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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영화

사건 부재, 신사의 품격 vs 사건 과다, 닥터 진



주말 드라마인 '신사의 품격' 을 선택한 데에는 이전에 시청하던 드라마의 반작용이 크다. 더킹 투하츠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것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김하늘이 출연한 이유도 있고 한국의 조각남 레전드인 장동건의 귀환이 궁금했던 때문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를 돌아 보자면 드라마를 보며 좀 쉬고 싶었다는 것. 현실을 잊고 드라마 속 남녀가 알콩 달콩 때론 티격태격 주고 받는 말장난에 세상 시름 좀 잊어 보고 싶었다는 것이 크다.

그런데, 4회차까지 본 소감은?

스트레스가 너무 없다 못해 약간 심심할 정도이다. 음식으로 친다면 -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조미료를 최대한 억제하려 한 것이 보이나 그것이 살짝 지나쳐 전체적으로 간이 덜 된 음식같다.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 본다.

원인은 의외로 간단한 데 있다. 특이할 만한 '사건' (event) 가  없다는 것이다.



■ 사건이 없다는 것은 갈등 구조가 약하다와 동의어
현재 신사의 품격은 자잘한 '에피소드' 들로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안에 특이할 만하게 크게 대립 구도 라든가 이로 인한 갈등 들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촌스럽게 요즘 트렌디 드라마에 대립 구도를 따지냐고? 악인을 완벽하게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 게 세련된 거라고? 세상에 완벽한 악인이 어디 있으며 우리 사는 인생사에 뭐 그리 대립되고 갈등을 일으킬 만한 일이 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대세는 '자연스러움' 이라고.

하지만, 드라마틱하다, 극적이다 라는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잠깐 생각해 보자. 드라마는 드라마틱해야 하는 것이다.

특정 직업을 가진 등장 인물들이  나오는 드라마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때론 그 직업 상을 그리는 일이 깊이 들어감으로 해서 주객이 전도되는 일도 있다. 즉 의사들이 나오는 병원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거기 또 연애담이 들어 가야 되냐고 시청자들이 짜증을 내는 상황 말이다. 김희선의 '토마토' 에는 구두 디자이너가 나왔고 지금 방영되는 '아이두 아이두' 역시 구두 디자이너가 나온다.  현재 신사의 품격의 작가인 김은숙의 이전 작품, '시티홀' 에서는 정치계 사람들이 나오기까지 했다. 왜 이렇게 등장 인물들의 직업 세계를 부각시키는 걸까?

거기에서 이해 관계 가 생기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쪽은  쟁취해야 하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고 또 보는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쉬우며  이입되기도 쉬운 것이 바로 그런 직업적인 이해 관계로 인한 대립과 갈등이다.

그것이 극적으로 대립되기 위해서 하나 더 얹어 주는 것이 있다. 그 이익을 얻지 못하면 등장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가장 큰 것을 잃는 위험을 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 존재를 걸고 싸운다. 이 말은  대립되는 인물들에게 쟁취해야 하는 목표와 목적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이다.

꼭 직업군이 나오지 않아도 되고 악인이 악인스럽게 그려지지 않아도 된다. 그것들은 드라마의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쉽게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들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에게 무언가 '절실한 것' 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그들의 존재를 걸고 쟁취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에 시청자들이 같이 이입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가지 더- ! 그들이 절실한 그 목표로 가는 추진력을 위해선 '저항' 이 있어야 한다. 배나 비행기가 프로펠러를 돌려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물과 공기의 저항이 있음으로 해서이다. 마이너스 파워가 없이는 플러스 파워가 힘을 얻지 못한다.


■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그리고 저항은?
김하늘 (서이수) 이 친구의 애인인 김수로 (임태산) 에게 마음을 두고 있으나 그것이 얼마만큼 절실한 것인지 설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저항이라는 것은 현재 친구 윤세아 ( 홍세라 ) 의 마음이다. 윤세아가 김수로 아니면 안된다 라고 김수로에게 매달리는 상황이라면 저항이 크다 하겠으나 현재 나온 상황으로서는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슬픈 눈으로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장동건에게 말하기까지 했으니 일단은 독기어린 반작용은 나오지 않았다.  


장동건 ( 김도진 ) 이 저번 화에서 김하늘에게 이런 말을 했다. " 짝사랑을 시작해 보려구요. 사양은 안 하는 걸로. "


이 정도 고백에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꽤 고무적이었다. 이제사 뭔가 '사건'이 진행되나 보다 싶어 설레었다.

사람들이 고백에 설레어 하는 것은 그 고백에 '절실함' 이 한톨 정도라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 사람 안에서 구체화되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니까.

왕년의 로맨스 킹 김민종 (최윤) 과 윤진이 ( 임메아리 ) 의 풋풋한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둘 사이의 저항이라고는 김민종의 애매한 마음 뿐이다. 이종혁 (  이정록 ) 이 김정난 ( 박민숙 ) 에게 절절 매는 것도 뭔가 실체가 잡히지 않는 허상같다. 김정난의 내침을 받게 될 경우 이종혁이 받게 될 고난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것인지 실감나게 설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등장 인물들이 하나로 묶이는 구심점이 없다
김민종
김수로는 현재 같은 집에 살고 있다. 공간상 둘이 엮이고 있다. 김민종이 나가 살 것 같으니 일단 공간상의 엮임은 해체 가능한 것이 되었다. 스토리상 김수로와 김민종은 김수로의 여동생인 임메아리를 매개로 해서 엮여져 있다.

