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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영화

그 맑은 눈물의 힘 - 개인의 취향 마지막 한 회를 남기고


# 차오르는 눈물, 그러나 흐르지 못하는 눈물 -

슬픔을 모르는 인간은 천박하고 경박해진다. 나는 눈물의 힘을 믿는다. 그것이 감정을 느끼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하나임을 알기에. 그리고 눈물이 가지는 정화의 힘을 안다. 모든 것을 맑고 깨끗이 씻어내는 눈물의 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오르는 눈물을 쏟아내지 못하고 꼭꼭 눈 안에, 가슴 속에 내리 눌러야만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해소의 과정으로까지 가지 못하고 안으로 담아 내리는 눈물에서 더 진한 슬픔을 느꼈다. 전진호, 아니 배우 이민호의 흐르지 못하는 눈물이 나를 울렸다.


전진호는 개인의 취향, 극 중에서 4번의 눈물을 보였다.

휴게소에서 개인이에게 모진 말을 뱉고 나오며 차 안에서 첫 번째, 아버지 납골당 앞에서 두번째, 그리고 헤어지고 돌아온 날 자기 방 안에서 세번째, 술취한 개인이에게 업히라고 등을 내밀던 그 때 네번 째...



모두 다 흐르지 못했던 눈물이다. 어깨가 떨고 목젖이 흔들려 마침내 입술의 떨림을 거치고 눈물샘까지 올라왔지만 흐르지는 못했던 눈물이다. 그래서 더 아팠다... 슬픔이 가슴을 뚫고 나와도 그 슬픔이 갈 곳이 없음을 전진호가 알았고 또 우리도 알았다.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고, 토로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음을 그는 잘 알았다. 온전히 그가 혼자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는 아픔이다.

흐르는 눈물을 억제한다는 것은 자기 감정이 세상에 나오기를 단절시킨다는 의미. 윗 장면의 대사로 보여졌다.

난 박개인을 사랑하지 않을거다.
난 박개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난 박개인을 사랑한 적 없다.


미래의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자신에게 주술을 걸 듯 현재의 감정을 부정하고 이어 과거의 자신마저 부정하는 전진호에게 스스로의 눈물을 허용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 그들의 이별

호박커플이 이별을 했다.

서로의 가슴에 큰 생채기를 내면서 이별을 했다.


전진호: 사랑한 적 없어요. 내가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갈 정도로 우스운 여자를 좋아할 것 같아?

박개인 : 최악이야, 전진호. 당신따위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왜 이렇게 되었나?

둘은 아직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에 분명한데. - 이별하던 그 시간, 둘의 모습이다.


# 전진호가 이별을 고한 이유 -

전진호가 나쁜 남자로 변한 까닭은 몇 장면에서 감지할 수 있다.



개인의 집 앞까지 가서 사정 전후를 말하려 했으나 창렬부자가 와 있는 것을 보고 돌아서 가며 차 안에서 떠오른 플래시백은 두 장면이다. 개인아버지가 상고재 설계도를 진호의 얼굴에 뿌리면서 한 말, " 이거 훔칠려고 들어왔냐?" 와 창렬아버지와 개인아버지가 악수하던 장면이다.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나쁜 남자가 되기 직전 진호가 떠올린 장면은 개인의 생일날 개인이 했던 말이다.

"서로 속이는 일 없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어요."

그리고 납골당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하던 말, " 전 그 여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버지 앞에서 인정받고 싶은 것만이 유일한 소원이었던 그 여자를 부끄럽게 만든 놈이에요 ."

또한 진호가 해명할 기회를 2번이나 가졌음에도 하지 않았던 이유도 첨가해 볼 수 있겠다.

예술원에서 개인아버지가 개인이와 진호에게 했던 말, "개인이 너는 아직도 그 모양이냐? 아무나 덥석 믿냐? 사위가 되면 다 무마된다고 생각했겠지 " 그리고 개인의 전화를 거부하는 진호에게 상준이 이유를 묻자 대답한다. " 결국 내가 저지른 일인 건 맞고 구차하게 변명한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이것들이 진호가 개인을 밀쳐 내려했던 이유들의 근거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뒤로 이어진 일들과 감정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상고재에 들어간 이유가 개인을 속였다는 사실, 창렬과는 달리 자신은 개인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남자라는 아픈 자각, 자신이 개인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개인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고 그것은 개인의 행복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자각때문이다.

