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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영화

'기술자들', 팝콘 무비로는 딱 좋았지만

 

 

 

지난 26일 기술자들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개봉한 지 6일째 되는 어제 날짜, 12월 29일에 15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이 영화의 손익 분기점은 발표된 바에 따르면 250만명이라고 합니다.

 

제 예상으론 250만을 겨우 넘기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손익분기점은 넘으리라 예상되는데 정확한 건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죠.

 

영화에 대한 평들을 살펴 보면 호 불호 평이 엇갈립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일까요, 영 별로인 영화일까요? ^ ^

 

 

개론

 

전 괜찮게 보고 나왔습니다. 중간 중간 "음... 이게 대체 무슨 전개냐?" 한 적도 두어 번 있긴 합니다만, 다 보고 나오면서 찜찜함이 남지도 않았고 시원하게 2시간 가량을 잘 즐기다 나온 흡족함으로 극장 문을 나섰습니다.

 

제가 기대치가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킬링타임용으로 딱히 머리 굴리지 않고 편안하게 즐기다 나올 영화를 기대하고 갔었습니다.

 

기왕이면 오락 영화이면서도 완성도도 꽤 높은, 스타일리쉬하고 꽉 짜여진 명품 영화를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2014년, 한국 영화계에 큰 방점을 찍을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

 

저는 지나치게 하드 보일드한 영화는 원하지 않았고 잔혹한 장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감동과 교훈을 억지로 권하는 것도. 열린 결말같은 것도. 나쁜 놈은 확실하게 응징되어야 하고 우리 편은 화끈하게 성공의 대미를 장식해야죠.

 

아름다운 실내와 , 의상, 멋진 외모의 주인공들을 보며 잠깐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판타지 속을 노닐고 싶은 꿈 정도도 있었습니다. 그걸 충족시켜 줬습니다. 영상미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것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면 이 영화는 완벽한 영화가 되었겠죠.

 

잘 보고 나오긴 했지만 아쉬웠던 부분들을 짚어 보겠습니다.

 

 

 

잃어 버린 30분

 

주인공 지혁의 이름이 지혁인 것도, 뭐하는 사람인지, 여태 무엇을, 무엇을 위해 하고 있었던 건지 제대로 선명하게 밝혀지는 것이 영화를 시작한 뒤 35분 뒤입니다.

 

조사장 (김영철 扮) 에게 이실장 (임주환 ) 이 지혁에 관한 데이터 파일들을 풀어 놓을 때 지혁에 관한 정보들이 그제서야 일목 요연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면 그 전의 35분간 이 영화는 무얼 보여줬던 것일까요?

 

 

 

지나치게 달리는 사이로 빈틈이 보이다 

 

35분이 지난 후의 영화는 그야말로 엔진을 새로 얹은 열차 마냥 추진력을 얻어 겁나게 달립니다.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악당인지 확실하게 양쪽으로 대치점에 그들을 둘 수 있습니다. 말판을 앞에 두고 흰 알이 담긴 통과 검은 알 통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건 관객이 드디어 단순한 관람자의 위치에서 사건들 속으로 관여해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집중력이 자꾸 흐트러지는 걸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종착역이 어디인지 보여 줍니다. 어디를 도착하면 성공인지 실패인지.   악당이 우리 편에게 원하는 바가 무언지 드러납니다. 우리 편이 그것을 받아 들일 경우 안게 될 위험도 모호하지만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힙니다. 그것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흐릿하지만 ( ㅠㅜ) 보여집니다.

 

아주 명확한 이유는 아주 뒤에 나오지만요. 일단 관객들은 '그렇다 치고' - 악당의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엄청난 비극이 올 거라고 치고 -  받아 들이면서 나갑니다. 이게 첫번째 빈틈입니다.

 

반전으로 뒤에 터트리기 위해 숨겨 둔 탓에 관객들은 지혁들이 그 제안을 받아 들이게 되는 타당성을 크게 받아 들일 수가 없다는 거죠. 설득력이 초장부터 반쯤 접혀 들어갑니다.