김수로장동건은 같은 건축 사무소에 근무하는 것으로 공간상 엮이고 있다. 직업적으로도 공유되는 부분이 있다. 가장 긴밀한 축이다. 여기에 김하늘은 김수로로 향하고 장동건은 김하늘로 향하고 있다. 세 인물의 교차 지점이 발생한다.

김하늘과 윤세아는 같은 집에 산다. 공간상 엮었다. 둘은 김수로 를 중간에 두고 교차 지점이 발생한다. 김수로의 여동생인 임메아리 ( 윤진이) 는 김하늘이 담임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

김하늘은 학교 교사이고 윤세아는 전직 골프 선수이다. 이 모든 인물들이 함께 모이는 전체 집합소는 현재로선 '운동장'이다. 아마추어 야구 게임의 심판을 하는 김하늘과 야구 동호회원들인 남자 주인공들은 야구를 매개로 한데 모인다. 윤진이는 치어리더를 하며 한 몫한다. 윤세아는 관람자이고.

이 모임 역시 심도있게 들어 가지는 않았다.

각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을 개별적으로 진행시키려는 의도같긴 한데, 어느 정도 구심점은 있어야 집중이 되지 않을까? 지금으로서는 다소 산만한 느낌이 강하다.




정 반대의 상황, 닥터 진
채널을 돌리다 닥터 진을 보게 되었다. 보게 된 장면은 물에 빠진 이소연을 구해 인공호흡하는 씬. 이어 지는 장면은 길에서 쓰러진 아낙네를 구하러 수술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연타 의술 퍼레이드. 그냥 진행시키면 '저항'이 없으므로 갈등 반감이 있으리. 이를 깨기 위해 의료 가방을 가지러 가게 한다. 직선형 스토리 진행에서 약간 변형 확장시켜 보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저항. 가방을 도난 당한다. 약간의 러닝과 실갱이로 저항 3단. 가방 뺏어간 놈들이 알고 보니 나쁜 놈 아니더라로 반전을 시킨 뒤 아낙네 집에 도착한다. 그러나 다시 저항 4번째가 나타난다. 아낙네의 남편, 수술 못하게 한다. 더욱 심각한 저항이 나타나는데 아낙네의 남편이 휘두르는 연장에 소중한 닥터의 손가락 끝에 상처를 입게 된다. 의사의 손은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는데? 손 다친 의사가 맥을 못 쓰더라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저것이 이후에 꽤 심각한 마이너스 파워가 될 수도 있음을 예감한다.

여기까지만 봤지만 대충의 진행 스타일이 보였다. 굉장히 '진하게' 나가는 구나. 신사의 품격이 최대한 조미를 덜 한 '스시' 라면 닥터 진은 갖가지 소스로 가득한 '피자'로구나.

한 순간도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겠어 라는 필사의 의지가 보이는 듯 했다. '재미있어 하는 시청자도 많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피로도도 꽤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사건들이 연이어 이어지고 각 사건들마다 몇 번씩 겹치고 꼬여서 일어 나는 갖가지 '저항'들. 드라마틱함의 극대화였다. 대략의 첫 인상은 그랬다. 굵직굵직한 터치가 이어지다 보니 약간은 거친 느낌.

동 시간대 라이벌 드라마가 어쩌면 이토록이나 정 반대의 성향인지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신사의 품격을 볼테다 -
신사의 품격은 다소 심심한 듯 하지만 세련됨이 느껴진다. 가뜩이나 편안함이 현재의 나로서는 가장 절실한 드라마의 덕목인데다가 이 세련됨 또한 나를 편안하게 한다.

아직 캐릭터의 설명이 디테일하게 들어 가지 않았기 때문인지 살짝 뜨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김하늘은 예쁘고 사랑스럽다. 전설의 장동건을 2012년 최신 기술의 때깔나는 화면과 세련된 연출 속에 앉혀 둘 수 있다니. 이건 어쩌면 우리들이 마지막 잡는 기회일 수도 있다.

시대극에만 익숙해져 있던 내 눈엔 김하늘의 방안, 침대 데코레이션 조차도 신선하다. 김하늘의 빨간 원피스, 핑크색 립스틱도 모던함으로 느껴져 눈이 즐겁다. 쪽진 머리, 한복이 가진 접근 불가의 환타지함이 아니라 저건 그래도 내가 시도해 볼 수도 있는 환타지이다.

장동건의 패션도 역시 내 눈에 즐거움. 멋스러운 세미 정장 스타일은 내 남편에게 대입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아이템이라 더 눈길이 간다. 그걸 입는다고 장동건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오징어는 아니니까.




바란다면 - 약간의 긴장을 더해 달라는 것이다.



갈등의 최고조를 칠 때 무엇이 완결의 미를 선사하게 될런지 가시화해서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으로선 각 커플들의 사랑의 완성이 결말이 될 듯 싶다. 그런데 그 사랑의 완성으로 가는 길이 그다지 꼬여 보이질 않는다는 게 문제다. 장애라는 것들이 조금만 마음을 달리 먹으면 별 문제없이 극복될 만한 것들로 보인다.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것들이 뭐가 있는지 조금만 더 쉽게 풀어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조금 친절해서 덜 세련되게 보여도 말이다.

신사의 품격 이 아무리 '잔잔한 감동' '매력적인 캐릭터'를 밑천삼아 나아 간다고는 해도 '강한 감동'과 '짜릿한 도발' 의 한 방 포텐도 필요하다. 클라이막스에서 있을 그 어떤 '한 방'이 드라마를 꾸준 시청해 온 시청자들에게 '그 동안 봐 오길 참 잘 했어' 라는 완결미도 선사할 것이다.

멋진 만찬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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