였고.

만약 나정이가 그 때 칠봉이에게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아니 이 드라마에서 칠봉이 쪽으로 무언가 무게를 두려고 의도했다면 바로 그 점이 키가 되었을 것이다. 

사랑 하나로 행복했던 소녀 나정이, 이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졌다고. 고마운 사람이 필요해졌다고. 

1994년에서 시작해서 이제 2000 년이 되었다. 그 시간만큼 주인공들도 달라 졌을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그 간격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을 못 시켰다면 그건 제작진의 불친절함때문이거나 아니면 납득되기 싫어하는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정의 선택


나정이 마음을 칠봉쪽으로 돌린다고 해도, 혹은 원래의 순정이 돌아 와 쓰레기 오빠에게 돌아 간다 해도, 둘 중 어느 것이 결말이 나더라도 다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제작진들이 미리 쳐 놓은 떡밥들을 어떻게 회수할지 그건 제작진들이 잘 해결할 문제다.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끝난 뒤 평가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나정의 선택이 어느 쪽으로 결론날지 흥미롭게 지켜 보는 것이 우리의 몫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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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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