 

중 후반부 사건 진행은 아주 바쁘게 치고 달려 나가서 조금의 여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달려야만 하는 양 영화는 마지막을 향해 마구 달려 나갑니다. 약간의 위트나 숨돌릴 틈도 없이 사건 진행이 바쁜데요, 일단 의문, - 이자 두번째 빈틈. 이렇게 사건 진행이 바빴다면 그 앞의 35분은 왜 그렇게 별 것없이 허무하게 써 버렸을까? 그 35분의 효용성은 어디에?

 

세번째 빈 틈. 마지막 종착역, 즉 작전 실패에 대한 가능성이 별로 심각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식의 실패가 있을 수 있는지, 다가 올 위험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가 없었기에 관객들은 큰 긴장없이 전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반전과 해결로 대미를 완성하기 전 '쪼아 줌'이 있어야 완결의 카타르시스가 큰 법입니다. 그런데, 위험이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으니 긴장이 줄어 들어 버렸고 긴장이 줄어 드니 긴장 해소의 완결미도 줄어 든 거죠.

 

편안하게 볼 영화를 원한 건 맞지만 이런 식의 편안함을 원한 건 아니었구요...

 

사건 진행만을 드라이하게 펼쳐 나간 건 제 생각에 ;; 감독의 성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잘 하지 못해서 유치해질 바에는 그냥 안하고 마는 것? 유머, 위트, 이런 데 좀 약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적인 전반부 전개를 상상하다

 

전반부 느슨했던 35분을 돌아 보겠습니다.

 

조목 조목 전개에 관해 짚어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영화를 못 보신 분들에게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뭉뚱그려 그냥 적겠습니다.

 

중 후반부 사건을 진행하기 전 전반부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건 보통 두 세 가지 중 하나입니다.

 

한 가지. 중 후반부에 본격적인 메인 에피소드로 들어 서기 전 배경 사건들을 늘어 놓는 겁니다.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 배경 사건들이 뒤에 나타날 메인 에피소드와 크게 관련이 있을 거라는 암시와 힌트를 끊임없이 주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객들은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며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메인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어야 하구요. 그렇지 않으면 낚시가 되겠죠. 중요한 척 해 놓고는 아무 상관도 없음시롱- 이런 불평을 듣게 됩니다.

 

 

 

 

기술자들이라면 화려함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기술자들'에 더 어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확실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을 화려하게 전반부에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주인공인 김우빈의 캐릭터 구축이 물론 제일 중심에 있어야 하겠고 그의 조력자들인 이현우와 고창석의 캐릭터도 확실하게 보여져야 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유하고 독특한 캐릭터들 말입니다. 그것은 때론 사악한 매력을 풍길 수도 있고 엉뚱할 수도 있고 미련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런 캐릭터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하게 매력적인 캐릭터가 먼저 똘똘 덩어리가 지고 나면 그 다음 사건 전개는 반은 먹고 들어 가는 겁니다. 그 매력적인 등장 인물들이 위험에 처해 지면 더 애가 타는 거고, 성공하면 더 기쁜 거고, 로맨스는 더 달콤해지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

 

주인공 지혁이 지나치게 정형적인 '착하고 모범적인' 남자라는 것입니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 여자를 가까이 한 적도 없습니다. 워낙에 성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게 나오기 때문에 '샤워씬'이 그래서 약간은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한다는 것도 조윤희가 호감을 가진다는 정도로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도둑질을 하면서도 나쁜 짓은 전혀 하지 않는 이런 주인공의 성격때문에 영화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있어 많은 제약을 받게 됩니다.

 

정의의 사도인 주인공으로의 설정은 엄청난 액수의 돈을 빼돌리는 이 비도덕적인 짓(!)을 하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도 합니다만, 대미 부분의 화려한 반전과는 또 어울리지 않는 모순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탐관오리의 돈을 빼앗았다면 그 돈을 불쌍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줘야 합니다. 제 마음대로 쓰는 데 대해 관객들이 진정한 박수를 보내려면 주인공의 매력에 빠져 들어 그에게 혼을 뺏기던가요. 선과 악의 기준쯤 잠시 날려 버릴 수 있을만큼.

