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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 연예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노래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바로 - 여러분

# 눈물을 모르는 자는 감동을 모르고,

      감동을 모르는 자는 사랑을 모른다

 



나는 가수다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무대가 연이어 화제의 중심이다.

지지난 주의  '빈잔'과 저번 주말에 보여주었던 무대, '여러분'을 보며 나 역시 감탄과 감동으로 가득 찼었다.
임재범의 노래가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 어루만져 주는 노랫 소리에 내 마음의 방어를 해제한 채 다 놓아 버린 기억이 언제였는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내 감정 상태에 아련한 향수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스스로에게 놀란 내게 그보다 더 놀래킨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 청중들의 몰입된 모습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잊은 채 무대 위의 가수와 노래에 몰입하고 있었고 객석은 그야말로 무대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어느 수능 강사가 강의 시간에 우스개 소리로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며 '허거걱~!!!' 놀라는 개그를 보여주는 영상이 있는데 혹시 그걸 보신 적 있는지?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노래에 빠져 들다가 객석을 비추는 화면에 화들짝 놀랐으니, 그건 바로 그 모습이 그 순간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미친 듯 빠져들고, 웃고 울고, 환호하는 모습. 그건 나였다.

그리고 무대 위의 가수들 노래 소리에 빨려 들 듯 집중하는 청중들의 얼굴에선 빛이 났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 감동의 깊이가 어떠한 것인지 타자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무대 위의 가수에게 힘을 주려는 듯 팔을 높이 치켜 들며 박수치는 그들에게선 선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을 다 보여주는 가수들에게 자신들이 보답해 줄 것은 마음을 다하여 환호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청중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감동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은 고된 그들 삶을 씻어 내리는 정화수가 되었다. 그들을 보며 내 감동이 저렇게 맑은 것이구나, 내게 저렇게 선한 빛이 나겠거니, 씻겨 내려 가고 있구나 하고 자각했다.
내 감동의 깊이와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무대와 객석은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객석의 청중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투영한 나도 화면 속의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건 희안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서 - 또 희안한 경험을 연달아 하게 된다.




나가수가 끝나고 올라오는 기사들마다 3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달리는 수천개의 댓글들 - 칭찬 일색의 댓글들이다. 칭찬 정도가 아니다. 그저 엎드려 찬양이라고 할 수준이다. 그리고 각 댓글마다 추천수는 또 어찌나 많은지 -

그 중 하나를 더보기 안에 넣어두었다. 어느 정도였는지 기억을 되새기는 의미로 하나 맛뵈기 -




넷 상에서 기사글에 댓글을 다는 사람은 대충 정해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 민감한 사안에 대해 울분이 차오를 때, 혹은 특정 글에 대해 반박을 하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이 댓글러로 출동된다. 그 외엔 악플러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민감한 정치, 사회 파트도 아니고 댓글들이 악플들도 아니다.
평소 댓글을 잘 안 달던 사람들이 마음이 동해서 안 달면 견딜 수가 없어서 모두 달려 나온 것이다. 이 사람들이 다 누구겠는가?

저 객석에서 먹먹한 표정으로 무대를 홀린 듯이 봤었던 청중들과 동일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인 것이다. 청중들의 모습에 '허거걱, 내가 지금 저 표정이네?! @@" 하고 놀랐던, 나와 비슷한 사람이란 말이다. 감동이 차고 넘쳐서 누군가와라도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이 모두 뛰쳐 나왔다. 그들이 저기에 댓글을 달고 추천버튼을 클릭하고 있는 것이다.

tv 미디어의 위력, 긍정적인 파워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공연장에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의 사람들과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공감의 경험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공연 자체의 감동도 감동이지만 홀로였던 자신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인간들 사이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베이스로 하여 무언가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벅찬 감동도 가져 온다.

나는 가수다의 경우, TV 전파를 매개로 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어 온 국민을 그 공감의 감동 안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넷상을 통해 꾸준히 공감의 경험을 증폭, 재생산시키고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것의 의미를 살펴보자.




대중문화가 여흥으로서의 문화가 아니라 감동을 주는 '예술'의 경지로 올라간다면?

공감과 감동의 경험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상대의 아픔을 마음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 주변의 행운을 자기 일인양 같이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 진심을 다해 잘못을 반성할 때 그것이 진심인지 알아 채고 관대히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  사회가 제대로 소통이 되어 지는 건 바로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 질 때이다. 그리고 이런 공감 능력은 공감의 경험이 많고  감동의 크기가 컸던 사람들일 수록 커진다.

이것은 폐활량의 예와 비슷하다. 또한 폐활량의 예는 고무풍선의 예와도 닿아 있다. 한번 크게 부풀려졌던 풍선은 유연해진다. 조금만 숨을 불어 넣어도 쉽게 부풀어 오른다. 감성과 공감 주머니도 마찬가지이다. 한번 크게 감동하고 공감했던 경험이 그 사람을 더욱 유연하게 만든다.

인간 사회에서 '생산'과 '효용', 못지않게 '문화'와 '예술'의 부분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감동'으로 감성의 양식을 채워야 제대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공연장을 가지 않고도 TV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이런 거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대중문화가 세상을 감동시키는 대중예술로 승화되는 현장이다.
나아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공연장을 직접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수동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긍정적 현상이라 하겠다.

TV 대중 문화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작은 기적을 바래본다.






보너스로 - 더보기 안에 임재범 무대 이외에 다른 가수들의 객석 반응이 들어 있다.

다들 얼굴에서 빛이 난다. ;;
물론 이것은 몰입하는 순간에 점점 줌이 되어 가는 카메라 테크닉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것이 더 크다.
그들이 몰입하니까. 그들이 실제로 빛나고 있으니까.

그리고, 모든 영웅담에는 그것을 보고 반응하는 일반인이 끼어 들어간다.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원더우먼에서 '기기기기깅~~' 굉음을 내며 괴력을 발휘하는 그들을 습관처럼 아무 생각없이 보는 우리들을 깨워 주는 건 '지나가는 행인 1'의 반응이다.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떨어 뜨리고 그 안의 오렌지들이 땅바닥을 구를 때, 전혀 배우같지 않게 평범하게 생긴 엑스트라의 입이 떡 벌어지고, 놀라 도망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주인공의 힘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TV 안의 허구 세상이 아닌 실제의 곁에 두어졌을 때 어떤 크기인지 짐작을 할 수 있게 된다.

나가수 객석의 표정을 보며 이것이 실제라는 것을 실감하는 나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