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에서 내려와 마을로 가려면 길가, 팽나무를 심은 넓은 뜰 안쪽에 서 있는 농가 앞을 지나게 됩니다. 이 집은 진짜 프로방스 지방의 지주 저택으로 지붕이 붉은 기와이고, 지붕 꼭대기에는 바람개비가 있으며, 갈색의 넓은 정면에는 일정치 않게 창이 나 있고 건초를 걷어올리는 활차와 불쑥 뻗어나온 건초단이 몇 단 눈에 뜨입니다.

저 집이 어째서 나에게 충격을 주었는가? 저 닫혀진 대문이 어째서 나의 마음을 억눌렀을까? 나는 그 이유를 말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러면서도 저 집을 보게 되면 몸이 오싹해졌읍니다. 집 주위가 너무나 고요했읍니다. 집 앞을 지나가도 개들조차 짖지 않았읍니다.

집안에는 인기척 소리 하나 없었읍니다. 실로 노새의 방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읍니다.

창문의 흰 커어튼과 지붕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만 없었다면,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어제 정오에 나는 마을에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햇빛을 피하려고 저 농가집의 담을 따라 팽나무 그늘 속을 걷고 있었읍니다. 농가 앞 길 위에서는 머슴들이 말 없이 마차에 건초를 싣는 일을 끝내고 있었읍니다. 대문이 열려 있었읍니다. 나는 지나가면서 힐끗 들여다보았읍니다. 뜰안 저 쪽에 몸이 큰 노인 한 분이 커다란 돌 테이블 위에 팔을 괴고 -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 있었읍니다. 그는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으며 아주 짧은 윗저고리와 헤어진 바지를 입고 있었읍니다..... 나는 멈춰 섰읍니다. 한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읍니다.

- 쉿! 주인 어른이랍니다. 아드님의 불행이 있은 후 저렇게 되었지요.

그 때 검은 상복을 입은 부인과 작은 사내 아이가 우리들 곁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금박을 한 두꺼운 기도서를 들고 있었습니다.
 
- ..... 미사에서 돌아오는 주인 마님과 작은 아드님이죠. 아드님이 자살한 뒤로.... 매일 저렇게 미사에 나가신답니다. 아! 선생님,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아버지는 죽은 아들의 옷을 입고 있는데 아무리 벗길래야 벗길 수가 없답니다. 이려! 찌찌!!

마차가 흔들리더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어서 마차꾼에게 곁에 앉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마차 뒤 건초 속에서, 저 슬픈 이야기를 전부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

그의 이름은 쟝이었읍니다. 그는 색시처럼 온순하였으며, 건장하고 밝은 얼굴을 한 스무살의 훌륭한 농부였읍니다. 그는 아주 미남이었기 때문에 여자들의 시선을 끌었으나, 그의 머리속에는 오직 한 여자 - 아를르의 투기장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비로드와 레이스로 몸을 감싼 귀여운 아를르 여자밖엔 없었읍니다. 집에서는 우선 이들의 관계를 좋아하지 않았읍니다. 여자가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었으며, 여자의 부모들이 이 지방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쟝은 그 여자에 대하여 필사적이었읍니다.

- 이 여자를 못 얻으면 죽어 버리겠어.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읍니다. 부모들은 추수가 끝나면 그들을 결혼시키기로 정했읍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저녁, 농가의 마당에서는 가족들이 막 저녁 식사를 끝내고 있었읍니다. 그것은 결혼 축하연이나 다름없었읍니다. 신부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가족들은 시종 신부를 위해 축배를 들고 있었읍니다. 그 때 한 사나이가 문 앞에 나타났읍니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에스떼브 주인 영감님에게만 할 말이 있다고 했읍니다. 에스떼브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읍니다.

- 영감님, 당신은 2년동안이나 저의 정부였던 화냥년과 아드님을 결혼시키려 하고 계십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자 여기 증거로서 편지가 있읍니다. 그년의 부모들도 다 알고 있으며, 제게 그년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답니다. 그런데 당신 아드님이 그년에게 구혼을 한 뒤로는 그년이나 그년의 부모들이나 저를 싫어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과거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있을 줄은 몰랐읍니다.

- 알겠소.

편지를 보고 나서 에스떼브 영감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들어와서 포도주나 한잔 드시요.

- 고맙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가슴이 아파 술 마실 생각이 없읍니다.

그리고 사나이는 가버렸읍니다.

주인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들어와 식탁에 앉았읍니다. 연회는 즐겁게 끝났읍니다..........

그날 밤 에스떼브 영감님은 아들을 데리고 들로 나갔읍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읍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여보, 키스해주구려!! 가엾은 녀석이야........

