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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영화

해를 품은 달, 절묘했던 두 훤의 만남


아쉬웠던 17화에 비해 짜임새가 좋았던 18화였다. 모든 사건들의 아귀가 착착 잘 들어 맞았고 시청자들과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도 기술의 묘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던 부분은 훤의 심리가 변해 가는 과정을 풀어 나가는 방법이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납득이 가게끔 설득력을 가졌는데  무엇보다도 그것이 극적인 형태로 연출되었다는 것에 놀라움과 칭찬을 보내고 싶다.

바로 두 훤이 만나던 씬이다.


# 훤의 충격

생각 해 보자. 원작을 미리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든 정황을 알게 된 훤의 충격이 어떠 할 지 짐작이 간다. 모든 비극이 시작된 지점에 누이 동생인 민화 공주가 있다. 그리고 공주가 자신의 행복을 얻는 댓가로 많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들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막막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을 것이다.

그 다음 닥쳐 오는 고민이 이에 대한 단죄이다. 어디까지 할 것이며 그것을 과연 자신이 할 수 있겠는지, 해야 만 하는 것인지 갈등과 고민이 휩쓸어 올 것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의 전개를 위한 설명이 될 부분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훤이라는 캐릭터의  묘사와 부각을 위해서도 섬세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다. 왕이라는 무소불위의 그에게 누가 이러저러한 가이드를 해 줄 것일까? 연우가? 연우로서는 덮어 주라고 밖에 말하지 못한다. 단죄하라고 말한다면 연우의 캐릭터를 해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의지가 자의적이고도 강력한 것으로 가려면 그 스스로가 각성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해품달은 훤이 과거의 그 자신과 조우하는 방법을 쓴다.


# 두 훤의 만남 - 훤이 훤에게 방향을 제시하다



이 장면은 두 개의 효용성 - 그것도 이중의 - 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훤이 과거의 일들을 되짚어 가며 사건의 실마리들을 재정비하며 전말을 확신하게끔 하는 단초들이 되어준다.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지난 일들을 정리 복습케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문두 소제목에 쓰였듯 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가지게 되었음을 훤 스스로와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바를 정, 둘 치, 그것의 너의 정치란 것을 잊은 것이냐?
자격없는 자가 차지한 것을 자격있는 자에게 돌려 주는 것.
그것이 네가 군주로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그새 잊은 것이냐?

준엄한 말이다. 다름 아닌 과거의 자신이다. 과거의 진실과 맞닿아 충격을 받은 훤은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초심을 되살리며 단죄에 대한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매우 드라마틱하다. 효용성있고 매우 효과적이다. 설득력이 있다. 훤의 인간적인 고뇌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고뇌를 본 우리들은  앞으로 그가 행하게 될 행동들에 대해  그가 비정하다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단지 '사랑'때문에 칼날을 휘두르는 쪼잔한 사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바를 정(正)'을 행하려 아픔을 딛고 스스로의 길을 힘들게 디디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이해하고 있으니까. 

'나는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나를 이해해 다오'  모든 것들은 이런 식으로  지루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드라마틱하면서도 임팩트있게 연출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 양명군도 이해가 되네

양명군 캐릭터를 이토록 손상시켜야만 했을까 아쉬움이 많았었다. 여기에 대해 이전의 두 개 리뷰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훤과 양명군의 대립각을 이토록이나 세워야만 했을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로맨스의 긴장감을 위해 연적인 둘을 대립하게 만든 것일까? 라고 생각을 했다. 원작에 의하면 결국 동생인 훤의 마지막 조력자로 마무리를 하게 될 것인데 이렇게나 적대적으로 그려도 되는 것일까? 라는 걱정도.

오늘 후반부 외척파들과 윤대형, 그들과 대면하는 양명군 씬에서 약간은 알아 채게 되었다. 이미 원작을 다 읽은 나의 기우였을 수도 있음을. 해품달은 조금 더 강하게 시청자들과 밀땅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윤대형이 속아 넘어 갈 수도 있을만한 정황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임을.

