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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낯선 번호, 아들이 받은 문자에 가슴 뭉클했던 사연


주말에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 갔습니다.

쪽방 학사에서 힘든 재수생활을 보낸 큰 아들이 드디어 올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거든요. 운좋게 기숙사에 들어 가게 되서 바리바리 짐을 싸서 기숙사에 넣어 주었습니다. 옷장 안을 다 닦아 내고 가져 온 옷들로 채워 주었습니다.

작은 청소기라도 하나 사다 놔야겠다... 구석구석 머리카락에 먼지 - 지저분하구나...

아유, 당신도 참. 남자애들이 청소 자주 할 것 같아? 사다 줘도 안 한다고 -
남편이 웃습니다.

가만 보니 양치컵도 사야 되고 전기 콘센트도 두 개 밖에 없으니 멀티탭도 사다 줘야 되겠고 -

이것 저것 챙겨 주고 서울 간 김에 큰 집도 들러 인사한 뒤 내려 왔습니다. 밤 11시 반에 출발을 해서 5시간 이상을 운전해서 돌아왔습니다. 교대로 운전을 하면서 남편이 말했습니다.

잘 지내겠지?

실내 온도 조절기 작동이 잘 되는지 한번 해 보고 올걸 그랬어요. 방이 따뜻한지 어쩐지. 처음 보는 다이얼이라서 얘가 잘 할 수 있을런지. 추운데서 오늘 밤 자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내일 아침에 일찍 식권을 받아야 밥을 챙겨 먹을텐데 - 아유.. 이것 저것 걱정만 되네.

걱정만 하는 제게 남편이 옛날 생각이 나는지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말을 잇습니다.

큰 애 처음 태어났을 때 생각나나? 그 날 첫 밤에 애를 눕혀 놓고 불을 끄고 자려하는데 쌕쌕거리던 애 숨소리에 같이 웃었던 거. 식구가 늘었구나 실감했지.  애가 재채기하는 것도 신기했고 말똥말똥 눈 마주칠 때마다 시선 마주치는 것도 신기했는데...

키 188 에 거구인 큰 아들의 갓난 아기 시절을 떠올리는 남편의 말에 저도 잠시 같이 20년 전을 떠올렸습니다.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엄마나 아빠나 그리 다를 것이 없나 봅니다. 그 아이는 우리가 같이 키운, 우리의 아이니까요.

문득 며칠 전에 아들이 받았던 문자가 떠올랐습니다.

문자를 받기 며칠 전에 아들은 친구의 군 환송식을 다녀 왔었습니다. 제 학년에 대학을 들어 간 친구들 중에 1학년을 마친 뒤 군에 가는 애들이 많았습니다. 그 날도 그렇게 환송식을 마치고는 밤 늦게 들어왔지요.

그리고 나서 이틀이 지나고 그 친구는 군으로 갔습니다. 낮에 군부대로 가고 난 뒤 저녁이 되고 해가 떨어진 시각에 아들은 낯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광고 문자?

열어 본 문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규태의 친구분이나 선, 후배께서는 아래 주소로 연락바랍니다.

군 입대해서 많은 소식 기다립니다. 경기도 파주시 ....

규태 아빠 -



규태는 군에 가면서 핸드폰을 정지 시켜 놓았을 것입니다. 규태 아빠는 정지된 아들의 핸드폰을 열어 일일이 문자 보낼 전화 번호를 자신의 폰에 꾹꾹 눌러 적어 넣었을 것입니다.

군에 보내고 돌아 온 뒤 빈 아들의 방에서 아들의 핸드폰 친구 목록을 뒤적거렸을 그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자신만이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그 아버지는 친구들이 보내는 편지에 기뻐할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열심히 문자를 적어 넣었을 것입니다.

군 입대해서 많은 소식을 기다릴 규태에게 편지를 보내주세요...

그 아버지의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목이 메어왔습니다.

이 곳 울산과 경기도 파주시는 너무도 멉니다. 밤새워 5시간을 내리 운전해야 내려 왔던 어젯밤의 거리만큼입니다. 그 먼 곳으로 보낸 규태 아빠는 그 밤에 저 문자를 보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들을 군에 보낸 뒤 허물처럼 보내 오는 사복 소포더미를 끌어 안고 운다는 많은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껍데기만 돌아 오고 우리 아들 알맹이는 저 먼 곳에 있구나를 실감하면서 말입니다.

고작 대학 기숙사에 넣어 놓고도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제 마음이 그 어머니의 마음에 비할 수야 있겠습니까?

문자의 주인공이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라서  제가 더 울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딱딱한 문체로 적은 문자 내용은 남자의 것이라는 것이 직관적으로 느껴졌는데 드라이한 문구 너머 애정과 안타까움이 더 대비되어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너머의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군인들 - 다 이런 사랑과 걱정을 안고 들어갔겠지요. 다들 무사히 군생활 보내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의 곁으로 돌아 올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규태 아버지 - 우리 아들에게 편지 보내라고 제가 다시 당부할께요. 
규태도 늘 건강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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