지주 영감님은 아들을 어머니에게 데리고 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

쟝은 아를르 여자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읍니다. 다른 사람의 수중에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너무나 자존심이 강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을 따름이었읍니다. 가엾게도 그러한 성격이 그를 자살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그는 한구석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혼자서 꼼짝 않고 보내는 때도 있었읍니다. 어느 때는 미친 듯이 밭으로 가서 날품팔이 열 사람치의 일을 혼자서 해치우는 것이었읍니다. 저녁이 되면 그는 아를르로 뻗은 길을 따라 아를르 시의 뾰족한 종탑이 서쪽 하늘에 보일 때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었읍니다. 결코 그 이상 더 멀리 가지는 않았읍니다.

이와 같이 그가 언제나 혼자 슬픔에 싸여 있는 것을 보고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읍니다. 가족들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했읍니다. 한번은 식탁에서 어머니가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읍니다.

- 그래, 들어봐라. 네가 끝내 그 여자를 원한다면 결혼시켜 주겠다.

아버지는 창피스러워 얼굴을 붉히고 머리를 숙였읍니다.

쟝은 싫다는 표시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읍니다.

그 날부터 그는 생활 태도를 바꾸었읍니다. 그는 양친을 안심시키려고 언제나 명랑한 표정을 지었읍니다. 무도회나 캬바레에 그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읍니다.

- 저 애의 마음이 아문 모양이군.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으나 어머니만은 여전히 염려하며 전보다도 더 아들의 거동을 살펴보았읍니다. 쟝은 양잠실 바로 옆 방에서 동생과 함께 잤읍니다. 가엾은 어머니는 그들 옆 방에 침대를 갖다 놓게 했읍니다. 밤중에 누에를 보살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지주들의 수호신인 성 엘롸의축제일이 되었읍니다.

농가의 커다란 기쁨이었읍니다. 누구나 포도주를 마음껏 마실 수가 있었읍니다. 그리고는 꽃불이 터지고 마당에 모닥불이 타오르고, 팽나무에 가득히 오색의 등불이 걸리는 것이었읍니다. 성 엘롸 만세!! 사람들은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었읍니다. 동생은 새 옷을 태워 먹었읍니다. 쟝도 기쁜 표정이었읍니다. 그는 어머니와 춤을 추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기뻐서 눈물을 흘렸읍니다.

자정이 되자 사람들은 자러 갔읍니다. 누구나가 졸리웠던 것입니다. 쟝만은 자지 못했읍니다. 아우는 나중에 그가 밤새 흐느껴 울고 있었다고 말했읍니다. 아! 그는 심히 괴로와했을 것입니다.

이튿날 새벽, 어머니는 누가 자기 방을 지나 달려가는 소리를 들었읍니다. 그는 어떤 예감이 들었읍니다.

- 쟝이니?

쟝은 대답이 없었읍니다. 그는 벌써 층게를 올라가고 있었읍니다.

어머니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읍니다.

- 쟝 어델 가니?

쟝은 다락방으로 올라가고 있었읍니다. 어머니는 그를 따라 올라갔읍니다.

- 얘야, 무슨 짓이냐!

쟝은 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읍니다.

- 얘, 쟝아 왜 그러니? 말좀 해라.

주름진 손을 떨면서 어머니는 더듬더듬 문고리를 찾았읍니다................ 창문이 열리더니 포석을 깐 마당 위에 사람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는 잠잠했읍니다.

가엾은 아들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 아무래도 그 여자를 잊을 수가 없다. 죽어버리자.

아! 우리들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가련한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상대자를 경멸하려 해도 사랑하는 마음을 끝내 꺾을 수가 없음은 어찌 가혹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이튿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에스떼브 집쪽에서 누가 그렇게 울었느냐고 서로 물어보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뜰안, 이슬과 피로 물든 돌 테이블앞에서,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풀어헤친 가슴이 메어지도록 흐느껴 운 어머니의 울음 소리였읍니다.






알퐁스 도데하면 - '별'을 많이 떠올리시죠?

감정표현에 있어 작가의 개입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거의 사실만을 서술하고 있는데 그의 서정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읽는 이의 상상과 사유를 하게끔 남겨둔 그 여백에 있는 것이 아닌지요.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공부하고 여기에 관해 시험까지 쳤었던 단편소설입니다.

이성과 감정에 관해 서술하라. 인간이 조절가능한 것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가? 본인에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등등의 시험문제가 나왔었습니다. - 교수님이 좀 특이하신 부분이 많긴 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저 쟝의 입장이라면? 소설 속에서 몇 줄의 글로만 나오는 저 아를르의 여인은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찾아간 전 약혼자의 행동에 공감하십니까?

여러분이 쟝의 어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쟝의 아버지의 캐릭터가 어떤지 그려지시나요?



프로방스 지방은 프랑스 중에서도 시골스러움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포도밭도 많구요..