마음 약한 개인이 결국 자신을 개인 스스로 밀쳐 내지 못할 것을 알기에 진호가 먼저 끊어내려는 아픈 시도를 한 것이고.

# 해결 방안도 이미 나와 있다

영선이가 개인에게 말한다. - 동기야 불순했지만, 진호씨가 널 사랑한다는 건 온 세상이 다 알아 -

동기에 무게를 둘 것인가, 사랑한다는 진심에 무게를 둘 것인가?
이게 키워드다.

진호가 앞으로 개인과의 둘 사이에서 타개해 나갈 방법은 잘못은 인정하되 진실된 사랑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은 선행되어야 할 일이겠다.

최관장은 이번 화에서 깨어진 호박커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실은 시청자들에게 둘 사이의 파탄의 이유와 해결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 최관장이 말한 전진호라는 사람 -



* 전진호 소장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 설계도를 들고 온 상준에게 최관장이 하는 말 )
* 성공을 위해서라면 왜 끝까지 게이라고 속이지 않았을까요?
* 내게 죄송합니다라고 거절할 때 전진호 소장은 말했죠. 난 박개인을 사랑합니다. 라고.
* 눈빛을 보면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과 사랑을 보여주게 되었다



진호가 박교수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면 맞서지 않았을 것이다. 실수를 포장하고 변명하려 했을 것이다. 진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강공법으로 나가게 된 것 같다. 출발점은 개인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했지만 이것은 결국 박교수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자신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결과로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몰랐던 부분, 자신의 사랑이 어떠한 의미에서 특별한 것인가를 보여 주게 된다.

창렬처럼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아 발견과 정신적 성장을 위해 옆에 있어 주는 사랑 말이다. 여태 개인이 창렬과의 이별로 힘들어할 때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 을 깨우쳐 주었던 진호이다. 이제 박교수에게 '당신의 딸이잖아요' 라고 말하며 개인의 열등감을 알아달라고 말을 하고 있다.

개인이 여태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의 핵으로 닿아 가는 것이다. 진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턱이 120 도 돌아갈 정도로 세게 뺨을 맞으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개인아빠에게 할 말을 하던 진호의 용기의 뒤에는 '개인에의 사랑' 이 있었을 것이다.

개인의 여태까지의 열등감의 원인을 얘기하고 그것을 감싸 줄 사람은 아버지인 박교수라고 말을 하는 것까지로는 박교수의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했나보다.

교수님의 죄책감을 따님에게 돌리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자 감정이 격해져 뺨을 때린 박교수.

이에 박교수의 환심을 사려면 절대로 건드릴 수 없었던 곳에 타격을 가하게 된다.

담 예술원 설계 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상고재가 실패작이기 때문이겠죠. 아닙니까?

연기하는 모습에서 배우 이민호의 배포와 배짱이 느껴졌던 장면이기도 했다.

드라마의 끝은 해피엔딩일테니 박교수가 전진호의 진실됨과 사람됨을 알아 보고 잘 마무리 될 듯 싶다. 마지막 한 회를 남겨두고 최고조에 달한 이 갈등을 날려 버릴 한 방으로 전진호가 무리수를 둔 것 같이도 보인다. 무리수가 무리수가 아니고 적절한 한 방으로 마무리 되겠지만 말이다.







오해와 갈등이 워낙에 겹겹으로 계속되면서 보는 입장에서 약간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긴 마라톤 끝의 카타르시스를 얻으려면 이것을 이기고 즐겨내야만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15화의 길고 깊은 갈등들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던 것은 이민호의 눈물이었다. 정작 전진호의 슬픔은 정화시켜주지 못했지만 내 마음은 정화시켜주었다.

이것이 이민호, 눈물의 힘이었다. 또한 15화 드라마의 급속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날려주기도 했고, 그간 망설이며 보여왔던 우유부단 전진호 캐릭터에 대한 의구심을 날려버리기도 했던 눈물이었다.



이민호의 절제된 감정 연기는 이 젊은 남자 배우에게 얼마나 깊은 멜로의 감성이 들어있나, 경이로운 느낌마저 자아내었다.

폭풍 전개 속에 숨가빴던 15회가 지나고 이제 마지막 한 회를 남겨두었을 뿐이다. 둘의 감정씬이 깊어질수록 이민호, 손예진의 진한 연기를 볼 수도 있을 성 싶다. 시간은 가도 작품은 남는 것. 우리들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을 수 있는 몇 씬들을 더 안고 마무리 되기를 소망한다.