 

'잭과 콩나무'처럼 그 돈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태생적으로 조윤희나 김우빈에게 있거나 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조윤희에게 있다면 주인공 김우빈과 더 밀착 관계를 강조해야 하겠지요.


'그렇다 치고' ;; 김우빈이니까 - 주인공이니까 -

 

 

 

 

모가 안되면 도라도

 

스토리 구조상 주인공에게 드라마틱한 성격을 부여할 수가 없었다 하면, 두번째 차선의 방법으로 도둑, 기술자로서 넘사벽의 기술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이건 화려한 영상미로 이어질 수도 있고 집중도도 높일 수 있습니다. 지혁의 독특한 캐릭터 구축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의 고유한 특성인 거죠. 세상 어떤 다른 사람들과도 차별되는 그만의.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기묘묘한 기술을 쓰며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 내고 느긋이 그 감탄을 즐기는 천재 도둑, 이런 이미지라도 있었다면.

 

지혁의 '기술'에 관한 부분은 구체적인 방법에서나 영상으로 연출되는 면에서도 평이했습니다.

 

드릴로 금고를 뚫은 뒤 금고문을 '제끼는' 액션만으론 극적 긴장감이 생기긴 힘듭니다. 아무리 스톱워치의 제한성을 둔다 하더라도요.


결국 관객들은 또 한번 '그렇다 치고' 봐야 합니다. 영화 속에서 금고를 잘 딴다고 다들 얘기하니까 그런 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한다면(부족한 점 위주의 정리),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 부족, 곁가지가 부족한 단선적 스토리 전개, 작전의 위험성에 대한 구체적 정보 부족으로 인한 긴장감 저하, 이런 것들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 스토리는 어느 정도의 허구성을 보여 주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물의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돈의 출처에 대해 덜 구체적이다라든가 결말 부분에 있어서도요. 반전 부분도 어느 정도 그렇죠.

 

그렇다면 확실하게 악역들의 캐릭터도 드라마틱하게 나갈 수 있었을텐데 그건 또 하드 보일드한 쪽으로 나갔다는 게 정체성을 모호하게 했습니다.

 

시나리오에서부터 기초가 부족한 상태로 쌓아 올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연출은 주어진 재료 안에서 잘 짜여졌다고 생각합니다. 큰 공백도 없었고 느슨한 부분도 보이지 않았구요. 제가 말한 전반 부분의 느슨함은 이미 기본 얼개가 그렇게 된 상태였습니다. 다만, 연출로 그걸 메꿀 방법을 더 찾아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초반 흥행을 견인하는 건 보통 장르물에 대한 기대도가 시기적으로 잘 맞아 들어갈 때, 그리고 등장하는 배우들에 대한 기대, 즉 배우들의 유인력이 좌우를 하죠.

 

감독의 편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이러한 장르를 선택한 것이 좋은 첫걸음이었고 현재 라이징 스타로서 티켓 파워를 갖고 있는 김우빈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두번째 호운을 이어갔다고 하겠습니다.

 

배우 김우빈과 이현우, 고창석, 김영철로 볼 때 절반의 성공이겠네요. 멋지고 생생한 캐릭터를 배우의 이미지와 재능에 덧입혀 자기 것으로 가지고 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겠고 티켓 파워를 입증한 부분은 얻은 부분.

 

관객으로선 두 시간 재미있게 보냈다는 것이 얻은 것이고 잃은 부분이라면 -

 

팝콘 타임 위에 얹을 수 있는 덤, 즉 멋진 캐릭터를 가슴에 품고 극장 문을 나서며 한동안 설레일 수 있는 덤은 얻지 못했다는 것이겠습니다.

 

1년에 영화 한 개 정도만 보는 분이라면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자주 보시는 분이라면 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특히 15세 이상 - 연령제한이 있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없지만 - 학생들 중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극장에 놀러 가고 싶은 발랄한 학생들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술자들 (2014)

7
감독
김홍선
출연
김우빈, 김영철, 고창석, 이현우, 조윤희
정보
범죄, 액션 | 한국 | 116 분 | 2014-12-24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