웹에서 돌아다니며 줏은 프로방스 지역의 사진을 몇 장 갖고 와 봤습니다.

물론 근래의 사진들이라 소설 속 시대의 것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분위기만 -

아, 그리고 작가 사후 50년이 지난, 고전소설의 경우는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는 글을 읽고 안심하고 타이핑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의 포도밭 사진입니다.

아래 사진들도 주욱 다 프로방스 지방이에요.









* 사진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프로방스 지역 사진을 모은 것입니다.
혹 원소유자께서 원치 않으신다면 사진은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포스팅에 호감이 가신다면 구독하실 수도 있습니다!
        메일로 구독하기 메일구독방법안내 한RSS로 구독하기 피드버너로 구독하기 iGoogle or 구글리더로 구독하기 myYahoo에 추가하기 트위터 네이버 이웃추가
Posted by 아딸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또웃음 2012.04.10 1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 속의 풍경도 올려주신 사진과 비슷할까요?
    갑자기 독서논술 시간 문제풀이 같은 질문이 쏟아져나와 긴장했습니다. ^^
    비가 오고 있네요. 이 비로 날씨가 갑자기 확 더워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

  2. 드래곤포토 2012.04.10 2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덕분에 좋은사진도 즐감했습니다. ^^

  3. daomnigs 2012.04.11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퐁스도데의 소설에 이런것도 있는줄 몰랐네요..
    군더더기 없는-짧은 글 속에 많을 것을 생각해보게 만드네요. 지극히 사실적으로도 보이고.
    쟝도, 부모도, 낯선 사나이도 모두 이해는 돼요..그 아를르의 여인은 간접적인 이야기로만 나오니 알 수 없고..
    그래도 그 여인도 자신의 입장이 있겠지요? 가령..쟝을 정말 사랑하게 되었다든가..뭐..그런.ㅎ
    쟝도 시간이 좀 지나 보면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바람이.

    • 아딸라 2012.04.11 0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오밍스님. 이 밤 뭐하시는지? ^ ^
      알퐁스 도데 소설 중에 제가 '사포'도 리뷰를 썼잖아요.
      알퐁스 도데가 보면 주제랑 조금이라도 상관없다 싶으면
      심하게 생략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 여인을 생략한 건 신비롭게 보이게 하기도 하고
      그 여인에 대한 선입견을 생기지 않게 하려고 한 것 같기도 하구요.
      장 아빠가 싫어라 한 걸 보면 그다지 품위있어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참한 청년 장이 홀딱 빠진 게 안타깝죠.. ^ ^

  4. Hansik's Drink 2012.04.11 1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너무 잘보고 갑니다~ ㅎㅎ
    수요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5.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4.12 0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구 갑니다..!
    애매한 목요일이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늘 하루 멋진 하루가 되셨으면 해요..^^

  6. 릿찡 2012.04.12 1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퐁스도테의 경우에는 <<마지막 잎새>> 말고는 몰랐는데 이런 소설도 있었군요. 아직 읽은 책이 너무 부족한것 같습니다.

    • 아딸라 2012.04.12 1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지막 잎새 - 헷갈리셨나봐요. 오 헨리거에요.
      이 소설, 짧아서 금방 읽어지죠? ^ ^

    • 릿찡 2012.04.12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퐁스 도테는 뭐더라...

    • 아딸라 2012.04.12 1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별 이 제일 유명할걸요? ㅎ
      그리고 마지막 수업도 학교다닐 때 교과서에 나왔죠.
      별도 교과서에 -
      수레바퀴 밑에서라는 작품도 있구요.
      마지막 잎새는 - 거, 왜. 아픈 환자가 담벼락을 보면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나도 죽으리... 했는데
      마지막 잎새 하나가 절대로 안 떨어져가지고 희망을 가지고는
      살아났는데 나중 알고보니 그 잎새가 화가가 그린 거였더라는 그 얘기예요. 기억나시죠? ^ ^

  7. 싸장님 2012.04.12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소설은 몰랐던 거네요..
    별만 알고 있었거든요...
    헌데 그 교수님 좀 특이하게 이끌어내시네요..ㅎ
    저라면 어땠을까? 그 여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고민 많이 될거 같은데요..
    파리랑 프로방스는 분위기는 거의 180도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 아딸라 2012.04.12 1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교수가 원래 철학교수거든요.ㅎ
      문학비평 파트에 철학이 있다보니 그거랑 접목해서 -ㅎ
      프로방스 지방은 제가 - 그... 약간 전원풍의 편안한 인테리어 스타일로 많이 알려져 있더라구요.
      우리가 잘 아는 하얀색 원목 가구들요. 약간 거칠게 손질한. 혹은 바래진 민트색 가구라든가. 하얀색 레이스 커튼등 - 그게 다 프로방스 스타일 인테리어라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