윤대형이 설득당할 정도임을 우리에게도 설득시켜줘야만 한다. 왼쪽 캡쳐에서 긴가 민가 망설이는 윤대형의 표정을 보라. 양명군이 덥석 한번에 미끼를 물었다면 윤대형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윤대형이 믿지 못할 정도면 시청자도 속지 않는다.

외척파들이 왔을 때 역적들을 처단하겠다며 칼을 들었었다. 그렇게 1차로 한번 물러 냈다. 최고 윗선을 직접 불러와라고 전해라 했다. 그래서 윤대형이 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양명군. 진실을 아홉개 말하고 거짓을 하나 그 사이에 끼워 두면 속일 수 있다고 했던가? 역모를 할 순 없다고 굳건하게 심지를 굳히던 그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었기에 윤대형은 속아 넘어갔고 우리도 윤대형이 속아 넘어 갈 만 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위 쪽 캡쳐와는 달리 살짝 동공이 넓어진 윤대형의 표정 연기를 보라. 재밌다... ^ ^

내가 바라는 것은 종묘제례의 제주자리와 허연우, 그 두가지 뿐이오 -

진실되게 들린다. 그리고 그의 말이 진실되게 들리는 것은 어쩌면 이것이 진짜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정황들을 앞에서 우리가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대형도 우리가 아는 그대로 알고 있다. 훤과 그가 대립각을 세웠던 것들을. 얼마나 서러움이 깊고 그것때문에 찌질(;;)해질 가능성도 있음을.  같이 싸우던 훤을 혼자 두고 월의 손을 잡고는 내빼던 양명군의 모습을 우리가 보았고 윤대형이 보낸 자객들도 보았다.

그 모든 것들이 해품달이 우리에게 걸어 온 트릭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꽤 괜찮았던 듯.


#  김수현 - 흥미로운 배우


유연성이 뛰어난 배우이다. 사고 자체가 매우 유연하다고 느껴진다. 평소에도 개구장이 기질이 많은 걸로 보여지는데 이것은 유연성의 증거이다.

유연하다 의 반대말은 경직되어 있다 이다. 유연하다는 것은 신체의 움직임이 그러하다는 것이고 표정 또한 그렇고 말의 고저의 자유스러움, 음성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원천은 그의 정신이 유연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대부분 개구장이 기질이 많은 사람들이 유연하다.

대사가 제법 길게 이어 질 때도 김수현의 대사는 리듬을 타고 있기에 지루하지가 않고 물 흐르듯 유창하게 흘러간다. 표정이 자유자재로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그가 틀에 갇혀 있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비록 오글거리는 낯간지러운 대사를 할 때에도 그의 입을 통하면 제법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것은 그가 그런 것을 소화할 만큼 열린 감성의 유연한 개구장이이기 때문이다. 유연성은 배우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어떤 캐릭터의 옷을 입던지 간에 소화할 수 있는 기저가 된다.

간간이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일 때도 있긴 하지만 타고난 표현력이 있으므로 앞으로 다른 캐릭터로 변신했을 때 어떻게 표현할 지 매우 기대가 된다.

오늘 18화, 박수 짝짝짝이다 -


꼬랑지  -



* 민화 공주역의 남보라 - 기대 이상의 호연.
* 대왕 대비역의 김영애 - 대사하다가 정말 기가 뻗쳐 넘어가겠다 싶더니 제대로 연결되는 씬. 역시 연륜과 카리스마.
* 훤과 공주 - 둘 다 끝없이 솟아 나는 눈물의 샘. 연기자라면 누구나 저 정도 하나 하지만 그건 또 아닌 게 현실이니  결론은 둘 다 짱.

18화 리뷰입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래의 손가락 모양 추천 버튼은 로그인하지 않아도 클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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